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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비틀면 유쾌한 동화 '여신님이 보고계셔'


입력 2015.08.31 09:17 수정 2015.08.31 13:26        이한철 기자

6·25 전쟁 속 '희망·꿈' 되살린 엉뚱한 상상

웃고 울고 노래하는 최고의 '힐링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주로 참혹하고 비참하게 묘사돼 온 한국전쟁을 밝고 따뜻하게 그린다. ⓒ is ENT, 연우무대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주로 참혹하고 비참하게 묘사돼 온 한국전쟁을 밝고 따뜻하게 그린다. ⓒ is ENT, 연우무대

전쟁의 암흑 속에서 이보다 더 유쾌할 수 있을까.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다시 한 번 대학로 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2012년 초연 꾸준한 입소문을 타더니, 이제는 '회전문 관객(반복해서 관람하는 관객들)'을 몰고 다니는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관객들로 하여금 참혹하고 비참한 전쟁을 한 단계 비틀어 유쾌한 동화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지극히 심각하고 슬프고 암울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웃음과 희망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젊은 관객들의 욕구에 맞아떨어졌다.

그렇다고 전쟁을 미화한 작품은 아니다. 따뜻한 웃음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관객들의 가슴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한다.

국군대위 한영범과 부하 신석구는 인민군 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라는 특별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포로들은 배 위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폭동 중에 풍랑을 만나 고장 난 이송선은 무인도에 표착한다.

문제는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류순호가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는 것. 그 와중에 인질이 돼버린 한영범의 기막힌 아이디어로 류순호를 변화시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펼치기로 한다.

타의에 의해 총대를 겨누어야 했던 그들은 전장에서 잠시 떨어진 무인도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진한 우정을 쌓아간다. 여섯 남자들은 차츰 여신의 존재에 그리웠던 첫사랑, 누이, 어머니를 대입하며 전쟁 속에 잃어버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전쟁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JSA' '인생은 아름다워' 등과 비교되곤 했지만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뮤지컬만의 매력을 더해 한 단계 진화된 모델을 제시했다.

'여신님이 보고계셔' 속 여섯 명의 남북한 병사들은 무인도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진한 우정을 쌓아간다. ⓒ is ENT, 연우무대 '여신님이 보고계셔' 속 여섯 명의 남북한 병사들은 무인도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진한 우정을 쌓아간다. ⓒ is ENT, 연우무대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능청스런 배우들의 연기, 깨알 같은 적재적소 웃음 포인트, 웃음 속에서도 놓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은 120분을 지루할 틈 없이 가득 채운다. 여기에 '누구를 위해', '악몽에게 빌어', '꽃나무 위에',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 서정적인 가사를 품은 주옥같은 넘버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무대는 싱그럽고 신비한 무인도와 거친 질감의 난파된 배, 그리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군사물품들이 섬세하게 표현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서로 대비되는 무대 장치의 공존은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또 다양하게 변하는 하늘, 거대한 철골, 꽃가루 등 지난 시즌까지 관객들의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풍경들이 오롯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는 점도 흥미를 더한다.

연습 기간부터 돈독한 우정을 과시해온 신구 배우들이 끈끈한 호흡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든든하게 지켜온 김종구, 최호중, 이준혁, 조형균, 려욱, 박정원, 최대훈, 윤석현, 손미영 등의 기존 배우들은 안정적이면서도 한층 깊어진 연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반면 고은성, 신재범, 심재현, 이규형, 송유택, 윤동현, 이지호, 유제윤, 최주리 등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난 열연과 신선한 매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박소영 연출가-한정석 작가-이선영 작곡가 등 3명의 젊은 창작자들이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큰 시너지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CJ Creative Minds 선정에 이어 2012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 최우수작에 선정돼 제작 단계부터 큰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2012년 초연은 객석점유율 95%을 기록하며 저력을 과시했고 2013년엔 국회대상 올해의 뮤지컬상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일본 공연을 진행하며 한류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10월 11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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