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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소모적 ‘불문율 논란’ 왜 끊이지 않나


입력 2015.05.25 12:22 수정 2015.05.25 12:29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한화-kt, 무관심 도루-투수교체로 신경전

모호한 기준에 감정싸움..실력으로 설욕해야

지난 23일 한화와 kt의 경기는 불문율 논란으로 후끈 달아 올랐다. (KBS N 스포츠 방송 캡처) 지난 23일 한화와 kt의 경기는 불문율 논란으로 후끈 달아 올랐다. (KBS N 스포츠 방송 캡처)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가 불문율 논란에 휩싸였다.

한화가 승리했던 23일 경기에서 9회 벌어진 무관심 도루와 연이은 투수교체가 발단이었다. 경기가 끝난 이후 kt 주장 신명철이 한화 선수단에 항의하며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장면은 방송중계를 지켜보던 팬들과 현장에 있던 팬들이 똑똑히 목격했고, 관련 내용이 온라인에서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등 이날 승부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야구계에서는 흔히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는 무리한 번트나 도루를 하지 말자는 문화가 있다.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경기에서 투수를 점검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개는 지고 있는 쪽의 선택이다. 이러한 불문율은 물론 공식적인 규정은 아니지만 스포츠맨십에 따라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한 암묵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불문율을 받아들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오히려 "프로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의무"라는 시각도 많다. 불문율이 고정관념이고 시대착오적인 관습이라고 보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는 것. 한 이닝에도 5~6점이 교차할 수 있는 야구에서 과연 승리가 보장된 점수 차의 기준은 무엇이며, 경기가 끝나기 전에 승부를 포기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사실 불문율의 본질은 결국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승부에 고의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서로 매너를 지키자는 것이다. 흔히 스포츠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진짜 전쟁과의 차이점은 엄연히 룰이 있는 승부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함께 공존하는 동업자라는 점이다. 법이나 규정으로 정할 수 없는 상호 신뢰의 문제다.

사실 불문율은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에도 있다. 야구라는 종목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축구, 농구 등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불문율이 왜곡되고 있는 현상은 결국 팀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태도가 전혀 다른 이중적인 태도에 더 문제가 있다.

한화는 지난 4월 롯데와의 경기에서 빈볼 시비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당시 롯데가 초반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도루를 한 것이 한화를 자극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한화는 빈볼을 던진 가해자였지만 불문율 논란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입장이었다.

공교롭게도 한 달 만에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kt 측에서는 한화가 불문율을 어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롯데나 kt는 한화처럼 상대에게 빈볼을 던지는 식의 보복성 플레이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한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팀이 한 번씩은 자유로울 수 없는 사안이다. 비슷한 상황인데도 내가 도루나 투수교체를 하면 최선을 다한 것이 되고, 상대가 하면 불문율을 어겼다고 방방 뛴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 결국 서로의 신뢰를 잃고 야구가 감정싸움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나마 불문율 논란이 벌어지고 난 직후, 양 팀은 확전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kt 측에 "불쾌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의 뜻을 표시했고, 조범현 kt 감독도 "팀 사정에 따라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야구"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kt는 불문율 논란이 벌어진 다음날 한화를 대파하며 신경전이 아닌 실력으로 설욕했다. 팬들이 원하는 것도 결국 양 팀 모두 소모적인 신경전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증명한 장면이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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