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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청소년 '마음의 문' 두드리는 '경찰 아재'


입력 2016.04.21 06:28 수정 2016.04.21 06:30        하윤아 기자

<런닝폴 현장취재>윤재완 서울관악경찰서 SPO 인터뷰

"청소년에게 필요한 건 관심과 진심"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 서울관악경찰서가 운영 중인 찾아가는 청소년 상담소 '런닝폴' 천막이 세워져 있다. ⓒ데일리안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 서울관악경찰서가 운영 중인 찾아가는 청소년 상담소 '런닝폴' 천막이 세워져 있다. ⓒ데일리안

"청소년들에게 관심이라는 옷을 입혀주는 게 학교전담경찰관의 몫이 아닐까요?"

7일 오후 7시. 신림역 2번출구 앞에는 이날도 어김없이 파란 색깔의 천막이 세워졌다.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하던 낮과 달리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저녁, 펄럭이는 파란 천막 안에는 서울관악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chool police officer, SPO)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란 천막의 정체는 관악경찰서에서 햇수로 2년째 시행 중인 '찾아가는 청소년 상담소'. 인기 TV 예능프로그램 이름을 본떠 만든 '런닝폴' 표시가 지나던 시민들의 시선을 끌었다. 관악서 SPO들은 런닝폴이 그려진 입간판을 천막 입구에 세워두고 상담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만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관악서에는 현재 총 7명의 SPO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관악구 내 총 57곳의 초·중등학교를 각각 8~9곳씩 맡아 학교폭력 등 청소년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이날 상담소에서 만난 윤재완 관악경찰서 SPO 역시도 관악구 내 특수학교를 포함해 총 8곳 학교의 학생들을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 경력 21년인 그는 지난해부터 학교전담경찰관으로 근무해오면서 2년째 '경찰관님', '형사님' 대신 '아저씨'로 불리고 있다.

"학교전담경찰관은 학교와 유기적으로 연계돼 학교폭력과 같은 청소년 문제를 중간자적 입장에서 부드럽게 처리하고 있어요. 청소년 문제는 학생들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선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때문에 평소 학생들과 친밀감을 쌓아 놔야지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죠. 매주 목요일 저녁에 상담소를 운영하면서도 저희는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경찰복 대신 사복을 입고 학생들을 만나고 있어요."

지난 2012년 학교폭력 예방대책의 일환으로 SPO가 전국에 배치되면서 현재 각 학교에는 담당 SPO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이름, 개인 휴대전화번호가 기입된 포스터는 물론, 입간판도 설치돼 있다.

이로써 학생들은 자신을 담당하는 전담 경찰관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경찰아재'에게 자유롭게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SPO에게 선뜻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학생들이나, 전화상으로는 부족한 고민상담을 원하는 청소년들은 매주 목요일 열리는 이곳 상담소를 찾아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가 있었던 학생들과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면 그 학생이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무면허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단속에 걸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러 온 학생도 있었죠. 왕따 문제나 진로를 상담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 학생들도 있고 정말 다양해요.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문제가 있는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청소년이라면 들어오라고 해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현재 서울경찰청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관악서의 상담소 운영을 홍보하고 있다. 실제 상담소를 찾는 청소년들 중에는 SNS를 보고 오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한 청소년이 SNS를 통해 상담소 운영 사실을 알고 경기도 용인에서 신림역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교우관계에서의 문제와 가정불화로 고민을 겪던 이 청소년은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SPO와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리를 떴다고 한다.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서울관악경찰서 '런닝폴' 상담소에서 윤재완 학교전담경찰관(오른쪽)과 김민정 학교전담경찰관이 고민상담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서울관악경찰서 '런닝폴' 상담소에서 윤재완 학교전담경찰관(오른쪽)과 김민정 학교전담경찰관이 고민상담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상담소에는 학부모들과 학교 교사들도 종종 얼굴을 비춘다.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찾아와 가정 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교사들은 학생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상담하기 위해 상담소를 찾는다. 7일 저녁에도 모녀가 찾아와 한 시간 정도 담당 SPO와의 상담을 마친 뒤 미소를 보이며 천막을 나섰다.

윤 SPO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를 물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지난해 학교 밖 청소년들을 인근에 위치한 청소년도움센터 '친구랑'에 연결해 준 일화를 언급했다. 당시 다수의 학교 밖 청소년을 상담했던 윤 SPO는 이들이 학력을 인정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센터를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했고, 실제 그 결과 스무 명가량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해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청소년기에는 많은 바람이 불어오죠. 때문에 청소년들이 일시적으로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비행하는 청소년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기 때문에 저희도 그쪽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만큼 관심이 중요한 것인데, 저희의 작은 관심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해줄 수 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그에게도 물론 어려움은 있었다. 20년 경찰 생활동안 지난해 처음으로 SPO 업무를 맡게 돼 초반에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신뢰를 바탕에 두어야 하는 일인 만큼 그는 청소년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그는 직접 만든 부채를 들고 범죄예방교육에 나섰다. 그리고는 학생들 앞에서 '학교폭력 절대 안된다고 전해라~'라는 히트곡을 개사해 창 한가락을 뽑아냈다. 이 때문에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부채도사'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도 굳게 닫힌 청소년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 학업을 중단한 학교 밖 청소년에게 꾸준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학업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집 앞에 찾아가 설득하기도 하는 등 진심을 다했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 둘 쌓여 이제는 메신저 친구목록에 지인보다 학생들의 이름이 더 많을 정도다.

"작년부터 SPO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소통하는 법을 잘 몰라 아이들이 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어떻게 하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죠. 그런데 청소년들에게 필요한건 '관심'과 '진심' 이더군요. 한 학생이 변화하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한두 번 만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울 때 두꺼운 옷을 입듯이 학생들에게 관심이라는 옷을 따뜻하게 입혀주는 게 SPO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요."

윤재완 SPO를 비롯한 관악경찰서 SPO는 저마다의 고민거리를 들고 상담소를 찾을 청소년들을 기다리며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연신 동여맸다. 이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청소년을 위해 달리고 있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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