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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덜 털린 탓'에 매만 많이 맞은 포스코


입력 2015.08.02 10:00 수정 2015.08.02 10:07        박영국 기자

<기자의 눈>5개월째 검찰 수사 이어지며 비리집단 오명

검찰 수사관들이 지난 3월 13일 인천시 연수구 포스코건설 건물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검찰 수사관들이 지난 3월 13일 인천시 연수구 포스코건설 건물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요즘은 이력 조회만 하면 어디서 생산된 철광석이 쇳물과 철강재를 거쳐 어느 자동차회사나 전자회사로 공급되는지, 그 과정에서 원재료와 중간재, 제품 가격이 어떻게 바뀌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비리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설령 우리 회사에 나쁜 맘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가 을의 입장으로 바뀐 지 오래(철강 시장 환경 변화로)라서 돈을 찔러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뒷구멍으로 돈을 챙기겠습니까.”

최근 기자와 만난 포스코의 한 임원은 장기간 계속되고 있는 포스코건설 비리 수사가 포스코 전체의 기업이미지 악화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이같이 하소연했다.

지난 3월 12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선언과 함께 ‘시범케이스’라도 되는 양 시작된 포스코 비리 수사는 이 전 총리의 낙마 이후에도 멈춤 없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포스코는 중요한 투자유치 계약이 미뤄지고, 주가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유형적 손실보다 더 뼈아픈 것은 무형적 손실이다. 회사가 비리 기업으로 낙인찍히며 직원들의 사기가 바닥을 기고 있다.

최근 검찰 수사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수가가 끝난다고 그동안 포스코가 입은 유·무형의 손실이 원상 복구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포스코 수사는 전형적인 ‘정치권 발 표적수사’라는 지적이 많다. 먼저 표적을 정해 놓고 ‘먼지 털이’에 나서니 충분한 먼지가 모일 때까지 계속 털어야 하고, 그러다보니 수사를 질질 끄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차라리 단번에 먼지가 탈탈 털리고 빨리 끝났더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피해가 덜했을 텐데 먼지가 빨리 안 털린 탓에 매만 많이 맞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데일리안 박영국 차장대우 데일리안 박영국 차장대우
지난달 27일에는 경제단체 수장의 입을 통해 이러한 검찰 수사 관행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이뤄지기까지 했다.

당시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제주도에서 열린 ‘하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본래 수사하고자 했던 사건에 대한 혐의가 해소돼도 다른 사건이라도 찾아서 수사 결과를 관철하려는 수사 관행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무리한 기업 사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노골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회장이 기업인이 아닌 관료 출신으로 한때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본인도 기업 수사라면 해볼 만큼 해봤지만 최근의 기업 사정 행태는 도를 지나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역설적으로 김 회장이 비(非)기업인 출신 경제단체장이기 때문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한상의 회장(박용만 두산 회장)이나 전경련 회장(허창수 GS 회장)은 본인들이 이끄는 기업 안위도 생각해야 되는데 어떻게 대놓고 검찰을 비난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100년도 안 되는 기업 역사와, 그보다 짧은 대통령제 역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이 사정 당국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늘 있어왔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런 예상의 상당수는 들어맞았다.

이 진부하고 뻔한 막장드라마를 하루 빨리 그만둬야 한다. TV에서의 막장드라마는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현실에서의 막장드라마는 전 국민을 힘들게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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