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이웃마을 남근석 때문에 바람난 처녀들 속사연


입력 2015.08.30 09:52 수정 2015.08.30 09:53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혼 - 성석기행>보령시 주산면 동오리

보령 주산면의 동오리는 면소재지에서도 약 20km 떨어진 산간 오지마을이다. 산줄기가 병풍처럼 마을 뒤를 막았고, 앞으로는 광활한 들녘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서해에서 들어오는 바닷물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에 더없는 조건이 갖춰져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 당시에 만들어 놓은 거석문화의 상징인 선돌과 고인돌의 흔적들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선돌은 대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세운 것인데, 세운 목적은 토속신앙의 대상, 죽은 이의 공로를 인정하는 기념비, 그리고 일정구간의 경계표시 등으로 구분된다.

보령지방에는 동오리와 삼곡리 동실마을에 선돌이 있다. 동오리 선돌은 높이가 2.7m 폭이 1m, 두께는 50cm 정도로 큰 편에 속한다. 이 선돌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세웠는데, 중간이 약간 굽은 형태가 남근을 닮았다. 그리고 선돌이 있다해 마을지명도 선돌마을이 됐다. 마을사람들은 이 선돌을 지팡이바위로 부르며,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정월대보름날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특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자식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동오리 마을앞에 세워진 남근석ⓒ최진연 기자 동오리 마을앞에 세워진 남근석ⓒ최진연 기자

선돌마을에는 5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고인돌 중 가장 큰 고인돌은 둘레가 무려 30m 나 되는 초대형으로 마당같이 넓고 판판해 오랜 세월동안 주민들은 마당바위로 부르며 쉼터로도 사용돼 왔다. 나머지 4기는 마당바위 동북쪽 50여m 지점에 흩어져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탁자식과 바둑판식 고인돌이 있다. 동오리의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탁자식 고인돌은 다듬어진 기둥 돌 3~4기를 땅을 파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판석의 덮개돌을 얹어 탁자나 책상모양을 하고 있다. 시신은 덮게 돌 아래 안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북쪽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어 북방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지하에 무덤을 만들고 기둥 돌 3~4기를 세워 그 위에 덮게 돌을 얹어 놓는다. 이런 고인돌은 남방식고인돌로 부르는데 주로 전라도, 경상도 등 한강이남 지역에 분포돼 있다. 동오리 주민들은 마당바위를 여자바위로 부르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마당바위로 부르는 고인돌ⓒ최진연 기자 마을사람들이 마당바위로 부르는 고인돌ⓒ최진연 기자

동오리에서 주산면으로 가는 길 삼곡리 동실마을 주변에는 구릉 경사면에 오래된 서낭당 나무 수 그루가 있다. 그 앞에 높이 2m, 둘레 1.5m의 선돌 1기가 있는데, 선돌은 윗부분을 비스듬하게 다듬어 놓았다. 옆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의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선돌은 남근석, 거북바위는 여근석으로 부른다.

동오리 바위에는 흥미진진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 날 한 장수가 마을 북쪽 왕봉산에서 마당바위를 안고 마을 남쪽 멍덕산으로 날아가는데, 갑자기 마을 위를 지날 때 천둥소리 같은 방귀를 뀌고는 자신도 놀라 안고 있던 바위와 쓰고 있던 삿갓·지팡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이 마을 앞에 흩어져 있는 지금의 바위들이라고 한다.

선돌마을 맞은편에는 화산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선돌을 보면 마치 발기된 남성의 성기처럼 뿔끈 솟아있다. 화산마을 마을처녀들은 이 남근석을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해 바람기가 작동했다. 보다 못한 화산마을 사람들은 한밤중에 선돌마을에 몰려가 남근석을 무너뜨린 사건도 있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선돌마을에서도 화산마을 뒷산에 있는 돌미륵을 뽑아버리는 일까지 생겼다고 했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최진연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