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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과 시립미술관과 홍경한의 '김기종 구하기' 카르텔


입력 2015.09.14 09:31 수정 2015.09.14 09:38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소외된 작가에게 자생성 기회 제공' 뻔뻔한 변명

그림은 내렸지만 도록엔 아직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의무"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상황을 묘사한 전시작과 관련해 8일 논란이 일자 결국 그림을 전시장에서 내렸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날 오후 "본래 취지와는 다른 측면이 부각되고 오해가 생겨 전시에서 해당 작품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홍경한 총감독의 결단으로 이같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대안적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올해 처음 시도한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이 포함된 것으로 이날 알려지자 논란이 일면서 미술관 측에도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사진은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 걸려있던 작품.ⓒ연합뉴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상황을 묘사한 전시작과 관련해 8일 논란이 일자 결국 그림을 전시장에서 내렸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날 오후 "본래 취지와는 다른 측면이 부각되고 오해가 생겨 전시에서 해당 작품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홍경한 총감독의 결단으로 이같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대안적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올해 처음 시도한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이 포함된 것으로 이날 알려지자 논란이 일면서 미술관 측에도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사진은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 걸려있던 작품.ⓒ연합뉴스

민중화가 홍성담 씨가 지난 해 광주비엔날레의 ‘세월 오월’에 이어 올해에도 ‘김기종의 칼질’로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왜 자꾸 이런 그림들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그의 과거를 보면 조선대학교를 나와 광주민주화운동의 선전요원으로 활동하다,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이 제작한 민족해방운동사진을 북한에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됐었고, 엠네스티에서 석방되어야 할 예술가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는 그림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전형적인 386세대의 화가였고, 그를 한 명의 작가로서 본다면 그런 그림들을 그릴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는 된다. 작품은 분명 그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의식을 대변하는 형태일 뿐이니 말이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권리 하에서 그의 작품을 놓고 문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논란이 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마크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을 두고 그 사건의 범인을 마치 안중근과 같은 독립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은 일반적 상식 안에서 이해하기는 힘들다. 80년대 의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홍성담의 붓질은 그저 격동의 시대가 낳은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도저히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 하다. 그러니 안 보면 그 뿐이다. 거기에 넘어갈 만큼 이제 대중(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논란에서 비판을 받아야 할 곳은 홍성담 외에 다른 곳에도 있다. 안 봐도 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보여줄 필요도 없는 그의 그림을 걸어준 서울시립미술관과 그의 그림을 선택한 ‘예술가 길드’가 바로 진정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가장 큰 잘못은 바로 ‘공공성의 훼손’에 있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는 창작자(예술가)들의 몫이지 수많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이나 행사장이 말할 수 있는 핑계는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게 정치적인 시선이라면 전시회 출품들에 더욱 더 신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핑계를 대기에 급급하다. 어떤 작품들이 상영되는지도 모르고 시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립미술관에서 그냥 장소를 내어 준 것이라면 그건 확실한 업무태만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그곳에서 상영되거나 전시되는 작품들의 목록과 내용들을 만들어 제시하게 되어 있고, 공공기관이라면 특히 그런 기본 서류작업들이 매우 까다롭고 힘들어야 정상이다. 그렇게 힘든 이유는 바로 그런 행사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일방적인 시선을 담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다른 관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닌 공공기관의 책임이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 상영되는지 몰랐다는 핑계가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정말 몰랐다면 공공기관의 나태함과 책임 회피라는 더욱 큰 문제를 보여준 것뿐이다. 시립미술관은 누구보다 먼저 시민들을 위한 공공장소임을 망각한 행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렇게 자신들의 잘못을 더 부각시키는 궁색한 핑계를 대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책임을 ‘예술가 길드’에 돌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공을 넘겨받은 예술가 길드의 다음 행동을 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시회의 총감독을 맡은 홍경한 미술평론가의 변명들을 보니 또한 너무 비겁하다. 그는 논란이 일자 그의 작품 때문에 불편함과 오해의 소지가 있어 작품을 내렸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또한 서울시립미술관과 그는 "소외된 작가들에게 자생성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홍성담 씨가 과연 소외된 작가일까? 그는 30년 넘게 민중화가로서 수십 차례에 달하는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으며, 특히 지난 해 광주비엔날레의 화려한 등장(?)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알게 된 유명 작가다.

그리고 그는 “전시가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자생성 문제, 시대적 재고찰 문제가 진영논리나 이데올로기화돼 불편함을 느꼈다”고 그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대다수의 시민들은 전시회 제목인 ‘공허한 제국’에서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 언론의 기사를 보면, 문제의 홍성담 씨 그림은 내려졌지만 도록에는 그대로 작품이 들어있으며,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한다.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의무라는 루돌프 폰 예링의 격언과 쿠르베식 행동주의가 미술언어로 치환되고 있다.”

도록에 실리는 글들의 의미를 미술평론가라는 홍경한 총감독은 ‘정말’ 몰랐을까? ‘김기종의 칼질’에 이런 평을 올리면서 진영논리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번지는 것에 서운함을 표시하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필자는 비겁하다 못해 황당함을 느낀다.

386마인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홍성담과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와 동일시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결국 도록의 내용을 보면 그가 이번 전시회에서 추구하는 하나의 이상향이 뭔지는 정확히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평론가의 탈을 쓰고 쿠르베의 작품을 본 것이 아니라 쿠르베가 행동했던 정치적 행위를 홍성담과 연계한 것일 뿐이다. 이게 무슨 미술평론가인가? 이런 그의 생각과 말이 심각한 이유는 홍성담을 떠나 그 전시에 참여했던 ‘소외된 작가들’에게 기회는커녕 오히려 오명만 씌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겉으론 소외된 작가들을 돕는다는 타이틀을 내걸지만 결국 소외된 작가들을 더욱 소외되게 만들고 그림마저 내리면서 회피하려는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하지 않은가?

결국 이 모든 것을 돌아볼 때 이번 논란의 핵심은 공공기관의 나태함과 정치적으로 변질된 구시대적 의식에 빠진 문화계의 부적절한 조합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소외된 다수의 순수한 작가들은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

홍성담 씨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 홍경한 총감독 등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지금껏 늘 해왔던 것들이 왜 지금은 논란이 되고 있는지를 이제는 자문해야만 한다.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 논란과 광주비엔날레의 홍성담 논란을 되새겨 보시길 바란다.

세상은 바뀌었고,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으며, 문화도 그에 걸맞게 바뀌고 있다. 이제 ‘표현의 자유’만을 외치지 말라! 그건 창작자들의 몫일 뿐이다. 공공기관과 총감독으로써 가져야 할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시길 바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공공성의 훼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홍경한 총감독은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더욱 소외될 처지에 놓인 작가들에게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글/최공재 독립영화감독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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