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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크로스, 북이 무너지는 날 당신들을 기억할것


입력 2015.05.23 09:53 수정 2015.05.23 10:00        신보라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칼럼>인류 최악의 지옥을 찬양한 당신들을...


DMZ(비무장지대)는 한반도 분단의 상징입니다. DMZ를 걸을 수 없는 우리는 3년 전부터 여름이 되면 비무장지대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5~20km 떨어진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을 청년대학생 100여명과 함께 자전거로 달립니다. 분단의 현실과 통일한반도를 위한 청년들의 역할을 고민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뢰조심’이라는 표지판을 바라보고, 땅굴을 견학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더 이상의 희생과 인권유린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인권개선과 핵포기가 선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DMZ의 개방과 평화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Women Cross DMZ(이하 위민크로스)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비무장지대 도보횡단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한국인들도 걸어보지 못하는 비무장지대를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북한당국은 평양행을 허가했는지 말입니다.

특히 위민크로스의 이번 행사는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국제 여성평화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 행사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이 행사를 주도한 이들 중에 눈에 띄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메어리드 매과이어, 리마 보위와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입니다.

메어리드 매과이어는 아일랜드의 종교갈등으로 인한 유혈사태를 중단하는 일에 공헌하셨지요. 1999년에는 한국에 방문해 99서울NGO세계대회에서 탈북난민보호국제협의회(ICNKR;International Coalition to Help North Korean Refugees) 공동의장도 맡으셨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탈북난민의 인권상황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미국에서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2013년도에 수상하셨지요. 남녀평등과 여성인권 신장에 누구보다 앞장서온 분이셨습니다.

북한은 사상유례없는 인권침해국입니다. 유엔은 2005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고, 유엔이 발표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는 북한 내 인권침해 행위가 ‘반인도적 범죄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1000여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생존과 자유를 위해 두만강을 넘어 탈출하고 있고, 탈북난민이 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여성인권은 더욱 심각합니다. 탈북 과정에서도 인신매매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북한당국에 의해 붙잡히게 되면 고문과 학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류 최악의 생지옥’은 바로 북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계평화, 탈북난민, 여성인권 등에 관심 있는 대표적인 세계평화운동가들이 북한에 간다고 하니 새삼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당국을 향해 “진정한 세계평화는 인권 증진에서부터 시작한다”며, 북한 당국이 인권 증진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주길 바랐습니다. 적어도 북한의 여성 인권 실태라도 언급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듣게 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실망스럽습니다. 지난 21일 북한 노동신문에는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한 위민크로스 단원들의 사진과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기사는 메어리드 맥과이어가 김일성 주석의 혁명적 생애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습니다. 당신들은 대표적인 재미 친북인사인 노길남씨도 만났습니다. 물론 발언이 북한당국에 의해 과장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세계평화와 인권증진을 위한 도보행진이라기보다 북한체제선전에 활용되는 관광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이 현장이 세계평화의 길로 내딛기 위해 꼭 해결되어야 할 상징적인 장소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명예의장으로서 이 행사를 앞장서왔던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미국의 여성인권운동가는 북한에서 비무장지대를 거쳐 한국으로 걸어내려오는 상징적인 이벤트를 대가로, 당신들이 그토록 인생 전체를 통해 부르짖었던 자유와 인권의 가치는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북을 함께 걸었다는 보여주기 이벤트 말고는 이 행사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제 위민크로스 단원들은 평양, 개성을 통과해 경의선 육로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거쳐 24일 한국에 도착합니다. 한국에 와서도 국제여성평화회의에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탈북난민과 북한 인권 침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외면하면서까지 북한에 다녀온 분들이 과연 자유, 인권이 최상의 가치로써 존중받는 진정한 세계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요. 비무장지대를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진정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발걸음을 딛었다고 자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이고 노벨평화상과 자유메달에 대한 모독입니다.

한국에 올 당신들이 조금이라도 떳떳할 수 있으려면, 북한에 있는 동안 체제선전에 휘둘리지 말고 북한인권 개선의 분명한 제시지를 전달하는 의미있는 행보를 하기 바랍니다. 인류 역사의 진보를 위해 쌓아온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는 독재체제 묵인자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 마음이 한심한 바람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위민크로스 단원들이 자신들을 자극할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기에 북한당국은 방북을 허락했을 테니까요.

이것만은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먼훗날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 역사는 이 이벤트를 북한의 자유와 인권을 방관한 채 무늬만 평화를 주창한 사례로 기억할 것입니다. 이 편지가 공염불에 그칠지 당신들의 행보를 지켜보겠습니다.

글/신보라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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