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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와 빼닮은 롯데판 ‘왕자의 난’


입력 2015.07.29 19:24 수정 2015.07.30 12:03        박민 기자

고령 아버지 판단력 흐려진 틈에 ‘왕좌 다툼’

‘지분 증여’ 등 후계 구도 명확하지 않아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

지난 28일 롯데그룹에서 일어난 '형제의 난'은 여러모로 지난 2000년 현대가에서 발생한 ‘왕자의 난’과 닮아있다. 당시 고령인 창업주의 건강이 악화된 틈을 타 벌어진 일이라는 점과 또한 후계 구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특히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대표이사직에서 모두 퇴진하면서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은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롯데그룹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27일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동생인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을 비롯 6명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즉각 반격에 나섰고, 긴급 이사회를 통해 오히려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해임하면서 2세 경영체제를 굳건히 했다. 대신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지만 이는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고령인 창업주의 건강이 악화된 틈을 타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2000년 현대가의 ‘왕자의 난’과 닮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1922년생으로 올해 94세의 고령인 신 총괄회장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이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현대가의 ‘왕자의 난’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와병 중인 상황에서 벌어졌다.

현대가 ‘왕자의 난’은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공동회장을 역임할 당시 86세였던 정 명예회장의 병상 중에 발생했다.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해임하면서 두 형제간에 다툼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정 며예회장이 결정을 뒤바꾸면서 흐릿한 판단력이 도마위에 올랐다. ‘경영권 승계’에 대한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몇 번의 분쟁이 더 발생했고, 결국 현대가 ‘왕자의 난’은 그룹이 분할되고 나서야 끝났다.

따라서 이번 롯데그룹 ‘형제의 난’도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차례의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 형제간 계열사 지분 관계가 엇비슷한데다 후계구도도 명확하지 않아 분쟁의 불씨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극단으로 치닫을 경우 현대가처럼 그룹 계열분리나 지분을 놓고 소송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신 총괄회장은 그동안 지분 증여를 통해 후계 구도를 정리는 대신 장남과 차남에게 각각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맡긴 뒤 경영 능력을 저울질해 왔다. 그러다 지난 1월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됐고, 이달 16일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표면상 승계를 잇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27일 돌연 신 회장을 일본롯데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는 등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여 의중을 더욱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동주·동빈’ 형제의 그룹내 지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신 총괄회장이 누구에게 지분을 증여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배도 갈리게 될 전망이다.

현재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일본)→ 호텔롯데(한국)→ 롯데쇼핑(한국)→ 롯데그룹(한국) 등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광윤사는 일본 롯데의 지주사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갖고 있고,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격인 호텔롯데 지분 19.07%를 갖고 있다. 광윤사는 비상장법인이어서 자세한 지분 내역은 비밀에 싸여 있지만 신 총괄회장이 약 50%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사인 롯데홀딩스의 경우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20% 안팎으로 비슷하다. 신 총괄회장의 지분율은 28% 정도로 두 아들보다 높다. 결국 신 총괄회장이 소유한 광윤사와 롯데홀딩스 지분을 물려받게 될 사람이 그룹 지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롯데 계열사 지배의 ‘캐스팅보트’는 두 사람의 이복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쥐고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의 지분을 1% 안팎 갖고 있는데 이를 신 전 부회장의 지분과 합치면 신 회장의 지분과 맞먹거나 더 많아진다. 두 사람이 연대해 신 회장과 맞설 경우 롯데그룹은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민 기자 (mypark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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