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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1000억 기부?...'반쪽' 조정안, '원점' 되돌리나


입력 2015.07.24 14:28 수정 2015.07.24 17:34        김유연 기자

삼성전자 보상산정과정 일체 간여 못해...반올림측 요구만

사업장 수시 점검 옴브즈만시스템 경영권 침해 소지

김지형 삼성직업병문제 조정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 직업병 보상 등에 대한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형 삼성직업병문제 조정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 직업병 보상 등에 대한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고민에 빠졌다. 4개월 만에 침묵을 깨고 나온 삼성직업병문제 조정위원회의 조정안 때문이다.

23일 공개된 조정안은 대부분 반올림과 가족대책위원회의 요구조건을 수용한 '반쪽짜리 조정안'이라는 평이다. 이 때문에 삼성직업병문제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아들기 어렵다고 밝힌 내용이 포함돼 고민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히며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날 발표된 조정안은 삼성전자의 1000억원 기부를 통한 공익법인 설립, 보상, 재해예방대책, 사과 등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이중 삼성을 고민에 빠지게 하는 대목은 재해예방대책과 보상대상, 사과 문제 3가지이다.

공익법인을 설립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익법인 이사회에 삼성전자 등 재계 관계자가 전혀 포함되지 않는데다 1000억원을 소진하면 추가 출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옴부즈만 시스템을 구성해 삼성전자의 영업기밀 시행 규정을 공익법인이 만들고 이를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경영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반도체업종의 특성상 반드시 보안유지를 필요로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업비밀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조정위가 권고한 공익법인의 발기인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경실련, 참여연대, 산업보건학회, 한국안전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등 7곳의 단체로부터 1명씩 추천받아 위촉된다. 발기인은 공익법인 설립 후 공익법인의 이사가 돼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를 구성하게 된다. 법인은 조정권고안에서 정한 원칙과 기준을 준수, 보상과 대책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한다.

문제는 이 공익법인에는 삼성전자나 재계 측의 입장을 반영할만한 이사는 단 한 명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기부만 할 뿐, 보상 산정 과정에서 일체 관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보상대상과 범위도 문제다. 우선 협력업체 노동자도 보상대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전 세계 곳곳에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체들로서는 뒷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보상범위 질환도 대폭 넓어졌다. 조정위는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골수증, 골수이형성증,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뇌종양, 생식질환, 차세대질환, 희귀질환, 희귀암, 난소암 등 12종을 질환 범위로 잡았다. 당초 삼성이 요구했던 것보다 질환의 범위보다 넓어졌다.

또한 이미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이 1년 전 공개사과를 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대표이사 사과와 함께 조정 당사자들의 노동건강인권을 위한 공동선언 등 난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참여연대, 경실련 등이 참여하는 공익법인의 구성이 노동자 쪽에 경도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수정안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조정위가 제시한 법인설립은, 목적사업을 위한 것으로 비쳐진다"면서 "누구로 구성될지 모르는 사람들이 회사에 시정, 지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야 할 조정위가 4개월 만에 일방적인 권고안을 내놓은 것 같다”며 "이는 기업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한 조정안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정위가 이번 권고안에 대해 사회적 통념을 강조했는데, 그 사회적 통념이 반올림 등에는 통했지만, 삼성전자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3주체의 한 축인 삼성전자의 입과 발목을 꽁꽁 붙들어맨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조정안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정권고안에 이의가 있다면 오는 8월 3일까지 제기할 수 있다. 수정제안이 있고, 다시 절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후속 조정절차가 진행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 조정안이라면 결국 파행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면서 "조정위의 보다 공정하고, 세심한 조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와 가족위, 반올림 등은 삼성직업병 문제해결을 위해 지난해 10월 대법관 출신의 김지형 변호사를 조정위원장으로 선임한 이후 12월 조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정위는 올해 1월 16일 2차 공개조정기일에서 주체별 입장을 담은 제안서을 받은 후 1월 말과 3월 초, 협상 3주체와 개별 면담을 가졌다.


김유연 기자 (yy908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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