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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이 '헬조선 타령'을 들었다면 버럭...


입력 2015.11.28 08:22 수정 2015.11.29 09:24        박영국 기자

<탄생 100주년 기획-아산 정주영에게 배운다/인터뷰>

전경련 회장시절 상무였던 박정웅 "지사적 기업가 정주영"

1934년 복흥상회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한 정주영 전 명예회장. 당시 19세였던 그는 쌀소매상인 복흥상회에 취업해 장사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아산 정주영닷컴 1934년 복흥상회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한 정주영 전 명예회장. 당시 19세였던 그는 쌀소매상인 복흥상회에 취업해 장사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아산 정주영닷컴

“헬조선이요? 한국엔 희망도 없고 내일도 없고 사방이 꽉꽉 막혔다고요? 정주영 회장님이 들으셨다면 당장 호통을 치셨을 겁니다.”

박정웅 메이텍 대표는 최근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획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헬조선’이란 단어를 정 명예회장의 일생에 빗대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정 명예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던 시절인 1974~1988년 전경련 국제담당 상무 등을 지내며 가까이서 그를 보필한 인물이다.

난데없이 ‘헬조선’이란 단어가 언급된 것은 그가 최근 몇몇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회상하는 대목에서였다. 그는 이 ‘가슴 아픈 신조어’(박 대표의 표현에 의하면)를 그때 처음 들었다고 한다.

“제가 43년생으로 60년대 초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땐 진짜 참혹했습니다. 월사금 못 내면 시험 앞두고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남아있는 애들이 3분의 1도 안됐죠. 그래도 좌절 않고 집에 가면서 친구들끼리 낄낄댈 정도로 꿋꿋했죠.”

툭하면 끼니를 거르고 하복 살 돈이 없어서 한여름에도 동복을 입고 다녔던 얘기 등 힘들었던 시절 얘기가 이어졌다. 그 세대가 배고픔을 견디며 희망과 용기를 갖고 일해서 60~70년대 경제개발의 주역이 됐다는 얘기다.

“제가 그 정도인데 정주영 회장님은 어땠겠습니까. 그분이 17살 때는 우리보다 더 비참했습니다. 부두에서 등짐 지고 쌀 배달하는 게 직업이었는데 그런 가운데서 기업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키는 대기업으로 키우는 획기적인 일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젊은이들 환경은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헬조성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정주영 회장님의 정신을 배워 용기를 갖고 힘을 내야 합니다.”

박 대표의 ‘정주영 예찬론’은 끝없이 이어졌다.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 30분 정도만 시간을 내 달라고 사정을 해 성사된 인터뷰였지만 박 대표 스스로 약속을 어기고(기자 입장에서는 고맙게도) 무려 1시간 30분가량 대화를 이어갔다.

◇석유파동에 나랏돈 바닥…정주영 "돈이 몰리는 중동가서 돈 벌어오자"

“우리나라가 1997년 IMF를 맞았죠. 굉장히 큰 일이라고들 하는데 이 때는 고부가가치 수출품도 있고 해외에서 국가지명도도 높고 시장기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회장님이 사업을 하던 시기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이 가발이랑 싸구려 섬유였습니다. 당시 가용외환보유고가 2000만달러에 불과했죠. 석유와 석탄을 수입해서 발전기 돌리고 난방을 해야되는데 나랏돈이 2000만달러밖에 없다는 건 거덜난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70년대 중반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제1차 석유파동을 마주했다. 1974~1975년 사이에 석유가격이 무려 600%나 올랐다. 겨울을 앞두고 석유가 없어 발전기를 못 돌려 전기가 끊기고 길거리에 자동차도 못 다닐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그런 암담하던 시절에 정주영이 나섰다. ‘석유가격이 오르면서 세계 돈이 전부 중동으로 몰리고 있다. 그럼 중동으로 가서 돈을 벌어오면 될 게 아니냐’는 게 정주영의 발상이었다.

“그분이 중동 건설사업 진출 선언을 하니 그 당시 전문가집단과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정 회장이 소학교밖에 안 나와서 배운 게 없어 중동 진출이 얼마나 어림없는 일인지 몰라서 그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게 그때는 중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습니다. 중동말 할 줄 아는 사람도 없고, 외교관계도 없고 그 나라에 대한 지식 자체도 없었습니다.”

설령 중동과 외교관계가 있고 중동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고 해도 해외 건설 경험이 없던 한국 기업이 중동에서 공사를 따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구나 중동 국가들을 지배하던 왕족들이 미국과 영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이중국적을 획득하던 시기라 중동에서 미국과 영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상당하던 시기였다.

“정 회장의 형제들 중 가장 엘리트였던 정인영(전 한라그룹 명예회장) 씨도 말릴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기술이 있느냐 자본이 있느냐 인맥이 있느냐며 당시 이명박(전 대통령, 전 현대건설 사장) 씨를 비롯한 임원들한테 중동 진출을 반대하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정주영은 결국 중동 건설사업 진출을 강행했다. 현장 답사를 다녀온 실무진들이 중동이 너무 더워 한국 근로자들은 일을 못한다고 하니 정주영은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춥지 않느냐. 낮에 에어컨 틀어놓고 자고 밤에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고, 중동에 물이 부족하다 하니 “차로 물을 길어다 먹으면 된다”고 했다.

오히려 중동 건설 사업의 이점도 언급했다 모든 건설사업에는 자갈과 모래가 많이 사용되고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중동은 사방에 자갈과 모래가 널려 있으니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성공시켜서 중동 진출 첫 해 2억달러를 송금했습니다. 당시 한국 외환보유고의 10배죠. 그리고 그 다음해는 10억달러를 송금했죠.”

◇"돈이 목적이었으면 왜 힘들게 기간사업 했겠나 소비재·금융사업 했지"

박 대표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일생동안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소비재나 금융 분야를 제쳐두고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일념으로 기간산업에만 주력했다는 점을 들어 ‘지사(志士)적인 기업가’로 정의했다.

“내가 돈 버는데 욕심을 냈다면 이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운 기간산업 안하고 먹을 거, 입을 거 같은 소비재 만들고 금융사업 했을 거야. 금융사업을 하면 기업들이 어려워도 돈 빌려가고 잘 돼도 투자하기 위해 돈 빌려가고 계속 이자를 내니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걱정이 없잖아.”

박 대표가 전해준 정 회장의 생전 발언이다. 소비재와 금융업이 기간산업에 비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임을 알면서도 굳이 기간산업에 매달린 게 ‘사업보국’의 일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 같은 애국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중동 가면 다 망한다는 우려를 무릅쓰고 정 회장이 중동 시장을 개척한 이후 삼성과 대림, 한양 등 국내 건설사들이 따라 나가 돈을 엄청 벌었습니다. 정 회장이 조선소를 만들어 선박을 팔기 시작하니 대우와 삼성이 뒤따랐습니다. 정 회장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철강과 화학, 전자 등 국내 각종 연관산업들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을 빼놓고는 우리 경제사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1930년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강원도 통천 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사진. 넷째줄 왼쪽 세 번째가 15세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다. 그의 조부는 마을 서당의 훈장이었고, 조부의 서당에서 3년간 전통적인 유교식 교육을 받았다. 보통학교를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밭일을 해야 했지만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음악과 서예를 못해서 항상 2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후일 “밭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오히려 휴식시간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보통학교는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되며, 이곳을 졸업한 게 정 명예회장의 최종 학력이 된다.ⓒ아산정주영닷컴 1930년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강원도 통천 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사진. 넷째줄 왼쪽 세 번째가 15세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다. 그의 조부는 마을 서당의 훈장이었고, 조부의 서당에서 3년간 전통적인 유교식 교육을 받았다. 보통학교를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밭일을 해야 했지만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음악과 서예를 못해서 항상 2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후일 “밭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오히려 휴식시간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보통학교는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되며, 이곳을 졸업한 게 정 명예회장의 최종 학력이 된다.ⓒ아산정주영닷컴

◇경영학 창시자 피터 드러커, 정주영에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박 대표는 전경련에서 국제담당 상무로 재직하며 정주영 회장을 보필하던 시절의 일화도 들려줬다.

“1979년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정주영 회장을 만났는데 제가 통역을 맡았습니다. 근데 그분이 정 회장을 만나자 마자 ‘제가 부끄럽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이러는 겁니다.”

피터 드러커가 정 회장에게 ‘부끄럽다, 죄송하다’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평생 가르쳐온 위대한 기업가 정신이란 것은 어떤 사업을 진행할 때 눈앞에 놓인 위험 요인, 불확실성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요인들 뒤에 존재하는 사업계획을 직관적으로 간파한 뒤 이에 대한 결행의 의지를 가지고 치밀한 계획 하에 인력과 재원을 동원해 결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이런 기업가정신의 극적인 예다. 경영학을 가르치면서 당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피터 드러커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더욱 놀랐다고 한다.

“소학교밖에 못 나온 당신이 10명의 유명한 경영학자가 동원돼도 못할 일을 해냈다. 이는 위대한 기업가정신이 좋은 학교 나오고 책 많이 읽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예다. 나는 사회생활 초창기부터 경영학자였는데, 내가 만일 당신보다 경영을 잘했다면 당신보다 더 부자고 더 큰 기업가가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의 소박한 품성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었다. 정 회장이 대한민국 최대 재벌 총수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기워 입고, 신발을 천갈이 해 신고, 집에서는 하도 오래돼 가죽이 벗겨진 소파를 사용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박 대표는 정 명예회장의 그런 소박한 모습을 평소 행동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박정웅 메이텍 대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던 시절인 1974~1988년 전경련 국제담당 상무 등을 지내며 가까이서 그를 보필했다.ⓒ박정웅 메이텍 대표 박정웅 메이텍 대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던 시절인 1974~1988년 전경련 국제담당 상무 등을 지내며 가까이서 그를 보필했다.ⓒ박정웅 메이텍 대표
“어느날 전경련 일정으로 정 회장을 수행해 해외 출장을 갔는데, 차에서 눈을 감고 계시기에 주무시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저를 툭 치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박군, 감자 푹 쪄서 뜨끈뜨끈할 때 고추장 넣고 비빈거 먹어봤어?’이러시기에 ‘네 그거 맛있습니다’ 했더니 ‘아 그거 먹고 싶네, 요즘 사람들은 그 맛을 너무 몰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가난한 시절의 소박한 품성을 절대 잃지 않으셨죠.”

정 명예회장이 국내 경제계를 대표해 외국 출장을 가면 국왕과 장관 등 해당 국가의 고위급 인사들이 주최하는 호화 리셉션에 참석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런 자리를 아무리 많이 다녀도 위스키나 와인 이름 하나 외워 놓은 게 없었다고 한다. 항상 주문은 수행원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고 박 대표는 회상했다.

“해외출장 가서 한국음식점엘 가면 코스 중 하나로 생선이 나오는데 항상 몸통은 저나 이병규 비서실장(현 문화일보 사장) 주고 정 회장님은 꼬리나 머리를 드셨습니다. 여러 면에서 타고난 리더였죠.”

다시 ‘헬조선’ 얘기로 돌아왔다. 박 대표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생을 ‘대한민국의 정신유산’으로 만든다는 게 꿈이란다. ‘헬조선’ 타령 하는 젊은이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중학교때 읽고 들은 위인전과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서 철이 든 이후에도 계속해서 삶에 영향을 줍니다. 정 회장의 개척정신을 우리 학생들에게 정신유산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갖는 무한한 힘’의 철저한 신봉자이자 실천자였습니다. 교과서에 넣을 수도 있고, 책으로 만들어 읽히는 방법도 있죠. 외국에도 정 회장의 일생이 한국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아이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게 제 개인적 포부입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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