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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인간투견록’ 크레이터, 추워도 꽃은 필까


입력 2015.05.28 20:54 수정 2015.05.28 23:30        김종수 기자
네이버 웹툰 '크레이터'. ⓒ'크레이터' 태발 작가 네이버 웹툰 '크레이터'. ⓒ'크레이터' 태발 작가

대본소 만화가 맹위를 떨치던 1980년대 후반, ‘신검마검(神劍魔劍)’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당시 천제황, 황재, 이재학, 장윤식, 황원철, 황성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무협만화가 하승남 화백의 이 작품은 어릴 때부터 인간병기로 길러진 소년들이 성장해 무림 판도를 바꿔버리는 이야기를 다뤘다.

인간병기를 만드는 곳답게 소년들에게는 인격이나 배려라는 게 없었고, 그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환경이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모두 같지만은 않다는 진리를 독자들로 하여금 새삼 느끼게 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웹툰 ‘크레이터(태발 작)’ 역시 이러한 메시지가 흐른다. 무협 ‘신검마검’과 달리 판타지라는 점이 다를 뿐, 극한의 환경에서 자란 소년들의 성장사와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위선자들의 행태를 다뤘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먼 미래 인류에는 매우 잔인한 격투 스포츠가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격투기가 아닌 각종 병기와 시스템까지 동원해 목숨을 걸고 혈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광기에 빠진 관중들과 주변 관계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대 로마 검투사들의 생존을 건 싸움이 연상된다.

싸움을 벌이는 이들은 이른바 ‘투견’이라 불린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싸움만 할 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개인적인 생각도 판단도 내려서는 안 된다. 오직 죽을 때까지 싸움만하다 더 이상 몸을 못 움직이게 되면 기계처럼 폐기되고 만다. 죽어야만 지긋지긋한 노예생활을 면할 수 있다.

'투견’은 기업인들에게 귀한 재산이다. 그들의 승률에 따라 거액이 오가는 것은 물론 회사 주식까지 큰 폭의 변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귀하게 관리는 하지만 절대 인격체나 자신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물건. 말 그대로 물건일 뿐이다. 그들을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인정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가 그랬듯 어설픈 동정심보다는 철저한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지켜야한다.

이른바 주인이라는 인간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투견’들도 사람이다. 그렇게 길러져왔기에 체념하고 길들여졌을 뿐, 작은 자극에도 숨겨져 있던 인성이 시시각각으로 튀어나온다. 비극이라는 단어는 인간사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이 나에게만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태어나자마자 빚쟁이 부친에게 이끌려 ‘투견’을 취급하는 업체에 물건처럼 팔렸다. 현금이 오가는 순간부터 주인공의 인격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짐승 같은 훈련과 대우만이 존재할 뿐이다.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 의해 선택되어지고 만들어진 삶, 분명히 그의 존재는 주변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항상 남이 정해준 일상을 되풀이한다.

그 와중에 주인공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를 ‘투견’으로 사용하는 그룹의 사장 딸과 오매불망 아들을 찾아 헤매는 생모가 그들이다. 결국, 작은 모래알로 시작한 변화는 조금씩 ‘투견’으로 살아온 주인공에게 인간의 변화를 겪게 만들고 가슴속 깊이 꽁꽁 봉인됐던 인성을 깨어나게 한다.

감춰진 인성의 발견은 주인공에게는 행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행 아니 손해다. 적어도 그를 돈이나 물건으로 보는 이들에게는 매매상 손해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분명하다. 이미 그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행위를 당연시해 모처럼 찾아온 주인공의 짧은 기쁨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난도질한다.

과연 주인공은 비극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되찾을 수 있을까. 독자들은 작품을 읽는 내내 인간이 아닌 ‘투견’으로 살아온 이의 비극적 삶의 결말을 궁금해 한다. ‘추워도 꽃은 필 수 있을까?’라며.

김종수 기자 (asd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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