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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킹메이커’ 세 남자의 엇갈린 운명...


입력 2016.02.07 10:34 수정 2016.02.07 10:35        고수정 기자

안대희 ‘박 품에’ 김종인 ‘더민주로’ 이상돈 ‘안 품에’

4년전엔 정치쇄신위원장-국행추진위원장-비대위원 한솥밥

(왼쪽부터) 안대희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한 때 박근혜 정권 창출을 위해 협심했다. 하지만 안 최고위원을 제외한 두 사람은 각각 더민주, 국민의당 행을 택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왼쪽부터) 안대희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한 때 박근혜 정권 창출을 위해 협심했다. 하지만 안 최고위원을 제외한 두 사람은 각각 더민주, 국민의당 행을 택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 당시인 2012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김종인(왼쪽 세 번째) 당시 국민행복특위 위원장, 안대희(왼쪽) 당시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이주영 대선기획단장 등과 나란히 서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 당시인 2012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김종인(왼쪽 세 번째) 당시 국민행복특위 위원장, 안대희(왼쪽) 당시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이주영 대선기획단장 등과 나란히 서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1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종인, 이상돈(왼쪽) 당시 비대위원이 다른 비대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1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종인, 이상돈(왼쪽) 당시 비대위원이 다른 비대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안대희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공통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킹메이커’라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협심해 정권 창출의 공을 세웠지만, 현재 각기 다른 정당에서 4·13 총선을 위해 뛰고 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박 대통령과 척을 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세 사람은 모두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2003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국민검사’ 칭호를 얻은 안 최고위원은 2012년 7월 대법관을 퇴임한 뒤 한 달만인 8월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다.

김 비대위원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서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집대성했다. 이 교수도 비대위원과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서 전 정권과의 정책 차별화에 기여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아 ‘쓴소리 3인방’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들은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서울 마포갑에 출사표를 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선의 터를 닦아놓은 곳으로, 탈환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안 최고위원은 지난달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돕겠다.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겠다. 정치인으로서 가끔 실수 할 수도 있겠지만 신뢰만큼은 저버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지명으로 최고위원에 선임됐다. 이 자리에서 ‘정치적 동지’ 김 비대위원장을 향해 “경제분야를 맡았던 그분이 야당에서 정치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정치의 서글픈 모습을 국민에게 또 한 번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저 혼자서라도 국민의 여망인 정치쇄신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올바른 일이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동고동락했던 김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 아닌 더민주를 선택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안 최고위원이 향후 김 비대위원장의 ‘저격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김 비대위원장의 ‘각자도생’ 선택은 안 최고위원은 물론 새누리당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세 사람 중 박 대통령과 가장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과 등을 돌렸지만, 한때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으로 돈독했다. 이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김 비대위원장이 보낸 생일 축하 난(蘭)을 거절했다가 뒤늦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현재 더민주의 ‘수장’으로서 정부·여당의 기조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여야가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과 북한인권법을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김 위원장과 더민주 지도부가 합의를 파기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당의 핵심 공약인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분이 경제활성화법안 처리를 막았다”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4일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만났지만, 또 다시 협상이 결렬되면서 김 비대위원장을 향한 새누리당의 비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대선 동지’ 이 교수는 박근혜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으로 불렸지만, 대선 이후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후 박 대통령을 비판하며 거리를 뒀고, 박영선 더민주 의원과 가깝게 지내왔다. 박 의원이 더민주 전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시절 이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당내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당초 이 교수는 박 의원이 당 잔류를 선언하면서 더민주행이 예측돼 왔다. 하지만 안 공동대표의 끈질긴 ‘러브콜’로 국민의당 합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가에서는 이 교수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직 및 공천심사위원장직 등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지난 3일 tbs 라디오에서 “저와 협의하거나 저한테 의견을 묻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며 “다만 여러 가지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흘러가서 보도가 된 것 같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안 최고위원을 제외한 김 비대위원장과 이 교수의 엇갈린 행보는 박 대통령이 본의아니게 멀리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선을 도왔던 친박계 인사는 지난 3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몇 차례 비대위원들과 식사하려 했지만, 구체적인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취소했다. 이후 대통령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2014년 이 교수의 모친상에 조화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서운함’이 대척점에 서게 된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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