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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보니 '나라슈퍼 살인사건' 이해가 간다


입력 2016.02.07 10:44 수정 2016.02.07 10:45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그들끼리 지켜주는 사이에 국민은 소외

최근 tvN 드라마 ‘시그널’이 여타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완성도로 위력시위를 하는 중이다. 이 작품은 연이어 경찰 조직의 경직성을 그렸다. 첫 살인 사건에서 과거 경찰은 자신들이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을 범인으로 확정짓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현대 경찰은 그 사건에서 또다른 진범의 가능성이 나오자, 사건의 진실이 늦게라도 밝혀지는 것을 반가워하기는커녕 경찰이 내렸던 결정이 뒤집히는 것을 불쾌하게만 여겼다.

두 번째 사건인 경기 남부 연쇄살인사건에서도 경찰은 진범을 찾을 가능성을 최후까지 열어두지 않고, 일단 확정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발표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경찰이 지목한 범인이 진범이 아님을 밝혀낸 수사관은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경찰조직을 망신시킨 골칫덩이로 낙인찍히는 분위기였다.

설마 대한민국 경찰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태일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진실을 밝히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그런 경찰이 진실이나 국민 인권보다 자기 조직의 자존심을 더 우선 순위에 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경찰 조직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이라도 옥살이를 시킬 수 있다는 건 현실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드라마의 과장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주에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이 화제가 됐다. 17년 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동안 경찰이 진범의 존재를 알면서도 무시한 의혹까지 있다는 보도였다. 이야말로 ‘시그널’의 현실판 아닌가?

사건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벌어졌다. 3인조 강도가 들어 할머니가 살해됐다. 범인은 경상도 말투를 썼다. 경찰은 19살, 20살 먹은 동네 선후배 세 명을 체포했다. 모두 중학교 중퇴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다. 이들 셋은 전라도 말투를 썼다고 한다. 경찰은 범인의 목소리를 아는 유가족과 용의자들을 차단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 셋을 연일 폭행하며 죄를 인정하라고 했다. 셋 중에 지적장애인이 자술서를 썼다. 검찰로 넘어가니 검사도 이들을 윽박질렀다고 한다. 국선변호사는 ‘죄를 부인해봐야 형량만 더 늘어나니 차라리 그냥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라’는 식으로 조언했다는 얘기가 있다. 결국 이들은 죄를 인정하고 살인죄로 투옥됐다.

그런데 재판 진행 중에 나라슈퍼 사건의 진범을 안다는 제보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제보자가 정신이상이라며 무시했다. 부산지검에도 제보가 들어와 수사했더니 진범의 자백과 장물 거래 정황까지 확인됐다. 그런데 애초에 나라슈퍼를 담당했던 전주지검은 이 결과를 무시했다.

유족은 검경의 수사결과를 의심했다. 현장검증 때 경찰이 내세운 범인들이 마치 경찰의 지시로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2000년이 돼서야 유족이 감옥에 있는 범인을 만나 목소리를 확인했다. 진범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했다. 부산지검에서 자백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는 바로 이 사람이 진범이라고 했다.

검경에 살인범으로 찍히고 옥살이까지 한 이들은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2002년에 기각된다. 그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17년을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온 것이다. 이들의 삶은 완전히 파괴됐다. 반면, 이들이 범인이라며 수사와 재판에 참여했던 검경, 변호사, 판사 등은 그후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자신이 진범임을 주장한 사람이 올 1월에 옥살이를 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사죄하고, 피해자 할머니 묘소도 참배했다. 그는 진범임을 자백하자 검경에게 ‘'다 끝난 사건인데 뭘 그러느냐', '더 이상 떠들지 말고 조용하게 살라는 으름장까지 들었다’고 한다. 정확히 ‘시그널’의 설정과 겹친다. 사실관계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떻게 진범이라는 자백을 무시하고 재심청구까지 기각할 수 있느냐는 지탄의 목소리가 크다.

유족은 살인범은 용서할 수 있어도, 엉뚱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내세우고 반성도 않는 공권력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이건 ‘시그널’보다 더 하다. 드라마에선 경찰이 조직의 위신 때문에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나라슈퍼 사건에선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변호사까지 사법계 전부가 엮였다. 사실여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이런 보도가 나오는 것 자체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국민의 안전, 행복보다 자신들의 권위를 더 우선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동료가 한 수사라서 못 뒤집고, 선배가 내린 결정이라서 못 뒤집고, 조직 명예 때문에 못 뒤집고, 그렇게 그들끼리 지켜주는 사이에 국민은 소외된다. ‘시그널’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의혹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더 공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처럼 선배와 조직이 아닌, 국민과 진실만을 생각하는 용기 있는 공직자들이 더 많이 나와주길 바랄 뿐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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