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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중립성 'FIFA 마피아'에겐 위기


입력 2015.05.29 09:45 수정 2015.05.30 08:50        데일리안 스포츠 = 임정혁 객원칼럼니스트

미국, FBI 앞세워 스위스 소재 검은돈 챙긴 FIFA '단죄'

중립 색채 공유 스위스-FIFA 관계 이번 사건으로로 재해석 전망

제프 블래터 FIFA 회장. ⓒ 게티이미지 제프 블래터 FIFA 회장. ⓒ 게티이미지

절대 권력을 자랑하던 국제축구연맹(FIFA)에 급제동이 걸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앞세운 미국이 FIFA를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FIFA 본부가 있는 스위스도 중립성이라는 오묘함에 숨어 버렸다.

지난 27일(한국시각) FBI와 스위스 경찰은 취리히에 있는 바우어 오락 호텔을 급습해 FIFA 고위 관계자들을 체포했다. 부정부패 혐의에 둘러싸인 이들은 곧 미국으로 압송돼 형사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이 FIFA를 대대적으로 단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체포된 이들은 올해 남미축구선수권대회와 그간의 월드컵을 비롯해 24년 동안 1675억 원 이상의 '검은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1998년부터 FIFA를 이끈 제프 블래터(79·스위스) 회장은 이번 사태에서 측근들을 잃었다. 스위스 경찰과 FBI가 이날 체포한 FIFA 고위직 9명, 미국과 남미 스포츠마케팅 회사 관계자 4명, 뇌물수수 중개자 1명 등 총 14명은 모두 블래터 회장의 오른팔과 같았다.

오는 29일 취리히에서 열리는 회장 선거에서 블래터 회장은 5번째 연임을 노리고 있는데 갑작스레 큰 악재를 만난 셈이다. 아직은 블래터 회장 연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이번 사건은 FIFA의 비리를 국제 사회 이슈 한가운데 두겠다는 미국의 경고다.

사실 FIFA의 부정부패는 예전부터 지적된 사안이다. 독일 저널리스트 토마스 키스트너는 2012년에 내놓은 자신의 저서 ‘피파마피아’에서 "FIFA는 들끓는 공격성과 배타적인 국수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조직범죄의 냄새까지 짙게 풍긴다"고 꼬집었다. 이어 "블래터는 혼자서 FIFA의 재무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등 그의 연봉과 활동비는 아무도 모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왜 미국이 FIFA 수사하나

스위스에 있는 FIFA를 미국이 수사하는 게 의아할 수 있다. 게다가 FIFA는 그 어떤 국가도 수사권이 없는 국제기구다. 하지만 스위스가 체포 과정에 참여한 것은 미국의 요청 때문이다. FBI가 스위스 당국에 관련자들의 체포 의사를 전했다고 스위스 연방 법무부는 설명했다.

스위스는 세금 관련 범죄만 아니면 범죄인 인도가 가능하도록 미국과 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 또한 자국 금융기관을 통해 비리가 이뤄지면 외국인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제기구를 수사할 수 있는 국가는 없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법을 당당하게 근거로 내민 것이다. 이날 체포된 FIFA 관계자들은 미국 은행 계좌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월드컵 중계권료 때문에라도 이번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에 가장 많은 중계권료를 지급하는 곳은 미국 방송사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FIFA는 TV 중계권료 포함 마케팅 판권으로 약 6조30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세계 제일'을 자부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월드컵으로 떼돈을 벌면서 자신들의 돈까지 가져가는 FIFA가 눈엣가시였다. 게다가 그들이 미국 언저리에서 부정부패까지 저질렀으니 달가웠을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중립주의'와 '비밀주의'를 지켜온 스위스의 기조가 위기 상황에서는 FIFA에 큰 도움이 안 됐다. 여기에 더해 스위스 경찰은 FIFA 본부를 압수 수색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과 2022 카타르월드컵 개최 선정과 관련된 문서들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가올 두 월드컵은 끊임없이 유치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고 지적되는 대회다.

스위스와 FIFA의 인연은?

미국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스위스가 FIFA 급습에 협조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스위스 법무부가 "FIFA에 이토록 부패가 만연돼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취리히에 근거를 둔 FIFA는 비영리단체라는 특성이 있어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 스위스 특유의 중립성도 '정치와의 분리'를 지향하는 FIFA의 성격과 어울린다. 다만, 지난 1월 스위스 조세 당국은 80년 동안 이어온 '은행 비밀주의'를 폐기하기로 했다. 부정한 돈에 대해서는 변화의 싹을 틔운 것인데 이번 사건의 연장선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스위스와 FIFA의 만남은 적절했다. 스위스는 1904년에 FIFA 창립 회원이 되면서 세계 축구 행정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사실 FIFA는 같은 해에 프랑스 땅에서 먼저 조직됐지만 당시 프랑스는 축구협회나 리그가 없었다. 동북부에 있는 일부 항구도시나 공업지역에서만 축구를 즐기던 시기라 기반이 약했다.

반면에 프랑스와 인접한 스위스는 1800년대 중반 건너온 영국인들이 로잔, 제네바, 취리히 등에서 금융과 무역 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1895년에 스위스 축구협회가 창설됐다. 이때부터 중립성과 비밀주의를 기반으로 FIFA가 스위스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축구 역사 속에서 스위스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에 축구를 퍼뜨리는 데 큰 도움을 준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중립'이라는 색채를 공유한 스위스와 FIFA의 관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해석 될 전망이다. 실제 이번 사건 이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사법권을 다른 나라로 확대하려 한다"면서 "미국이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일에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월드컵이 엮여 있어 하는 말이겠지만 FIFA가 러시아를 비롯한 중립국이 아닌 곳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나마 든다.

임정혁 기자 (bohemian1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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