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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 패륜화보, 서양선 괜찮다고? 끝까지 헛소리


입력 2015.09.05 10:01 수정 2015.09.05 10:0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국내 비판은 모르쇠하더니 외국서 비판 오자 시정?

성범죄 미화 화보 논란의 맥심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김병옥을 내세운 패륜 화보에 대해 사과하고 해당 잡지를 전량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환영할 만한 결정이다. 하지만 이 결정이 너무 늦었다. 그 바람에 또다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애초에 제기된 문제는 범죄미화 논란이었다. 여성의 다리를 청테이프로 묶어 트렁크에 집어넣고 마치 과시하는 듯한 포즈로 찍은 사진은,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지적을 듣기에 충분했다. 여성은 공포를, 남성은 잘못된 선망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이었다.

여성이 성공한 남자의 포획물처럼 묘사됨으로써 여성의 철저한 대상화, 사물화가 이루어진 점도 문제였다. 요즘처럼 여성혐오가 사회문제가 되고, 여성을 향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이런 화보가 대놓고 유포된다면 사회병증을 더욱 조장할 수 있었다.

처음 이런 문제가 제기됐을 때 바로 시정했어야 했다. 그런데 맥심 측은 범죄 누아르 영화처럼 표현했다느니, 성범죄 묘사는 아니라느니 하며 비판을 무시했다. 그러다 영국 잡지에서 ‘역대 최악의 커버’라는 지적이 나오고, 미국 맥심 본사에서 규탄 입장을 밝히자 그제서야 잘못을 인정했다.

요즘 제조업 분야 소비자들 사이에 한국인은 ‘호갱’이라는 한탄이 많이 나온다. 업체들이 해외에선 멀쩡히 잘 만들어 파는 제품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부실하게 만든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안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크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돼버렸다. 국내에서 문제를 지적할 땐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해외에서 지적이 나오자 바로 시정에 들어갔다. 한국인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무시당했다. 바로 이것이 뒤늦은 사과로 인해 발생한 또다른 문제다. 한국은 ‘화보에 대한 윤리적 판단마저도 해외 시각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인가?‘, ’우리의 수많은 비판보다 해외의 한 마디가 더 중요한가?‘라는 씁쓸함을 남긴 것이다.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결정도 황당하다. 네티즌 청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28일에 청소년 위해물이 아닌 걸로 심의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만약 영국에서 ‘역대 최악의 커버‘라는 지적이 나오고 미국에서 규탄 반응이 나온 후에 심의를 했어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잡지 폐기라는 조치가 나온 지금, 간행물윤리위원회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국가 시스템은 그동안 권력자를 향한 표현엔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념적 표현에도 엄격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표현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권력자의 불편한 심기엔 바로바로 반응하면서 약자의 항변엔 둔감한 것으로 보였다. 맥심의 패륜 화보에 관용적 결정을 내린 것과 이런 흐름이 무관할까?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무제약적인 것이 아니다. 권력자, 부자, 강자를 향한 표현엔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것이 맞다. 정치적 주장에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약자, 희생자를 향할 때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홍어 택배’로 조롱한다든지,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어묵’으로 조롱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맥심 화보는 강력범죄에 현실적 공포심을 느끼는 여성들을 향했다. 그 여성들을 향한 범죄를 남성 판타지처럼 표현했다. 표현의 자유는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맥심 패륜 화보 사태는 한국을 두 번 죽였다. 첫째, 한국이 황당한 화보가 통용되는 나라처럼 오인되게 함으로서 국격을 실추시켰고, 둘째, 잡지사도 심의기관도 한국인의 비판을 무시하고 화보의 윤리성에 대한 판단도 못 내리다가 해외의 지적이 나오고서야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이 나타남으로서 ‘이 나라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좌절감을 남겼다.

이 논란이 처음 터졌을 때,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서구 선진국은 이보다 훨씬 심한 것도 용인하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가장 발달한 미국과 영국에서 우리 맥심 화보를 보고 기겁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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