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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모성애 없다는 편견, 깨고 싶었다"(인터뷰)


입력 2015.05.26 10:06 수정 2015.06.05 09:41        부수정 기자

극 중 고교생 딸 둔 젊은 엄마 조강자로 분해 열연

"현장 분위기 좋아…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작품"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조강자 역을 맡아 열연한 김희선.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조강자 역을 맡아 열연한 김희선.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희선은 김희선이다. 마흔을 앞둔 나이지만 여전히 예쁘다. 대세 여배우라도 김희선만의 존재감은 당해낼 수 없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교복을 입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새파랗게 어린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자연스러운 걸 보면 김희선은 역시 김희선이다.

드라마에서 그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딸 아란(김유정)을 위해 여고생으로 위장한 34세 주부 조강자로 분했다.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지만 극 완성도와 김희선에 대해선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2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통통 튀는 발랄함을 내뿜으며 취재진을 반겼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앵그리맘'을 연출한 최병길 PD가 동석했다.

"사회 문제와 관련된 어려운 질문들을 받을 것 같아 고민했는데 마침 최 감독님이 근처에 오셨다고 해서 부탁했죠. 감독님 잘 해주실 거죠? 하하."

촬영장 갈 때마다 즐거워…배우·제작진 호흡 최고

살인적인 일정 탓에 링거를 맞고 종방연에 참석한 김희선은 "드라마 종영 후 '멍' 때리고 있어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72시간 동안 촬영한 적도 있었는데 이게 리허설인지 촬영인지 헷갈릴 정도였죠."

김희선이 맡은 강자는 주부의 몸으로 교복을 입고 학교에 잠입한다. 방송 전 교복 사진이 공개됐을 때 반응은 꽤 뜨거웠다. "교복이 잘 어울렸다"는 말에 김희선은 ""에이, 정말요? 거짓말이죠? 저 다 알아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가장 걱정했던 점이 교복이었어요. 요즘 여고생들 치마 아시죠? 세상에. 정말 짧아요. 그 짧은 치마를 입고 어떻게 땅바닥을 구르고 발차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죠. 그래도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고, 또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앵그리맘'은 학교에 잠입한 강자를 통해 학교 폭력의 민낯, 사학 비리, 교육계와 정치권의 부패 등을 꼬집었다. 학교도, 사회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나선 엄마의 모습은 잔잔한 울림을 선사했다. 시청자들은 "내 아이가 생각나서 울었다"며 공감했다. 특히 그간 예쁜 외모 탓에 연기로 주목받지 못한 김희선은 가슴에서 우러나온 모성애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대중이 생각하는 김희선은 '애는 도우미에게 맡기고 마사지나 받으러 가는 연예인'일 거예요. '김희선에게 모성애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할 거고요.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은 자신있었죠. 아란이를 '내 딸'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전 엄마니까요."

강자는 고등학생 때 '벌구포 사시미'란 별명으로 날리던 '일진'이었다. 딸을 낳고 비로소 사람이 된 그는 아이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학교 폭력 피해자들을 때려눕힌다. 액션 연기는 필수였다. 김희선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액션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통쾌했고, 화끈했다.

"재밌었다"고 미소 지은 김희선은 "촬영장 가는 게 즐거웠다"며 "행복한 마음이 연기에 자연스레 묻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저한테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역효과가 나는데 이번엔 액션신을 비롯해 젊은 친구들과 호흡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배우들이 다 착하고 순둥이예요. 제가 제일 까칠했죠. 신나서 연기했답니다."

김희선은 안동칠 역을 맡은 김희원과 액션 연기를 펼치다 얼굴을 살짝 다친 적 있다고 툴툴거렸다. "희원 오빠에게 '배우는 얼굴이 생명인데 왜 얼굴을 다치게 하느냐'고 농담했어요. 레이저 치료받고 있다니까요? 하하."

옆에 있던 최 감독은 김희선의 액션 연기에 대해 "위험한 장면이 많았는데 앞장서서 했다"고 칭찬했다. 그러자 김희선은 "내가 한 것보다 결과물이 엄청 나다"며 "질질 짜는 감정 연기보다 액션이 낫다"고 말했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조강자 역을 맡아 열연한 김희선.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조강자 역을 맡아 열연한 김희선.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학교 폭력 문제 실감…아이 키우기 무서운 세상

'앵그리맘'은 '자녀 교육에 관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을 뜻한다. '앵그리맘'인 강자는 학교와 사회의 추악한 민얼굴을 마주하고 급기야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거대한 비리를 목격한다. 아란이가 다니는 명성고 별관 부실공사도 재단과 정치인이 연관된 비리 중 하나였다.

결국 학교 건물이 무너졌고 꽃다운 학생 6명이 죽었다. 시청자도, 배우도 마음이 무거웠다. 딸의 이름을 울부짖는 강자에게선 '엄마' 김희선이 보였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무너진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 연기하면서도 손발이 떨렸는데 실제 상황이라면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 거예요. 당시 네팔 대지진 사고도 있었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촬영 소품, 피 분장을 하고 벽돌 밑에 깔린 배우들을 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어요."

'앵그리맘'에도 나왔지만 요즘은 아이 키우기 참 힘든 세상이다. 학교와 사회라는 울타리조차 아이들을 방치한다. 극 중 교사는 학교 폭력을 당한 학생에게 "전학을 가라"는 말을, 교육청은 "증거 부족"이라는 말을 뱉을 뿐이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을뿐더러 학교 폭력 가해자는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7살 딸은 둔 엄마 김희선의 심정이 남다를 듯하다. 엄마의 진중한 답변이 나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딸에게 합기도를 시켜야겠다'였어요.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학교 폭력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요즘엔 더 심해진 것 같아 안타까워요. 끼어들고 싶지 않은데 내 아이를 생각하면 나설 수밖에 없죠. 이러다 보면 사회를 탓하게 되고. 답 없는 문제예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라는 고민은 영원한 숙제다. 아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김희선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고, 엄마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강자도 한계를 느꼈고,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해답을 내려주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요.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은 마지막회 내레이션을 꼽았다. 엄마 김희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이유에서다.

"봄이 온 세상에서 차디찬 어둠 속에 여전히 잠들어 있을, 움 틔우지 못한 씨앗들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얼어붙은 땅이 녹도록 따뜻한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묻혀있던 씨앗까지 모두 떨치고 일어나 세상이 봄꽃으로 뒤덮였으면 좋겠다."(박노아 역 지현우)

"세상에 더 많은 강자가 생겨나면 좋겠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어서 빨리 왔으면 한다."(김희선)

김희선은 "학교 폭력 문제는 생각할수록 답이 안 나와서 답답하다"며 "작은 일에서부터 힘을 합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조강자 역을 맡아 열연한 김희선.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조강자 역을 맡아 열연한 김희선.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어느덧 40대 앞둬…내 위치 만족

1993년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김희선은 청춘스타의 대명사다. 예쁜 얼굴에 자유분방한 매력을 갖춘 그는 20여 년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다수의 작품에서 활약한 김희선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결혼 이후 뻔한 캐릭터만 들어와서 아쉽다고 말했다.

"결혼한 여배우들이 반드시 엄마 역을 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겨서 안타깝죠.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졌다는 걸 새삼 느껴요. 특히 저는 그간 수동적인 여자 캐릭터만 맡아왔어요. 그나마 '앵그리맘'을 통해 능동적인 여성상을 표현하게 돼서 기뻤죠."

결혼 후 달라진 점은 '아이'로 인한 변화를 꼽았다. "아이가 눈에 아른거려요. 촬영할 때도 빨리 끝내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죠. 아이 덕분에 모성애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소신을 갖고 진정성 있게 연기하면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을 묻자 "놀면 안 돼요?"라는 김희선만의 답변과 웃음이 튀어나온다. '무장해제' 수준이다. 이내 집중한 그는 "욕심낸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린 뒤 "액션 연기를 또 하고 싶다"고 수줍게 강조했다. 최 감독은 "그간 한국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남자 배우들에게 보호받는 캐릭터였다"며 "김희선은 이런 틀을 깬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김희선과 최 감독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친구처럼 아웅다웅했다.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기획사에서 정해준 대로만 했는데 지금은 감독님께 반항도 하고...이런 나이를 먹었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좋아요(웃음)."

아무리 엄마 역할을 했다지만 김희선의 이미지는 '엄마'보단 '예쁜 언니'다. 김유정조차 김희선에게 언니라고 부른다고.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동안이란다. "여자니까 젊고 예쁘게 보였으면 하죠. '김희선 늙었다'는 얘기 들으면 속상해요. 저 댓글 다 보거든요? 다 조심해!"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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