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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란 우물에 누가 침 뱉고 돌까지 던지나


입력 2015.11.28 09:16 수정 2015.11.28 09:18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서평>좌파의 지적-문화적 승리가 두렵다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박해천 지음 워크룸프레스 펴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박해천 지음 워크룸프레스 펴냄
분명 흔치 않은 재능이라는 생각에 눈을 비벼대면서 이 책을 읽었다. 흔치 않은 박람강기(博覽强記)에 더해 그걸 엮어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결코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책 읽는 중간 생각이 바뀌었다. 꽤 맹랑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끝내 저자가 잘못된 방향에 몰입하는‘헛된 열정’에 사로 잡혔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은 그 자초지종의 기록이다.

'아수라장의 모더니티'(워크룸프레스 펴냄)가 문제의 신간인데, 저자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박해천 동양대 교수다. 실은 그를 내가 좀 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이 책의 전작(前作) 두 편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아파트 게임'이 꽤 문제작이고, 이 신간과 함께 자신의 ‘콘유 3부작’이라고 한다. 자신있다는 뜻인데, 근데 무슨 얘길 담았지? 그게 신통하다.

대중적 성격의 단행본은 아니고 소수의 매니아층이 추종할만한 책인데, 문제는 이게 너무 균형을 잃었다. 내용은 20세기 한국인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얼 꿈꾸었나를 정면에서 묻는 책이다. 우리는 어떻게 모던세계(근대화-산업화)를 창출했으며 그 속에서 무얼 즐기고 욕망하고 성취했던가? 그리고 실체가 무얼까? 쉬운 질문이 아니다. 철학-문학이나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이란 게 그 실체를 잡기 위한 노력이 아니던가.

거의 천재적 재능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하지만 명쾌한 답을 얻진 못해왔는데, 디자인 전공자가 그 판에 뛰어들었다. 그 용기에 일단 박수! 그리고 이 책의 성취에 일단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 했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과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그리고 여기에 백선엽 회고록 '나를 쏴라'를 뒤섞어 종횡무진의‘현대사 비빔밥’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더 나간다. 이장호의 1980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 김기영의 문제작 ‘하녀’도 등장시킨다.

본인은 그걸 실험적 글쓰기인 ‘비평적 픽션’이라고 하는데, 소설-영화에서 각종 통계와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깔되 그걸 각주로 활용해 논문을 쓴 게 아니다. 박해천만의 자기 이야기로 바꿔서 현대사 얘기를 늘어놓는데, 이게 좔좔 읽힌다. 능력은 능력이다. 그리고 초점은 항상 중산층에 맞춰진다. 모더니티를 창출해내고 즐긴 주체가 다름 아닌 그들이니까. 확실히 저자에겐 시각문화 따로, 그걸 만들어낸 사회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때문에 디자인 역사란 달리 말해 중산층의 역사이며, 그들이 창출해낸 모던문명인 아파트-현대차 포니와 쏘나타2-대형마트 등에 모두 녹아있다. 때문에 이 책은 그 안에 담긴 삶의 질감을 전면 재구성한 것이다. 달리 말해 건국 이후사를 중산층 얘기로 훑어 내리는 작업이다. 여기까진 좋은데 이후가 문제다. 우선 너무 시선이 너무 냉소적이다.

제목부터 '아수라장의 모더니티'가 뭔가? 불교용어 아수라장은 ‘전란이나 그 밖의 일로 혼란상태에 빠진 곳이나 그런 상태’를 일컫는데, 우리현대사가 과연 그러했던가? 참담한 실패와 동시에 놀라운 성취를 함께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그걸 헬 조선 식으로 격하시킨 게 저자의 수준이다. 실제로 그는 1960~80년대 중산층의 삶을 “악의와 저주에 제 욕망을 내맡긴 괴물들이 머물고 있는 림보(limbo)”라고 규정(163쪽)하길 서슴지 않는데, 실로 아연한 노릇이다.

심했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 물어보자. 우리현대사가 “악의와 저주에 제 욕망을 내맡긴 괴물들이 머물고 있는 림보(limbo)”였다고? 나는 안다. 그런 얼치기 인식, 그리고 섣부른 표현의 남발이야말로 먹물 특유의 허위의식임을 나는 안다. 그런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현대사 때리기에 바쁜 속물 지식인들

“내가 살아온 (근현대) 80년은 ‘빈 들’이었다. 빈 들은 성서에도 나오듯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식의 물질만능과 악마에게 절을 하고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숭배 사조에 의해 지배됐다.” 목사 강원룡의 자서전 <빈 들에서>(1993년)도 그 따위가 아니던가. 그건 몽땅 젠 체하는 속물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이를테면 저자 박해천은 포니와 소나타 차를 구입했던 중산층의 욕망을 짓이기고 조롱하기 바쁜데, 과연 그랬던가?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 2년 전 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는 첫 차 포니를 구입하던 날 밤잠을 못 이루던 사연을 필자인 내게 사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는데, 이게 분명 진실에 가깝다.

“제가 미국 유학을 했던 시절 한국이 만든 차를 만든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1974년 현대가 고유모델 포니를 미 대륙에 상륙시킨 건 기적 같은 사건입니다. 그런 내가 귀국해 그 차를 사던 날 잠을 못 이루겠더라고요. 벌떡 일어나 차를 이리저리 쓰다듬어본 뒤 다시 올라오고…”

그게 진실이다. 과연 20세기 한국사회는 독점을 강화하고 민중을 수탈하였던가? 외려 마이카 그리고 마이홈을 누리는 도시의 중산층을 양산했다. 그 과정은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이 부자 내지 중산층으로 올라섰던 부익부 빈익부의 놀라운 비약에 다름 아닌데, 박해천은 무슨 자격으로 그걸 감히 손가락질하는가? 그건 혹시 학문이란 이름의 ‘아카데믹한 거짓말’ 내지는 ‘지적 파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성 바란다.

결정적으로 박해천이 빠져 있는 늪이 있다. 그걸 나는 ‘민족 나르시즘’이라고 보는데, 이 땅의 먹물들이 빠져있는 집단정서에 그게 똬리 틀고 있다. 즉 국사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은“순수하고 착한 조선민족의 고고함을 조명하는 민족 나르시즘”에 몽땅 빠져있다. 그 결과 20세기를 외세 대 민족의 대립구도 파악한다. 왜 그러한 침략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명사적 통찰이나 우리의 역사실패에 대한 반성은 당연히 없다.

‘나쁜 놈’이 ‘착한 우리’를 짓밟았다는 식이다. 그런 인식은 지금 논란인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패러다임이며, 올해 초 KBS-TV 광복절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미래’에서도 반복됐던 엉터리 현대사 인식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피해망상적 정신분열증으로 타락하는데, '아수라장의 모더니티'도 예외가 아니다.

좌파의 지적-문화적 승리가 나는 두렵다

아쉽다. 거의 천재적 재능을 이렇게 허비한 이 책의 헛된 열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제는 그게 한 개인의 실패일까? 아니다. 우리 지식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우파 정부 재집권가 올해로 8년째이지만, 사회 분위기를 포함한 지식사회, 그리고 문화계에서 좌파의 헤게모니는 요지부동이다.

이념적으로 실용주의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애당초 문제의식이 애매했고, 그와는 달리 국정철학이 상대적으로 선명할 것으로 기대했던 박근혜 정부가 고전을 거듭하는 배경에도 앞서 언급한대로 오염된 지식-정보의 매커니즘이 맹렬히 작동하고 있다. 한 사회의 공식적인 지적-문화적 헤게모니가 이토록 짧은 시간 내에 허물어지고, 급기야 반체제적, 반국가적으로 교체되면서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으로 등장한 것은 극히 찾아보기 드문 사례에 속한다.

박해천의 책이 보여주듯 2000년대 초반 지금 좌파의 지식권력-문화권력은 더 이상 정규 커리큘럼 바깥을 서성대지 않는다. 아카데미즘의 중심부로 성큼 진입했고 반대한민국과 친북한으로 옹호하는 구조적 힘으로 맹렬하게 작동 중이다. 좌파의 도그마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좌파정서에 오염된 그와 같은 아류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고, 이미 이 사회 각 부문의 중견-중진으로 활동한다.

실로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제도권은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건국 이후 1970년대까지 정부의 보호 아래에서 소박하게나마 자유주의의 전통을 유지해오던 관변(官邊) 반공주의 세력, 방어적 민주주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헤게모니를 갖는데 성공한 한국형 신좌파의 등장과 놀라운 성공 탓이다. 그렇게 구축된 좌파의 지적-문화적 승리라는 성채 앞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매일같이 무력감 혹은 좌절감을 경험한다. 박해천이란 젊은 교수의 책을 보며 나는 더럭 겁이 나고, 아찔했다는 점을 새삼 밝혀둔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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