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명품 디자이너' 영입, 이번에도 성공할까

박영국 기자

입력 2015.11.05 16:07  수정 2015.11.05 16:50

기아차 사장 시절 피터 슈라이어 영입으로 '디자인 기아' 성공 신화

벤틀리 출신 루크 동커볼케, 제네시스 브랜드에 럭셔리 DNA 이식 기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4일 서울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린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미디어 설명회에서 브랜드 런칭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현대자동차

지난 4일 현대자동차 브랜드 전략 발표회. 현대자동차는 이날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런칭과 함께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을 발표했다. 바로 최고급 브랜드 벤틀리와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에서 수석디자이너를 역임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를 현대디자인센터 수석(전무급)으로 영입했다는 소식이었다.

자동차 후발국인 한국의 대중차 브랜드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독일의 정상급 디자이너를 빼왔다는 게 예삿일은 아니지만 크게 놀라는 이는 없었다. 현대차를 이끄는 정의선 부회장이 이미 9년 전에 비슷한 ‘사고를 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10년 전인 2005년 35의 젊은 나이에 현대자동차 그룹의 양대 축 중 하나인 기아자동차 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그가 기아차를 맡았을 당시 기아차의 위상은 ‘현대차의 동생 브랜드’에 불과했다. 디자인이나 상품성, 브랜드 파워 등 모든 면에서 현대차의 동생 급으로 평가 받았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기아차를 독립적인 가치를 가진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게 현대차그룹 후계자로서 정 부회장이 직면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피터 슈라이어 영입으로 기아차 브랜드 위상 끌어올려

정 부회장은 품질·마케팅·기술·가격 등 기존 역량만으로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차별화된 경쟁 우위 요소로 ‘디자인’을 선택했다.

또한 ‘현대차의 동생 브랜드’라는 인식을 극복하고, 기아차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결정하고 전사적인 디자인경영에 나섰다.

물론, 정 부회장은 전문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지니진 못했다. 대신, 뛰어난 디자이너를 영입해 ‘디자인 경영’의 선봉장으로 내세울 만한 안목과 과단성을 가진 경영자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폭스바겐 총괄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2006년 7월 전세계 자동차 업계는 슈라이어가 한국의 기아차에서 근무하게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야 했다.

슈라이어 합류 이후 기아차는 승승장구했다.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는 디자인 방향성과 ‘호랑이 코 그릴’ 패밀리룩을 기반으로 탄생한 포르테, K5, K7, 스포티지R 등 주요 차종들이 하나같이 디자인에서 호평을 받으며 히트를 쳤고, ‘디자인 기아’의 명성을 세계 시장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기아차의 성공, 특히 현대차와의 차별화 성공은 정의선 부회장의 첫 번째 도전이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주력 계열사 중 하나를 맡아 실적은 물론 위상까지 크게 끌어올렸으니 장차 현대차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검증받았다는 평가를 얻게 됐다.

그 덕에 2009년 8월 그가 30대 후반의 나이에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도 당당할 수 있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당시 기아자동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 2012년 3월 29일 기아차 디자인 설명회에서 기아차의 디자인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기아자동차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안착, 현대차와 정의선의 새로운 도전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지 6년 후인 지금. 정 부회장은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동안 그룹의 핵심인 현대자동차를 무난하게 잘 발전시켜 왔지만, ‘한 단계 도약’이라는 평가를 붙여줄 만한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현대차는 아무리 차를 잘 만들고 고급 사양을 적용해도 소비자들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길 꺼리는 ‘대중차 브랜드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현대차가 내놓은 게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다.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 토요타의 렉서스, GM의 캐딜락, 포드의 링컨과 같이 대중차 브랜드와 차별화된 별도의 럭셔리 브랜드를 구축하겠다는 게 현대차의 전략이다.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은 현대차의 도전이자 정의선 부회장의 도전이다. 정 부회장은 4일 제네시스 브랜드 전략 미디어설명회에 참석해 직접 의미를 설명하는 등 브랜드 출범 전반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국내에서 언론 브리핑에 직접 나선 것은 현대차로 합류한 2009년 YF쏘나타 출시 행사 이후 처음이다.

정 부회장으로서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 여부가 기아차 사장 시절에 이어 경영능력을 평가받는 두 번째 시험대인 것이다.

정 부회장은 이날 설명회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은 현대차가 크게 도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대차에는 선배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산업화 시절의 정신이 아직도 많이 흐르고 있고, 세월이 흐르며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많은 자산과 기반을 가지고 있다”며 제네시스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에 자신감을 보였다.

이 시점에서 이뤄진 루크 동커볼케의 영입은 기아차 사장 시절 피터 슈라이어 영입과 오버랩된다. 정 부회장은 슈라이어 사장과 함께 동커볼케 전무 영입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에서 ‘디자인 기아’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슈라이어처럼 동커볼케에게도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적인 안착에 중요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동커볼케가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던 벤틀리는 소위 럭셔리 브랜드로 불리는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보다 한 단계 위의 최고급 브랜드로 분류된다. 롤스로이스, 마이바흐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던 벤틀리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동커볼케의 경력은 ‘제네시스’ 브랜드에 럭셔리 DNA를 이식하는 데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했을 때 궁극적으로는 성능과 품질이 중요하겠지만, 초기 시장과 업계의 반응은 아무래도 첫인상을 좌우하는 디자인이 중점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피터 슈라이어와 루크 동커볼케라는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내느냐가 제네시스 브랜드의 빠른 시장 안착에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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