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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설경구 출연 비화 "여진구와 고 이은주"


입력 2015.10.05 09:42 수정 2015.10.12 09:15        부수정 기자

남한군 남복 역 맡아 '남남 케미' 선보여

"추석 맞아 가족 관객들에게 제격인 작품"

배우 설경구는 "'서부전선'은 메시지, 웃음, 감동이 버무려져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배우 설경구는 "'서부전선'은 메시지, 웃음, 감동이 버무려져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우리 영화 꼭 잘 돼야 해!"

설경구는 작정한 듯 운을 뗐다. 전작 '나의 독재자들'의 저조한 흥행 성적을 웃으면서 언급한 그는 "'서부전선'은 흥행했으면 한다"고 했다.

'서부전선'은 농사짓다 끌려온 남한군 남복(설경구)과 북한 탱크 부대 막내 영광(여진구)이 전쟁의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코믹하게 그렸다. 무려 29살 나이 차이가 나는 '구구 커플'의 케미스트리(배우 간 호흡)가 빛나는 영화다.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시사회 반응이 좋다"며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메시지, 웃음, 감동 등이 버무려져서 추석을 맞은 가족들이 보기에 제격"이라고 자신했다.

극 중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입대한 남복은 다소 어리숙한 모습으로 영광과 티격태격한다. '서부전선'은 전쟁의 영웅보다는 어리바리한 남복과 영광을 통해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일깨워준다. 애잔함과 슬픔이 교차하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 이끌려 출연을 결정했다는 설경구는 "감동, 메시지, 눈물 등을 모두 담아내려고 하다 보니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인정한 뒤 "그러나 이게 최선이다. 끔찍한 전장에서 피어나는 웃음 뒤에 감춰진 씁쓸함이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자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모습들이 웃기긴 하지만, 곱씹어 보면 씁쓸하다는 걸 느꼈죠. 전쟁에 승자든 패자든 해피엔딩은 없다는 걸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전쟁 영화가 처음이라는 그는 "정통 전쟁 영화는 '고지전'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비장하지 않은 B급 영화라 편하게 찍었다"고 말했다.

설경구와 '서부전선'의 첫 인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로드 넘버원', '포화 속으로' 등 전쟁과 관련된 드라마 영화들이 많이 나왔던 상태였다. 더군다나 감독은 생초짜. 당연히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거절한 영화였지만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났다.

냉동보관 돼 있던 시나리오를 다시 연결해준 건 고 이은주였다. 이은주와 설경구는 영화 '송어'(1999) 때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배우 설경구는 "'서부전선'의 남복의 어리바리한 매력에 이끌렸다"고 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배우 설경구는 "'서부전선'의 남복의 어리바리한 매력에 이끌렸다"고 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2013년 은주 기일 때 제작사 대표와 PD를 만났어요. 시나리오를 다시 보자고 했죠. 그리고 영광 역을 진구가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처음엔 진구가 다른 영화에 캐스팅됐는데 엎어져서 저와 다시 만났어요. 인연인 거죠."

아들뻘인 여진구와의 호흡은 찰떡궁합이었다. 어마어마한 나이 차를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남복이가 영광이를 대하듯 연기했단다. 선배가 툭툭 내뱉는 말을 어린 후배는 거리낌 없이 주워 먹었다.

그래도 후배는 후배다. 설경구의 눈에 여진구는 "마냥 귀여웠다"고. "진구는 웃음이 한 번 터지면 못 참는 스타일이에요. 정말 재밌게 찍었어요.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현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답니다(웃음)."

영화는 '7급 공무원'(2009), '추노'(2010),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각본을 쓴 천성일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촬영 감독도 입봉작이다. 가장 중요한 제작진 두 명이 초짜라니. 크랭크인은 다가오는데 가장 중요한 탱크 제작은 늦어지고, 시간은 자꾸 흘렀다.

'베테랑' 설경구는 "초짜는 초짜"라며 "불안하게 촬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 배경이 여름인데 가을이 시작되는 거예요. 좋은 날 다 가겠다고 감독한테 얘기했죠. 제가 우겨서 엔딩신을 먼저 찍었고 단풍 들기 전 마침내 기다리던 탱크를 만났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했는데 처음엔 제가 좀 예민했어요.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죠."

현장은 남복이와 영광이처럼 어리바리 그 자체였다. 그런데 모든 제작진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빨리 찍어야 했는데 다들 여유롭고 밝았다고 배우는 말했다.

"미숙한 부분이 보이는데 밉지가 않더라고요. 어떤 부분에 대해 질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툭 하면 탱크 위에 올라가서 웃으면서 사진 찍고 그랬다니까요. 하하. 마치 영화 같았어요. 초반 서로 긴장하다가 긴장이 풀리면서 친해지는 전개처럼요."

설경구는 특히 탱크를 '땡끄'라고 지칭하며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영화 속 탱크는 영광이 꼭 지켜야 할 분신 같은 존재이면서 남북과 영광을 이어주는 이음새 역할을 한다.

"탱크도 어리바리했다니까요. 무식해서 용감했던 셈이죠. 처음 제작한 탱크라 정이 들었어요. 여진구 씨는 엔딩 크레디트에 탱크를 넣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예요. 비가 내릴 때는 탱크가 외로워 보였고, 술 먹는 신에선 뭔가 든든히 버텨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정이 깃든 탱크였습니다(웃음)."

배우 설경구는 "'서부전선'의 영광 역을 맡은 여진구와 인연"이라고 전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배우 설경구는 "'서부전선'의 영광 역을 맡은 여진구와 인연"이라고 전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역도산'(2004) 때 30kg을 찌운 바 있는 그는 원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위해 10kg 넘게 체중 감량을 했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쏙 빠져 있는 그에게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수명이야 단축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며 "배우는 소모가 되는 직업이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한 건 재미없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나올 카드가 없는데 그래도 다양한 역할이 제게 주어져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쓴 카드 또 쓰면 부끄럽잖아요?"

'서부전선'의 남복 역도 이런 이유에서 도전했다.

"영화가 크게 성공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다만 배우로서 캐릭터에 욕심이 생기는 거죠. 영화에서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떤 분들이 어이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전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남복이도 평범하지 않죠. 가진 것 없고 어리바리하고 어쩌면 소시민보다 더 떨어지는데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작품마다 변하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는 "변하는 건 하나도 없다. 영화 속 직업과 이름이 바뀌는 것이지, 난 내가 가진 재료를 쓰는 것뿐"이라고 했다.

"저의 또 다른 모습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싶진 않아요. 다만 감독의 도움을 받아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면 좋겠죠. 사실 영화는 답이 없어요. 고민하고, 토론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그냥 재밌는 영화도 있어야 해요.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올 캐릭터가 두렵지만 늘 궁금하답니다."

연기 경력 22년 차에 접어든 그는 최근 원로 배우 신영균, 윤일봉과 만난 얘기를 하며 자신만의 배우론을 펼쳤다.

"두 선생님께서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목소리엔 힘이 넘쳤어요. 살아있는 한 배역에 대한 갈망이 끝이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꿈을 붙들면서 자기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사람, 그게 배우예요."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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