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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어코드, 대형 안 부러운 3.5ℓ 중형세단의 위엄


입력 2016.02.10 09:00 수정 2016.02.10 10:10        박영국 기자

<시승기>자연흡기 고배기량 엔진의 넉넉한 파워…차가운 핸들, 축축한 좌석 아쉬워

혼다 뉴 어코드.ⓒ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혼다 뉴 어코드.ⓒ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저유가가 지속되며 자동차 업계에서 한동안 냉대 받던 차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바로 차체에 비해 큰 엔진을 얹은 고배기량 모델들이다.

친환경, 고효율 트렌드에 발맞춰 엔진은 소형화되고, 작은 엔진의 부족한 힘을 만회하기 위해 터보차저를 장착한 엔진들이 자동차 업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여전히 자연흡기만으로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고배기량 엔진을 선호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일부 자동차 업체들이 고배기량 엔진 모델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들의 존재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혼다 뉴 어코드 3.5 V6 모델은 이런 고배기량 엔진 선호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최근 서울에서 전남 순천까지 왕복 약 670km를 뉴 어코드 3.5 V6로 달려봤다.

어코드 3.5 V6는 차급은 중형 세단에 속해 있는데, 배기량이 3471cc에 달하는 V형 6기통 엔진을 달고 있으니 ‘쏘나타급은 2000cc’를 표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과한 조합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어코드보다 한 차급 위인 준대형 그랜저도 최대 배기량이 2999cc에 불과하다.

애초에 한국이나 모국인 일본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모델(요즘은 아예 미국에서 생산한다)이다 보니 그들의 기호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시동을 걸고 가볍게 가속페달을 밟아 도로로 나갈 때의 어코드는 마치 양복을 입은 유도선수와 같이 야성을 철저하게 숨긴다.

혼다 뿐 아니라 모든 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공통적 특징인 정숙성은 어코드에서도 어김없이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 시동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시동이 걸려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공회전시는 물론 저속 주행시까지 엔진의 소음이나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코드 3.5모델에 장착된 V6 3.5L SOHC i-VTEC 엔진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굳이 6기통 모두를 가동하지 않고 3기통, 혹은 4기통만 가동하는 VCM(가변 실린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연비 향상을 위한 기능이긴 하지만, 정숙성에서도 이 기능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최고출력 282마력, 최대토크 34.8kg·m의 파워는 고속도로에 진입해서야 진가를 발휘한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기어를 S(스포츠) 모드로 당기고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6기통이 모두 열리며 한참 앞서가던 차들을 빠르게 추월하고 나간다.

소형 터보 엔진의 억지로 짜내는 출력이 아닌, 고배기량 엔진이 자연스럽게 내뿜는 넉넉한 힘은 저속에서 속도를 끌어올릴 때나 고속에서 앞차를 치고 나갈 때나 운전자의 의도를 전혀 부족함 없이 따라준다.

차선을 옮겨다닐 때의 움직임도 안정적이다. 푹신한 서스펜션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이다. 고속도로 진출입 램프의 급회전 구간에서는 아주 정교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무난한 핸들링을 제공한다.

300km에 달하는 거리를 쉬지 않고 고속으로 달렸지만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운전 재미가 좋았다는 얘기다.

운전자는 레이싱을 즐겼지만, 동승자는 아예 다른 공간에 있는 듯 깊은 잠에 빠져있다. 고속 주행에서도 실내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어코드에는 실내로 유입되는 부밍(Booming) 소음과 역위상의 소리를 스피커로 발생시켜 소음을 차단하는 ANC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고속도로 위주의 주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급가속이 잦았던 탓에 평균연비는 9.3km/ℓ에 머물렀다. 다만 중간에 S모드를 해제하고 스티어링 휠 왼쪽의 ECON 버튼을 누른 채 일부 구간을 정속 주행하며 연비를 체크해본 결과 15.7km/ℓ가 나왔다.

딱히 주행모드로 구분을 짓지는 않았지만 어코드는 총 3단계의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기어를 S로 놓는 것과 D로 놓는 것, 그리고 ECON 모드를 적용하는 것이다.

어코드의 3가지 주행모드는 일부 브랜드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주행모드와는 다르게 각각의 특성이 명확하다. ECON 버튼을 누르면 마치 족쇄라도 채운 듯 반응이 답답해지며 대신 연비가 눈에 띄게 높아진다.

ECON 모드를 해제하는 것만으로도 가속능력은 훨씬 좋아지지만, 기어를 S모드로 당기면 가속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 된다. 다만, 시내 주행에서 실수로 기어를 S에 놓을 경우 주행과 정지를 반복할 때 기어비가 부적절하게 맞물려 차가 꿀렁거리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어코드 3.5 모델에는 다른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기능들이 많이 장착돼 있다. 앞서 언급한 ‘소음으로 소음을 잡는’ ANC 시스템을 비롯, 우측 깜빡이를 켤 경우 우측 사이드미러 하단에 장착된 카메라로 우측방 상황을 선명한 디스플레이로 보여주는 ‘레인와치’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스마트키로 차량 탑승 전에 미리 시동을 걸고 히터나 에어컨을 켜놓을 수 있는 원격 시동장치와 스마트폰 무선 충전장치 등 고가의 첨단 사양들도 장착돼 있다.

하지만 상위 트림임에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열선 스티어링휠이나 통풍시트,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등을 제공하지 않는 점은 의외다. “설마 4000만원이 넘는 차에 열선 스티어링휠 기능이 없을 리가 있나”라는 생각에 조작 버튼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차가운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평소에 땀이 많아 한겨울에도 통풍 시트를 애용하는 기자에게는 이 옵션의 부재도 아쉬웠다.

파킹 브레이크는 전자식도 아니고 풋브레이크 방식도 아닌, 고풍스런(?) 사이드브레이크 방식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좋았다. 세상에는 차를 세운 뒤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기며 ‘끼리릭’ 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운전석 왼쪽 바닥에 트렁크 개폐 버튼과 주유구 개폐 버튼을 통합해, 당기면 트렁크가 열리고 누르면 주유구가 열리도록 해 놓은 점도 좋은 아이디어로 평가하고 싶다. 몰고 다닌 지 5년이 넘은 개인 승용차도 가끔 이들 두 버튼의 위치가 헷갈려 주유소에 가서 트렁크를 여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실내 공간과 인테리어는 국산 중형 세단보다는 넓고 고급스런 느낌이다. 동력 성능이나 실내 공간이나 전체적으로 준대형급 못지않은 만족감을 준다.

이번에 시승한 3.5 V6 모델은 국내에서 4260만원에 판매된다. 국산 준대형차보다 비싼 가격과 고배기량 엔진의 낮은 연비가 마음에 안 든다면 이보다 720만원 저렴하고 배기량도 적당한 3540만원 짜리 2.4 EX-L 모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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