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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난이 계속되는 이유는...예의가 없어서다


입력 2015.06.27 10:01 수정 2015.06.27 10:02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난세는 원려 쇠하고 근우가 창궐하는 세상

공자가 말했다.

“사람에게 먼 염려(원려, 遠慮)가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근우, 近憂)이 있다.”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論語 衛靈公 11)

여기서 원려(遠慮)의 ‘원(遠)’은 근우(近憂)의 ‘근(近)’ 과 대조된다. ‘원’은 장기적, 보편적, 추상적이다. ‘려(慮)’는 ‘우(憂)’와 대조된다. ‘려(慮)’는 ‘우(憂)’를 예방하거나 제거하려고 자신이 원하여 능동적으로 행하는 예측, 대책 수립, 실시, 모니터링, 이 4 가지로 이루어지는 사이클일 것이다.

‘근우(近憂)’의 ‘근(近)’은 단기적, 국소(局所)적, 구체적 등의 뜻을 갖는다. ‘우(憂)’는 원하지 않는데 닥치는 우환, 재앙, 사고일 터다. 천안함 폭침, 경제 난국, 세월호 침몰, 메르스 국내 전염 등은 한국민이 겪은 대형 근우(近憂) 시리즈다.

공자보다 약 800년 앞서 은(殷)나라의 재상(宰相) 부열(傅說)이 임금 고종(高宗)에게 말했다.

“오직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대비가 있어야 합니다. 대비가 있으면 환난(患難)은 없게 됩니다.” (惟事事 乃其有備 有備無患, 書經 商書 說命 2)

공자의 “원려(遠慮)가 없으면 근우(近憂)가 있다”의 원려(遠慮)는 부열(傅說)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비(備)와, 또 근우(近憂)는 환(患)과 얼추 같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다른 점이 있다. 공자가 만일 부열(傅說)의 관점을 그대로 따랐더라면 “원려가 없으면 근우가 있다”고 말하는 대신에 “원려가 있으면 근우가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유비무환은 모든 환난에는 그것을 예방하거나 격퇴할 대비책에 관한 지식이 있다는 확정적 언명(言明)이다. 반면 “원려가 없으면 근우가 있다.”는 말은 원려를 하더라도 근우가 생길 수 있음을 배제하지 않는다. 모든 원려가 근우를 없애는 완벽한 지식의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열의 유비(有備)에 포장되어 있는 지식론은 유비(有備)와 무환(無患)을 결정론적으로 연결시켜 놓은 만능적 기계론적이다. 반면 공자는 사람의 지식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아마도 사람의 지식이 분석해 낼 수 없는 복잡론적 영역에 대한 인식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공자가 제자인 자로에게 말했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앎이니라.” (논어 爲政 17).

이성의 한계를 강조한 하이에크의 지식론이 하이에크적 자유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면 공자의 모름을 알아야 한다는 지식론은 유교의 기본 교리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하이에크적 자유주의는 루소의 일반 의지의 독재 회귀와 레닌의 계획경제의 실패를 보아 냈다. 그 대안으로서 재발견된 것이 사회의 암묵적 행동 규칙과 거기에서 유래하는 법률이 지배하는, 그런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의 우월성이었다.

예기(禮記)와 춘추(春秋)에서 공자는 시대의 변천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대동(大同), 소강(小康), 난세(亂世)가 그것이다. 대동과 소강은 한데 묶어 치세(治世)라고 부르기도 한다. 치세는 난세와 대비된다. 대동은 태평(太平)이라고도 불리거니와 원시공동체 사회의 모습이다. 권력은 선양(禪讓)으로 계승되었고, 경제는 똑같이 노동하고 똑같이 분배 받았으므로 평등이 달성되었다. 이런 시대는 요순(堯舜)으로 끝이 났다. 하(夏)나라 우(禹)왕 이후 동주(東周)에 이르는 시대는 치세(소강)와 난세가 반복되는 시대였다. 권력은 세습제로, 경제는 사유제로 확고해졌다.

공자는 치란(治亂)이 반복하는 원인이 예(禮)에 있다고 보았다. 예가 왕성하면 치세를 이루었다가 쇠약하면 난세가 온다는 것이었다. 예(禮)는 행동 규칙으로서 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각 자신들에 해당하는 예를 지킴으로써 태평의 버금, 즉 소강(小康)이 구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을 주목하였다.

공자는 예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이런 예(禮)가 무너져 가고 있는 근우(近憂) 속의 춘추시대를 살았다. 춘추시대는 이미 난세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의 원려(遠慮)는 주(周)나라 초기의 예(禮), 즉 주례(周禮)였다.

난세는 원려(遠慮)가 쇠하고 근우(近憂)가 창궐하는 세상일 것이다. 순자(荀子)에는 난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 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좇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이 거칠다.” (亂世之徵 其服組 其容婦 其俗淫 其志利 其行雜 其聲樂險. 荀子 第二十篇 樂論)

서양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적 현대문명과 민주주의는 순자에서 말하는 난세(亂世)의 특징을 다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서양의 근대는 대체로 난세는커녕 소강 이상의 질서와 번창을 구가하였다. 거기에는 법의 지배라는 원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근우(近憂)는 지금 대충 4 가지가 있다. 경제난국, 부패척결, 남북관계, 기후변화가 그것일 것이다. 이 모두를 다스리는 데 으뜸되는 원려(遠慮)는 법체계를 자유주의 원칙으로 개정하고 평등한 법의 지배를 강화하는 것일 것이다.

경제난국은 결코 수요부족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공급의 문제다. 경제적 생산이란 것은 수요를 만들어 내는 경쟁력을 갖춘 생산이라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생산 요소는 자본이나 노동보다 기업가 능력(entrepreneurship), 기술, 시장의 효율이다. 이 가운데서도 기업가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국가가 기업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긴요한 것은 기업 활동에 대한 자유와 관용이다.

부패는 공권력의 부패다. ‘대가성 없는 금전’ 등 낯간지러운 언어부터 퇴장시켜야 할 것이다. 부패한 권력이 없는데도 돈을 갖다 줄 장사꾼은 없다.

남북관계도 자유주의 원칙을 강화하는 것이 그 해결의 단초일 것이다. 남한 인민의 자유를 북한의 무력침공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남북관계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화전(和戰) 양면이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는 즉시 한미 방위조약과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통일을 남북관계의 전제에서 제외해 두는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관계처럼 보통의 인접국으로서 수교 왕래 통상을 꾀하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의외로 빨리 닥쳐올 수도 있다. 그럴 때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같은 것은 한가할 뿐만 아니라 근거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가장 큰 위협은 강수량 부족일 것이다. 예컨대 바닷물의 담수화 프로젝트 같은 것이 시급할 수도 있다.

글/강위석 경제평론가·시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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