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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업을 벌처펀드 먹잇감 만든 '참 나쁜 규제'


입력 2015.07.07 11:25 수정 2015.07.07 13:44        김평호 기자

<해외투기자본 이대로 놔둘건가-중>주주의결권 제한

반기업정서 확산도 빌미…소액주주 지키려다 국부유출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사진 왼쪽)와 엘리엇 홈페이지 캡처.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사진 왼쪽)와 엘리엇 홈페이지 캡처.


[기획]삼성-엘리엇 사태로 본 해외투기자본의 국내기업 공습 실태와 문제점

(상)"약탈자 주제에 정의의 사도?" 해외투기자본의 인면수심
(중)한국기업, 벌쳐펀드 먹잇감 전락 왜?
(하)경영외풍 막으려면?-정책과 제도 개선 및 전문가 진단
[인터뷰]"국내 기업 환경에 맞는 경제민주화 재정립 필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에 제동을 걸며 압박에 나서고 있는 상황은 비단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그룹 오너일가가 소수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국내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 특히 정부 주도하의 지배구조 전환 등으로 인해 엘리엇 등 벌처펀드(수익을 위해 상식을 넘어선 공격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물산 지분율이 13.8%에 불과하다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엘리엇이 파고들며 권리 행사에 나섰다.

또한 삼성처럼 외국인 지분이 많은 일부 그룹의 경우 순환출자의 약한 고리가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순환출자의 핵심인 현대모비스에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고, SK그룹의 SK텔레콤도 외국인이 44.45%, 우호 세력은 37.37%의 지분을 소유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외국인 지분율이 30%를 넘어섰다.

국내 대기업들이 언제든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IMF로 취약해진 지배구조 … 틈새 비집고 들어온 외국계 자본=국내 대기업이 외국계 자본의 공력을 받은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번 있었다.

앞서 삼성물산은 2004년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의 지분 5%를 사들여 우선주 소각을 요구하면서 경영 분쟁에 휘말린 바 있고, SK그룹은 2003년 ‘소버린 사태’로 홍역을 치렀고, KT&G도 외국계 자본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바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와 대기업 간 분쟁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발생했는데 이는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취약해진 것에서 출발했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정부는 대기업의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로인해 대기업 오너와 특수관계인의 지분(내부지분)이 낮거나 출자구조 개편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등 대수술을 할 경우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는 위험도 고스란히 따라왔다.

사진출처 www.telesurtv.net 사진출처 www.telesurtv.net

여기에 외환위기로 인해 국내 자본시장이 대거 개방되자 국내 대기업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요구 등 경영 간섭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이처럼 벌처펀드가 국내 대기업들을 공격대상 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이들 기업의 대주주나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낮기 때문이다.

외국계 자본 입장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기업총수나 경영진의 성향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돌변해 경영간섭에 나서거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도입한 제도가 국제 금융 자본의 이해관계만 반영해 이런 위험에 노출됐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IMF 체제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도입한다면서 너무나 많은 개혁들을 급진적으로 도입했다”며 “IMF 체제에서 너무 많은 개혁을 서둘러 도입하다 보니 당시 한국 자본시장 정책이 굉장히 많은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국제기구나 금융기관 보고서 등에서 이상화된 형태로 내놓은 것들인 경우가 많다”며 “그 결과 한국은 단기 투기자본이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시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 대부분을 상실했고 투자 동력도 약화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규제완화로 적대적 M&A를 손쉽게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주식매매 차익에 대한 비과세, 감사선임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 3%제한, 이사 중 사외이사 2분의1 이상 선임 등 소액주주 및 투명경영을 내세우며 도입된 각종 제도로 경영권 방어수단은 부족한 상황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국제적 투자는 불가피하다"면서 "그러나 우리 법률은 미국이나 일본 등이 다 인정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나 포이즌필은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감사선임 시 주주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않는 이상한 규정은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빗나간 경제민주화·반재벌 정서도 헤지펀드에 빌미=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벌이는 법적 분쟁에서 소액주주들이 엘리엇을 지지한데는 정부의 빗나간 경제민주화정책도 한 몫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기업의 투자확대와 임금인상, 주주환원 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아직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구실로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총수 일가가 보유한 ‘가공의결권’을 제한했으나 이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의 민주화도 기업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보장된다는 전제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을 정부가 간과한 셈이다.

이같은 경제민주화는 곧 반재벌 분위기로 직결됐다.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간섭을 받으면서 기업들은 극도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도한 재벌규제 등 국내 반재벌 정서는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으로 연결됐다. 실제 엘리엇은 국내 반 재벌 정서에 호소하며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반기업·반재벌 정서도 한국을 외국 투기자본의 봉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제도적 결함,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투기자본의 힘을 빌리다가는 막대한 국부유출과 기업 투자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 모두가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될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국내 기업들도 헤지펀드 공격의 빌미가 되는 지배구조나 주주정책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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