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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여성들의 음기 누르려 남근석 세웠으나...


입력 2015.07.19 10:47 수정 2015.07.19 10:48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 - 성석기행>서산 고북일대는 선돌군락지

충남 서산 고북지역에는 마을마다 선돌이 있다. 이들 선돌은 선사시대 이래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다. 왜 이들 마을에 유별히 선돌이 많을까?

선돌을 세울 때는 지역수장의 사후 업적을 나타내는 기념비였으나, 어느 시대부터인가 선돌은 죽은 이의 업적을 떠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생각했다. 즉 풍농과 다산을 바라는 신앙숭배의 대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고북면 신송1리 마을 앞 커브길 도로 옆에는 괴이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마을에서는 ‘비녀바위’로 부르고 있다. 옛날 여인들은 비녀를 남성의 성기로 상징했다 한다.

비녀바위는 자연석을 망주석처럼 반듯하게 다듬어 세웠는데 힘찬 모습이다. 결혼한 여인이 자식을 얻기 위해 여기에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전설의 바위다. 형태는 위로 갈 수 록 끝이 좁아지며, 높이는 약 1.6m, 둘레가 50cm 정도다.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비녀바위ⓒ최진연 기자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비녀바위ⓒ최진연 기자

정월대보름에는 매년 마을사람들이 비녀바위 앞에서 삼재팔난(三災八難) 퇴출을 위한 동제를 지낸다. 제가 끝나면 만사형통, 농사대풍 등 각 가정에 태평성세를 기원하며 농악과 지신밟기, 윷놀이와 민요를 부르며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해미를 지나 홍성방향으로 29번 국도를 따라가면 고북면 소재지다. 소재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약 500m 정도 들어가면 가구리 마을이 나온다. 가구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띄엄띄엄 한두 채의 민가들과 경작지 사이로 농로만 뚫려있다.

농로 옆에는 마을사람들이 '개좃바위'로 부르는 남근석이 잘 보존돼 있다. 높이가 1.3m, 둘레는 약 57cm 정도인데,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보기에도 개의 생식기를 빼닮았다. 더구나 위쪽이 요상하게 휘어졌다.

이 남근은 여인들이 만지면 바람이 난다고 해 접근을 막고 있다. 지금은 철제 울타리를 둘러 보호하고 있다.

개의 생식기를 닮은 가구리선돌ⓒ최진연 기자 개의 생식기를 닮은 가구리선돌ⓒ최진연 기자

선돌을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마을에서는 여인들의 음기를 누르기 위해 세운 남근석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동제를 지냈으나 오래전에 중단됐으며, 주민들이 신성시해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주소는 고북면 가구리 239-1을 찾을 수 있다.

정자리 선돌은 고북면 소재지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남서쪽 정자리와 봉생리의 경계 지점에 있다. 1990년 지표조사에서 2기의 선돌이 발견됐는데, 1호 선돌은 폐교된 삼포초등학교 앞, 제7일 안식일 교회정문 앞에 쓰러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높이 1.6m, 둘레 43cm, 두께 35cm다.

2호는 1호에서 남쪽 10m 떨어진 곳에 있다. 모양은 세모꼴이며, 마을에서 바깥쪽을 향해 세웠다. 2호 선돌은 여근석으로 부른다. 높이가 약 1.m, 둘레는 62cm, 두께는 52cm다.

여근석으로 부르는 정자리선돌ⓒ최진연 기자 여근석으로 부르는 정자리선돌ⓒ최진연 기자

현재 1호 선돌은 사라지고 2호 선돌만 남아 있다. 이 일대는 낮은 구릉이 많고, 주변에서 돌화살촉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선돌 역시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초까지 마을에서는 정자리 선돌에 동제를 지냈으나 중단됐다 한다. 서산 고북 지역에는 이외에도 탑동선돌, 온석동 선돌, 용암리 선돌 등 선돌이 많이 남아 있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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