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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의 143일, 교훈은 남기고 상처는 아물길


입력 2015.05.23 09:00 수정 2015.05.23 10:00        박영국 기자

<기자의 눈>'재벌의 역사'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리 잡는 계기 기대

'땅콩회항'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연합뉴스 '땅콩회항'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연합뉴스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는 ‘재벌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최종건, 조중훈 등 굴지의 대기업을 일으킨 창업자들은 한국 산업의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창업자의 손자나 증손자, 즉 재벌 3·4세가 사업을 물려받았거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재벌의 역사가 새로운 세대를 맞으면서 재계에서는 일찌감치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재벌 1세는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킨 세대고, 2세는 성인이 돼서는 부친이 일으킨 사업을 물려받았을지언정 어릴 적에는 가난한 집에서 부친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하지만 3세부터는 다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집이 부자였으니 자신은 물론 아버지 세대가 고생하는 모습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니 일반 대중과의 교감은 희박하고 그만큼 대중과의 관계에서 충돌 위험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초 만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이른바 ‘오너 3·4세 리스크’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오너 3·4세 리스크’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희생양’을 언급했다.

“당사자에겐 불행한 일이겠지만 누군가는 희생양이 돼야 할 겁니다. 누군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가 가혹할 정도로 역풍을 맞아야 다른 오너 3·4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는 계기가 되겠죠.”

데일리안 박영국 차장대우. 데일리안 박영국 차장대우.
이 관계자의 우려 섞인 예측은 불행하게도 그 해가 가기 전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땅콩회항’ 사건이 그것이다.

조중훈 한진 창업주의 손녀이자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이 사건으로 모든 사회적 지위를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으며, 가족과 떨어져 수감 생활까지 해야 했다.

지난 22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지만 이미 1심에서 받은 형량(1년)의 40%가량을 구치소에서 지냈다.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의 143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다른 오너 3·4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사례도 없을 것이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조현아 사건 이후 기업도 오너 리스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됐고, 오너 일가도 매사에 조심스러운 모습”이라며 “(땅콩 회항 사건이) 오너 리스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 본인에게도 이번 일이 따끔한 ‘예방주사’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22일 조 전 부사장의 항소심 판결 이후 “이번 일을 계기로 조 전 부사장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면서 인생관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땅콩회항 사건이 당사자들은 물론 지켜보는 이들에게까지 큰 상처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같은 일로 사람들이 상처를 입을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낮추는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일이 한국 ‘재벌의 역사’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더 성숙하게 자리 잡는 계기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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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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