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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때 소방서 최다 신고 전화는? "가스 불 꺼주세요"


입력 2015.09.26 09:58 수정 2015.09.26 09:58        박진여 기자

고향도 못가고 국민 안전 위해 희생하는 소방관들 애환

"사소한 민원이라도 잠재적 위험 생각하면 중대한 신고"

생활민원이 쏟아지는 명절을 앞두고 소방관들이 22일 ‘데일리안’을 만나 생활민원 속 고충과 남다른 사명감에 대해 밝혔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생활민원이 쏟아지는 명절을 앞두고 소방관들이 22일 ‘데일리안’을 만나 생활민원 속 고충과 남다른 사명감에 대해 밝혔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말벌 퇴치, 닫힌 집 문 열기, 벌레 잡기, 가스 불 대신 끄기, 간판에 떨어진 핸드폰 꺼내기... 소방관이 이런 일도 하느냐며 ‘황당 신고’라고 보는 분도 많지만, 저희는 생활 전반의 모든 민원에 ‘국민의 잠재적 위험 방지’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무조건, 신속하게 출동 합니다.”

생활민원이 쏟아지는 명절을 앞두고 ‘사명감’ 하나로 먹고 산다는 소방관들을 대표해 윤보환 서울 관악소방서 소방행정과 소방장이 22일 ‘데일리안’을 만나 시원하게 터뜨린 말이다. 윤보환 소방장이 소속된 관악소방서에 속해 있는 난곡 119 안전센터는 ‘말벌퇴치’ 신고에 가장 많이 출동하기로 유명하다.

소방관은 폐허가 된 현장에서 온 몸에 땀과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들쳐 업은 채 거친 숨을 내쉬며 현장을 가로지르다가도, 검게 탄 몸을 씻어내고 조심스럽게 가정집에 들어가 가스 밸브를 대신 잠가주기도 한다.

이처럼 시시때때로 바뀌는 환경에서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하는 소방관의 모습은 언제라도 위용이 넘치지만 그만큼 위험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생활민원의 경우 말 그대로 생활 전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루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다소 ‘황당한’ 신고를 받을 때도 많고, 이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최근 강원도 속초의 한 소방교가 고양이를 구조하던 중 추락해 사망하고, 경남 산청의 산악구조대 소속 한 소방관이 벌집을 제거하다 벌에 쏘여 숨졌다. 또 광주 서구의 한 소방장은 벌집을 제거하다 2만 2000볼트 고압선에 감전되기도 했다.

이에 여론은 “말벌 퇴치는 양봉 전문가를 시켜야지 왜 소방관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문 따고, 동물 구조하고, 벌잡고... 소방관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라며 개탄했다. 이는 수면 위로 떠오른 소방공무원 처우 문제가 한 몫 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3년 간 소방관 출동 원인을 보면 화재진압보다 벌집제거와 동물구조가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인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약 103만 66건의 출동건수 중 가장 많은 39만 6822건(38.5%)이 ‘벌 퇴치·벌집제거’로 나타났다. 이어 동물 구조, 실내·차량·엘리베이터 등 갇힘 사고 처리, 기타 안전조치 순이다.

이와 관련해 윤보환 소방장은 “물론 이런 저런 민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소방관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국민의 편의와 안전이기 때문에 아무리 생활민원이라 할지라도 모두 지당하고 엄중한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윤 소방장에 따르면 많이 접수되는 생활민원 중 하나가 ‘실내 갇힘’ 사고 처리다. 이 경우 바깥에서 문이 잠겼는데 안 쪽에서 인기척이 없거나 소리를 쳐도 대답하지 않을 때 안에 있는 가족이나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신고하는 것으로, 막상 출동해 아무도 없었다 해도 잠재적 위험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소하거나 허탈한 민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특히 말벌퇴치, 동물구조와 관련해 “말벌이나 동물구조는 위급한 사고”라며 “실제로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이를 일반인이 직접 나서 해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에 대비해 우리가 나서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벌 퇴치와 관련, 윤 소방장은 “전문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 만큼 우리 자체로도 말벌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보호 장비를 다 갖춘 상태”라며 “소방관이 보호 장구를 완벽히 착용하고도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호 장구가 없는 일반시민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우리 소방대원들은 출동을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게 맞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생활민원 교육에 대해서도 “생활민원 교육을 따로 받는 건 아니지만 각 부서에서 안전관리교육을 매일 시행해 생활 전반의 여러 사고에 대해 예측하고 토의하며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교육을 진행한다”며 “서로 토론하며 각자의 경험과 의견들을 교환해 이를 토대로 실습도 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사전 조치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윤 소방장은 기억에 남는 생활민원에 대해 “간판에 낀 휴대전화를 꺼냈던 것”이라고 단번에 답했다. 윤 소방장은 지난 2012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 젊은이가 2층 난간 같은 곳에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그 아래 가게 간판 뒤로 들어갔다. 그걸 꺼내달라는 신고에 출동지령을 받고 곧바로 출동해 그 휴대전화를 꺼내 손에 쥐어 줬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히 사소한 신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휴대전화는 현대인에게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물건으로, 일반인들이 그걸 꺼내기 위해 불안정한 자세에서 행동하다 사고가 커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내다보면 중대한 신고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윤 소방장은 명절을 앞두고 집중되는 생활민원에 대해 “가스레인지 불을 대신 꺼 주라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연휴 때 고향에 가는 분들이 신고 전화를 해 ‘가스레인지 불을 못 끄고 온 것 같다’거나 ‘창문을 열고 나온 것 같아 닫아달라’고 신고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경우 몇 호인지 확인한 다음 도시가스 밸브를 잠그고, 부득이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경우 집주인(신고자)의 동의를 얻어 실내로 들어가 확인하게 된다”며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방치됐을 시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민원과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A 소방사 역시 본보에 “벌 퇴치 민원은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너무 많아서 전문 차량이 따로 있을 정도”라며 “출동을 망설이게 만드는 신고들이 정말 많다”고 털어놨다.

A 소방사는 기억에 남는 생활민원에 대해 “화장실 하수구에 반지를 씻다 빠뜨렸으니 와서 꺼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한 번은 벌레를 정말 무서워하는 분이었는데 벌레가 집에 들어와 남편도 없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며 빨리 잡아달라고 민원이 온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A 씨는 “벌레를 잡아달라고 하는 경우는 출동 전 생각을 많이 하게 하기도 하지만, 정말 병적으로 벌레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힘든 일이 될 수 있으니 출동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쏟아지는 민원에 대해 A 씨는 “고향에 내려가는 분들이 많으니까 집 창문을 닫아달랄지, 가스를 안 잠그고 나왔으니 좀 봐달라는 민원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솔직히 말하면 출동하기 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민원의 경우 ‘이런 것까지 나가야하나’싶다가도 안 나가면 상황이 어떻게 될 줄 모르니 막상 출동하면서 힘 빠지기도 한다”면서도 “우리끼리 ‘소방 쪽 말고는 이런 일을 우리 아니면 누가 하겠나. 일반직 공무원이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봉사하는 직업이니 할 수 있는 한 하고, 다소 황당한 민원일 경우에도 나쁘다고 생각 말자’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또한 점차 주목받고 있는 소방관 처우에 대해 그는 “아직까지 저희입장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순직자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예전에 무관심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며 “우리끼리 말하기를 순직자가 발생해야 처우가 점점 나아져 우리 조직은 누군가 죽어나야 발전이 된다고 할 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양순철 공익희생자지원센터 대표는 “실제 소방관들의 고유 업무는 화재진압, 구급, 구조 이런 형태의 업무들로 나눠지는데, 생활민원의 경우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민원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의례적인 일로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사소한 민원이거나 과한 요청일 경우 이로 인해 정작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양순철 대표는 “공무원은 법에서 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로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소방관들도 합리적·비합리적인 기준의 엄격한 잣대를 통해 국민 안전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라고 밝혔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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