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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인과 첩까지...여근 둘 거느린 남근석의 사연


입력 2015.06.28 10:08 수정 2015.06.28 10:09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 - 성석기행>충북 청원 도원리의 '수살장군'

옛부터 복숭아가 많기로 소문난 도원리 어은마을은 1급수에서 서식하는 토종물고기가 많을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이 어은마을 도로변에는 4기가 선돌이 일직선상에 배치돼 있는데, 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서 있어 북쪽부터 1·2·3·4호의 선돌로 구분하고 있다.

1호 선돌은 어은마을 북쪽입구에 있다. 마을에서는 ‘수살장군’ 또는 ‘수구맥이’로 부르기도 한다. 이 선돌의 높이는 133cm, 넓이 70cm, 두께 27cm 정도로서 윗부분은 인위적으로 둥글게 다듬어 놓았는데 여성을 상징한다.

 1호 선돌은 수구맥이로 부르는 본부인ⓒ최진연 기자 1호 선돌은 수구맥이로 부르는 본부인ⓒ최진연 기자

2호 선돌은 마을중앙으로 통하는 작은 길 옆, 논둑에 서 있으며 남성으로 다듬어 놓았다. 높이는 134cm, 넓이 56cm, 두께 24cm이다. 3호 선돌은 마을 남쪽 밭둑에 있으며, 임신한 여성의 모습이다. 지금도 자식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전한다. 높이가 102cm, 넓이60cm, 두께 35cm다. 4호 선돌은 3호와 1.5m 사이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데, 크기가 작아 임신한 3호 선돌이 낳은 아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높이 35cm, 넓이는 30cm, 두께 18cm다.

1,2,3호 선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4호는 석영암으로 세웠는데, 마을사람들은 1호 선돌은 본부인, 2호는 남편, 3호는 본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새로 얻은 부인이라고 예부터전해오고 있다고 했다. 4호 선돌은 둘째 부인(3호 선돌)이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이들 4기의 도원리 선돌 모양은 청주지역의 선돌과 함께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 새벽 4시에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2호 선돌은 남편을 상징한다ⓒ최진연 기자 2호 선돌은 남편을 상징한다ⓒ최진연 기자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돼 있는 남근석은 남자의 성기처럼 인위적으로 자연석을 다듬어 세우거나 아니면 성기를 닮은 자연암석에 풍년·풍어·자손만복 등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리고 있다. 또는 질병이나 악신으로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켜주는 토속신앙 물로서 정성을 다해 숭배하고 있다.

남근숭배 신앙은 선사시대부터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는 약 840여기 성석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산업화로 대부분 사라지고 120여기가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고고 민속학적 유물로는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암각화가 유명하다. 높이 4m, 넓이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이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3호 선돌은 들째부인ⓒ최진연 기자 3호 선돌은 들째부인ⓒ최진연 기자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암각화는 지금도 물에 잠겼다가 들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바위표면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묘사돼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이 표현돼있다.

이런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을 사용한 것을 볼 때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해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 있게 표현해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 작품으로 평가된다.

4호 선돌은 둘째부인의 아들로 부른다ⓒ최진연 기자 4호 선돌은 둘째부인의 아들로 부른다ⓒ최진연 기자

그리고 신라토우나 고배뚜껑에도 성기를 크게 만들어 붙인 것도 있으며, 배모양 토기에도 뱃사공의 남근을 큼지막하게 조각한 형태도 있다.

특히 정교하게 가공된 목제 남근이 발굴된 안압지의 유물, 성 체위 묘사, 조선시대의 미륵불과 함께 존재하는 양근석, 남자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조각한 순창의 남근석, 전국에 산재한 무수한 선돌신앙 등에서 우리는 성기숭배의 역사적 전승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성신앙에 대한 역사적 문헌기록은‘삼국유사'‘선덕왕 지기삼사’의 옥문지에 얽힌 여근곡의 전설,‘오주연문장전산고'의 부군당에 목제남근을 당 안 네 벽에 봉안했다는 기록 등 약 3,000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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