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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성욕 때문에 술잔 올린다는 비실마을 ‘남근석’


입력 2015.09.13 10:01 수정 2015.09.13 10:01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 -성석기행>충남 금산군 일대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지역에는 돌탑을 쌓고 그 위에 남근석을 세운 곳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 돌탑들은 토속신앙인 자식기원의 성기숭배 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하지만 금산의 돌탑은 산업화 밀려 대부분 사라지고 3곳에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추부면 신평리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돌탑이 존재하고 있다.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 추부IC를 빠져 나와 신평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성내초등학교 끝나는 지점 큰길 옆 논 가운데 1기가 있는데, 동탑으로 부르고 있다. 이 탑은 130년 전 마을에 흉사가 잦아지자 쌓았다고 하며, 또 다른 이야기는 서대산의 살기를 막기 위해 쌓았다고도 한다.

신평리 마을이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300여년이 됐다. 전설에는 100여 년 전에는 이 마을에 괴이한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집집마다 기르던 소가 이유 없이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예전의 농촌은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소는 집안에 큰 재산이었다.

서탑위의 세운 남근석ⓒ최진연 기자 서탑위의 세운 남근석ⓒ최진연 기자

그러던 어느 날 백발노인이 마을을 지나다가 “소가 죽는 까닭은 앞산에 있는 용바위에서 뿜어내는 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살기를 막기 위해서는 마을에 탑을 쌓아야한다”고 당부하고 떠났다.

마을에서는 노인의 말을 듣고 돌탑을 쌓기 시작했으며, 탑을 쌓을 때 동쪽에서 가져온 돌은 동쪽에, 각 방향에서 가져온 돌은 각 방향으로 쌓았고 한다. 그리고 돌탑위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남성의 성기를 빼닮은 화강암을 반 정도 다듬어 세웠다.

높이가 약 1m정도이며, 둘레는 어림잡아 70cm 정도는 돼 보인다. 돌탑의 높이는 260cm이며, 아래가 180cm로,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보기에는 돌무덤 같이 보인다.

서쪽의 탑은 추부면 보건진료소에서 군서면 쪽으로 가다가 신평2리 마을입구에 쌓았는데, 동쪽의 탑보다 작고 아담하다. 원래는 동쪽 탑과 같은 크기였으나, 1970년대 초 새마을사업 때 철거됐다. 하지만 마을에 재앙이 잦아지자 다시 쌓은 것이라고 했다. 탑 앞에는 제단이 있고, 아래는 또 다른 1기의 남근석을 돌탑에 붙어 놓았다. 그 옆에는 구멍이 움푹 파인 여근석도 함께 갖다놓았다.

금산 추부면 신평리 동탑ⓒ최진연 기자 금산 추부면 신평리 동탑ⓒ최진연 기자

이 남근석은 백여 년 전 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꿈에서 계시를 받고 발견한 자연석인데, 끝부분이 뾰족하며 중간은 꺾어져 있다. 김씨는 집에다 이 돌을 갖다놓고 매일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연로한 김노인은 꿈에 이제 남근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보내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의 자손들은 유언에 따라 마을 어귀에 있는 돌탑으로 보내기로 했다. 마을에서는 혹시라도 이 남근을 받았다가 흉사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회의 끝에 돌탑위에 세우기로 했다. 그리고 음양의 조화를 위해 여근석을 구해 옆에 세웠다.

마을에서는 이 돌탑을 다산과 풍농 등 수호신으로 모시고 매년 정월 14일에 동제를 지낸다. 농경사회에서 마을공동체 문화는 서로간의 화합을 다지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사람들은이 돌탑을 신이 내린 탑이라 해 신탑으로 부르고 있다.

1500년 전 산삼 세 뿌리를 케다가 부모보양에 쓰고 그 씨를 받아 심은 것이 금산인삼의 기원이다. 인삼을 처음 심었던 곳이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다. 예전에는 인삼의 새싹이 돋아올 무렵 이곳에 제물을 차려 치성을 드렸다.

남성들이 술잔을 올린다는 금산 성곡리 비실마을 남근석ⓒ최진연 기자 남성들이 술잔을 올린다는 금산 성곡리 비실마을 남근석ⓒ최진연 기자

성곡리 비실마을 입구에는 또 하나의 돌탑이 있다. 이런 형태의 돌탑은 산간지역인 금산·장수·무주 등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신탑, 조탑으로도 부르는데, 대체적으로 마을 앞 도로변에 쌍으로 세우는 곳이 많다.

비실마을 돌탑은 200여년전 이 마을에 사는 이씨라는 사람이 자손이 귀해 석공을 불러 돌탑을 쌓고 꼭대기에 남근석을 모셔놓고 조석으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남근의 원력인지 치성의 효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 3대까지 금산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했다. 그 후 자손들이 마을을 떠나자 그 돌탑은 헐리고 말았는데, 주민들이 남근석을 다시 찾아 깨진 귀두를 시멘트로 봉합하고 현재의 자리에 세우고 마을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비실마을 남근석은 강한 성욕과 생식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지금도 남성들이 술잔을 올린다고 한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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