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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맹주 충청맹주...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입력 2015.05.03 10:10 수정 2015.05.03 22:44        이종근 편집국장

<칼럼>호남정치 광주정치 팔아 당선후 신당추진

강화 사위 호남 사위 팔아먹는 대권주자 꼴불견

광주서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천정배 의원이 30일 오전 광주 서구 금호동 풍금사거리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광주서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천정배 의원이 30일 오전 광주 서구 금호동 풍금사거리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막장은 텔레비전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걸핏하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알고 보니 내 여자친구가 여동생이었고 그래서 장모가 결국은 내 어머니였고 가난뱅이 집안의 장남인 난 재벌 외아들이었고 그 모든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위암 말기였다는 막장 드라마는 현실에 비하면 개미발의 피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이완구 전 총리가 자신을 표적수사했다고 암시하며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대권주자로서) 도운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시 말해서 ‘충청맹주’ 자리를 노리던 이완구 전 총리가 반 총장을 의식해 반 총장과 가까운 성 전 회장을 ‘검찰을 동원해 털었다’는 이야기다.

‘맹주’라는 말은 ‘서로 동맹을 맺은 개인이나 집단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까놓고 이야기하면 떼를 지어 모인 패거리의 수괴를 뜻한다. 끼리끼리 모여서 자신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며 다른 패거리를 견제하고 그들로부터 서로서로 보호해주는 집단의 우두머리로 토호들이 발호하던 시대에 주로 쓰이던 골동품으로나 적당한 말이었다.

그 맹주라는 말이 성완종 사건 말고 또 튀어나왔다. 세상에 이런 막장도 없다. 이번에는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던, 그래서 그때는 여당이었지만 지금은 야당이 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원으로서 온갖 혜택을 누리던 천정배 전 의원이 광주 서을에 출마해 당선되면서다. 그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자신을 당선시키면 ‘광주 정치’ ‘호남 정치’를 복원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가 당선되자 바로 ‘호남맹주’는 누가 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충청맹주’ ‘호남맹주’라는 말들이 난무하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못해 암담하다. 그를 지켜보는 'TK맹주' 후보들과 'PK맹주' 후보들 엉덩이는 좀 들썩일까 싶고 늘 손해보는듯한 '강원맹주' 후보들은 또 어떨 것인가. 아름다운 팔도강산이 탐욕스러운 '팔도맹주'를 뜻하는 것인줄 다시 알게 됐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하다 못해 이제 나라 전체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시간여행을 시키고 있다. 밖으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워싱턴에서 껴안고 새로운 미일안보동맹곡을 틀어놓고 19금의 진한 춤 연습에 한창이고, 그에 위협을 느낀 중국은 한국을 시험에 들게 하였으며, 북의 김정은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학자들은 한반도의 운명이 광해군 시대나 구한말보다 더 엄중한 시대라고 평한다.

나라 밖이 이리 어지러운데 나라안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지역갈등을 조장하며 확산시키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다. 대권주자로 불리는 이들도 가관이다. 강화도의 사위? 호남의 사위? 결혼할 때부터 이미 대권을 노리고 지역안배해서 배우자를 고르지 않았다면 뻔뻔하게 할 소리가 아니다. 내가 배우자라면 기분 더럽겠다.

DJ의 적자라고?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을 수십번 뒤져도 지역갈등 조장하라고 한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김 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지역화합을 이루라는 것이었다. DJ 적자 운운하는 사람들은 영호남 갈등의 최대 피해자였던 DJ의 뜻을 받든다면서 그의 뜻을 어긋나게 하려는 자들이다. 방안에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두고 정치를 하겠다면 그 두 분을 따라하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뛰어넘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아무도 함께 하지 않는 길 그 길을 걸었기에 두 사람은 끝내 대통령이 됐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호남에서 당선된 것처럼 김부겸 새정치연 전 의원이 대구에서 당선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수많은 갈등 중에 지역갈등만큼은 우리 세대에서 실마리를 풀고 싶었다. 영호남에 상대당 의원 한 명 당선이 뭔 대수냐고? 그냥 대수가 아니라 혁명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망치로 깬 구멍 하나에서 시작됐다. 무너뜨리기 전에는 거대한 장벽이지만 한번의 망치질과 한번의 깨짐으로 인해 우리 모두 믿게 된 것이다. 무너뜨릴 수 있는 벽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이젠 그것도 물 건너갔다. 호남 출신 의원들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것이다. 비호남 출신 의원들은 더욱 심각하게 고민 중일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타지역 역시 우리도 뭉치자를 외치기 시작한다면 다음 총선은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전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 파커 J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있게 사용할 수 있다.”

지역갈등으로 사분오열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호남맹주 영남맹주 충청맹주 등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룰 수 있도록’ 그런 사람들을 가려내고 찍어줘야한다.

이종근 기자 (myjocke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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