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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압축된 YS 조문, 기자들도 이름몰라 '쩔쩔'


입력 2015.11.25 20:12 수정 2015.11.25 20:37        문대현 기자

지나다니는 사람 붙잡고 신분 물어보면 최소 '전 의원, 전 장관'

서청원 "기자초년병 시절 내무부 장관 몰라봐 혼났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아들인 김현철 씨(오른쪽)가 조문을 마친 이기택 전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아들인 김현철 씨(오른쪽)가 조문을 마친 이기택 전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빈소에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빈소에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서거한지 나흘째, 빈소는 수 많은 조문객들과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취재진들로 북적 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이 수없이 밀려드는 '정치 원로'를 알아보지 못해 애를 먹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YS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전해진 22일 오전, 다수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은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서울 종로구 연건동 소재)으로 모여들었다. 사안이 워낙 중요한지라 인근 경찰서를 담당하는 사회부 기자들까지 빈소에 위치하며 모인 취재진만 대략 100명이 넘었다.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기자단은 출입문 앞과 빈소 내부 등으로 구역을 두 개로 나누어 시간대별로 각각 다른 언론사 기자들을 투입해 취재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내용을 공유해 보도하기로 합의를 봤다.

취재진은 빈소 내부 취재는 정치부 기자가, 출입구 취재는 사회부 기자가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빈소팀은 조문객이 내부로 들어와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김현철 씨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움직이는 동선 등을 전체적으로 그리는 역할을, 출입구 팀은 시시각각 드나드는 각계각층 인사를 확인하고 코멘트를 받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통상 사회부 기자들은 연차가 어린 경우가 많다. 경찰서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취재하며 내공을 쌓은 뒤 부서 이동을 시킨다. 흔히 기자들끼리 말하는 험한 '아스팔트(길거리) 취재'도 사회부의 몫이다. 이에 반해 정치부 기자의 경우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기자들을 배치한다. 과거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현재를 읽어야 하는 정치권 일의 특성상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부와 사회부를 나누어 취재 영역을 정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회부 기자들이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얼굴을 몰라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넘기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되자 빈소팀도 더욱 분주해졌다. 어떤 인물이 왔는지 안에서 일일이 재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 할 문제는 아니었다. 300명 가깝게 되는 현직 국회의원을 비정치부 기자들이 알아내기란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잡음이 생기자 취재진은 입구팀에 정치부 기자를 추가 배치시켰다. 이들은 현역 의원들을 어렵지 않게 알아봤고 전보다는 상황이 수월해졌다. 그러나 이 마저도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지면서 YS와 함께 정치 생활을 했던 이른바 '정치 원로'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취재진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였다.

아무리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라도 20년도 더 된 YS 시절 때 정치를 했던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홍인길·최형우·김동주 전 의원 등 당시 YS의 동지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인사라도 주로 2~30대의 연령대인 현장 취재진 중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답답해진 기자들은 빈소에 상주하는 당 관계자를 붙잡고 조문객의 이름을 물어봤지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관계자들은 '나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결국 취재진은 출입구팀·빈소팀을 가리지 않고 모르는 얼굴이 보이면 일단 직책과 이름을 물어보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이색적인 일이 생겼다.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신분을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전 의원', '전 장·차관, '전 총리' 등 요직을 맡았던 고위급 직책이었던 것이다. 과거였다면 이들을 결코 쉽사리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취재진은 태연히 그들의 신분을 기입하고 코멘트를 받으면서도 이같은 사실에 놀라워했다. 한 기자는 "지나다니는 할아버지를 잡고 물어보면 죄다 국무총리를 했었고, 죄다 국회의장을 했었다고 한다"며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랜 세월 민주화 운동을 펼치다 대통령을 역임한 YS의 빈소였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와 황교안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정종섭 행정자치부 자관 등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와 황교안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정종섭 행정자치부 자관 등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후 5일장 중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 셋째 날로 접어들며 취재진들은 자주 빈소에 모습을 비치는 원로들의 얼굴을 익히게 됐고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줄어들었다. 취재진으로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진기한 경험이었다.

이같은 혼란을 지켜본 한 원로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예전에 젊은 시절부터 YS와 민주화 운동을 펼쳤고 정치도 함께 했던 인사들"이라며 세대가 다름을 자인했다. 원로들은 빈소 내부를 취재하는 기자를 붙잡고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쭉 설명하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또한 'YS 키즈' 중 한 명으로 첫 날부터 계속 빈소를 지키고 있는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5일 장례식장 내 기자대기실로 내려와 "1969년 내가 사회부 출입기자 시절 경비행기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현장스케치(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를 하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선생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역정을 내며 내무부 장관이라고 했다"며 "천하의 내무부 장관을 몰라보고 혼난 기억이 난다"고 취재진의 입장을 이해하며 달랬다. (서 최고위원은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조선일보 소속으로 기자 생활을 한 바 있다.)

평소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서 최고위원의 이러한 발언은 취재진이 '정치 원로'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취재를 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전 야구선수 박찬호 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배우 신성일 씨,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상대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인사들이 빈소를 찾으며 취재진의 고충은 덜했다.

한편 24일 오후 7시 42분께 빈소에는 7명의 중년 남성이 등장했다. 입구팀은 자연스레 신분을 물었는데 "지구 밖에서 왔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이 방명록을 작성하는 것을 확인하고 언론사와 관련된 사람임을 알게 됐지만 그 외에는 알 수 없었다.

이후 빈소팀의 확인 결과 이들은 YS가 신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던 시절 당 출입기자들로 밝혀졌다. 이들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 등과 한 테이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 자리를 떴다. 이후에도 YS 시절 기자로 활동했던 한 인물이 빈소를 찾았고 내빈실에서 이와 마주친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아이고 의원님 오셨어요"라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기자들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들은 정치인과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그만큼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당시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YS 서거 이후 지금까지 주로 "민주화의 큰 별이 졌다", "양김시대가 저물었다" 등 고인을 기리는 내용과 빈소에 온 주요 조문객의 모습이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빈소 취재 과정에서는 이처럼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 '현장 취재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일들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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