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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원만해야 대박통일, 양안치가 답이다"


입력 2015.05.02 08:28 수정 2015.05.02 08:43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두물머리와 아우라지가 만나는 원만의 땅

남북통일의 중요한 계기 수운의 예언을 가억하라

양안치.

원주에서 충주 넘어가는 백운산(白雲山)과 미륵산(彌勒山) 사이의 고개 이름이다. 미군부대의 쑈리 ‘양아치’가 아니라 귀래(貴來)와 흥업(興業) 사이의 서로 기온과 생태와 식생계와, 심지어 풍속과 향토사(鄕土史)까지도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양(兩)-두개의’, ‘안(岸)-산기슭사이의’ ‘치(峙)-고개’를 말한다.

그리고 양안치에는 두 개의 양안치가 있다. ‘작은 양안치’ 280m, ‘큰 양안치’ 350m. 또, 양안치에도 두 개의 노선, 과거의 길과 새로 난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다. 그리고 원주 방향의 내리막길에는 ‘도깨비 길’까지 있다. 도깨비 길. 내림이 오름으로, 오름이 내림으로 착시(錯視)되는 기이한, 그리고 해괴한.

옛부터의 백운사쪽, 흥업쪽의 산이름이 '비인 산애미, 십자봉 가는 길'이고, 그 건너편 귀래쪽 산비탈 이름이 '대안광'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될 골짜기는 큰 양안치와 작은 양안치 사이의 '비빈 들', 불교풍수학에서의 '명명'(明冥)이다. '명명'은 “밝은 구덩이”의 뜻으로 온갖 기이한 생화초(生華草)가 무성하게 피는 독특한 지형이다.

나는 사실 수없이 양안치를 지나다니면서 끊임없이 바로 이 '비빈 들'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왜?

이곳은 생태지리학에서 유독 관심을 쏟는 '심층창생망'(深層創生網)이기 때문이고 또 나아가 기이하게도 고미술박물관과 절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바로 이곳 '비빈 들'에서 천년 전의 저 유명한 혁명가 궁예(弓裔)가 철원의 태봉국으로부터 내려와 문막에서 왕건(王建)과 27회의 대혈전 끝에 완패하고 명봉산(鳴鳳山)을 넘어 만종으로 달아나다 피살당한 최후의 길, 바로 '곰네미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곰네미(곰, 즉 궁예가 달아나다)의 전설은 이미 큰곰바위(궁예바위)가 있는 금대리의 회론 풍속과 그곳 팻말에서도 나타난다.

궁예의 '곰네미 길'은 철원 태봉국 중심의 역사를 근본에서 뒤집는다. 더군다나 금대리 큰곰바위 바로 건너편 길 건너의 백운산 금선사, 육조혜능계 선종사찰의 돌부처에서 드러난 궁예불교에 대한 선불교의 '비웃음'이 바로 양안치 '곰네미길' 곁의 백운산 천은사, 역시 혜능계 선종사찰의 돌부처의 비웃음을 통해 큰 문제점으로 확인 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정산리 거돈사(居頓寺)와 손곡리(蓀谷里) 법천사 사이에 있는 '풍점고개'는 역사적으로 거돈사 선종승여(禪宗僧侶)와 법천사 법상종(法相宗)의 유식학 승려 13명의 여러 가지 형태의 죽음으로 유명한 이른바 '미륵부처의 탄생지 예감처'인데, 바로 이 풍점고개의 의문에 대답을 줄 수 있는 한 암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그 곁에 있는 문막(文幕)이 왕건과 궁예의 싸움터요. 손자병법(孫子兵法)이전 옛 전설의 동양 병법인 '요설위'(療舌尉)의 '전략적 빈땅(論)'과 바로 손곡(蓀谷)과 좀재를 여러 해 동안의 '견훤 점령', 그리고 또 더 중요하게는 부론과 법천사 사이의 엄청난 큰 시장터의 존재, '흥원창, 월봉, 창말'의 고대 경제학적 깊은 의미 등, 그리고 그에 연관된 궁예의 여러 전략과 경제 · 정치의 문제 등이 비교되는 논의의 핵심에 바로 '곰네미'와 '풍점고개'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 있다.

부론 옆에 있는 '좀재'는 불교 풍수학에서 '십명지'(十冥地)라고 부르는 매우 심오한 '화엄법신선'(華嚴法身禪)의 장지인데 그 십명지와 귀래 미륵산 밑 용화사(龍華寺)의 한중 합작 '대화엄사찰'과의 선학(禪學)적 연결고리가 바로 '큰 양안치와 작은 양안치 사이의 바로 그 명명(明冥)'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화엄학(華嚴學)의 오묘함 중의 하나는 바로 자장(慈藏)에 대한 문수(文殊)사리의 계시 중 '당신네 나라 동북쪽 산 많은 땅의 그 명계(冥界)'란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이 '명(冥)'을 정선아리랑과 판소리, 탈춤, 메나리 등의 직결관계에서의 '시김새'와 '나툼새' 등 한국 네오 르네상스 미학의 핵심이 숨어있는 '궁궁처'(弓弓處)로 보고 있다.

또 나간다.

귀래 미륵산과 용화사 등은 '화엄불교'라는 세계적 미래 대통합의 미륵불교의 온상이다. 그런데 그 건너편 흥업 백운산은 한국 최초의 서양 기독교의 온상이다. '황사영'(黃嗣永)이 숨어있던 '배론', 그리고 한국 최초로 정부에 칼을 빼든 지학순 주교가 묻힌 곳도 '배론'이다. '배론'은 바로 백운산이다. 화엄불교와 가톨릭이 맞서 있는 곳이 바로 '양안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이해진다.

양안치를 통해 '귀래'(貴來)와 '흥업'(興業)사이의 원주가 동서양 문명의 핵심적인 종교 융합의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일인가?

큰 일이다.

그래서 양안치에 '도깨비 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흥업에 연세대학교, 한라대학교, 강릉-원주 대학교, 육민관 중·고등학교, 대성중·고등학교, 삼육중·고등학교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래서 매지리 한골에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문화관'이 있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처음 원주에 발을 딛었을 때 "아! 원만의 땅에 왔구나!"했다고 한다. 가장 사랑하는 첫 손자의 이름도 바로 원만을 뜻하는 원보(圓普)로 지었다고 한다.

백운산과 미륵산 사이의 양안치 고개는 큰 양안치고개와 작은 양안치 고개가 있다. 인터넷 화면 캡처. 백운산과 미륵산 사이의 양안치 고개는 큰 양안치고개와 작은 양안치 고개가 있다. 인터넷 화면 캡처.

동서양이 융합하려면 원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은 다음과 같은 예언서를 옥중에서 남기셨다.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남쪽에서 개벽의 첫 별이 뜨되 중조선의 원만을 얻으면 북쪽의 강물 방향을 바꾼다)

이미 다 알다시피 민족통일은 매우 가깝다. 월악산(月嶽山) 영봉의 달이 물에 비취면 그로부터 30년 후 여성권력이 나타나 그 뒤 3년 뒤 통일이 된다. 그 해가 바로 2015년, 올 해다.

그 월악산 전설은 처음 귀래 미륵산으로부터 시작된다. 미륵산에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정착하면서 그 뒤 그의 딸 덕주공주와 그의 아들 마의태자가 바로 이 양안치를 지나 월악산으로 가서 덕주사를 세우면서 시작된다.

남북통일의 중요한 계기가 양안치일 것인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그리고 구절리(九切里)의 북강(北江)과 구미정(九美亭)의 동강(東江)이 만나는 '아우라지(여량)'. 바로 이 두 개의 양평과 정선의 '만남'이 '원만의 땅' 양안치에서 참으로 '대박통일'을 이룰 것인가?

나는 이제 참으로 경건하게 다음의 기록을 분명히 남기고자 한다.

1. 양안치(兩岸峙)는 고려 말 이미 세상이 다 아는 혁명가인 경기도 이천 출신의 중 신돈이 세 번이나 겹쳐 시도한 바 있는 토지제도 개혁에서 이른 바 '백토와 흑토 사이의 중절(重絶)에 의한 전제(田制)개생(改生)' 방략과정에서 귀래 쪽의 개미토(盖米土)를 흥업 방향의 실지전(實地田)으로 바꾸는데서 그 이름 양안(兩岸)이 발생했다. 그 결과 지금의 이름인 귀래(貴來)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신라 경순왕 때문만이 아니다. '개미토'란 매우 귀족적인 노동대상인 때문이다. 그 뒤로부터 귀래 쪽의 학식있는 경주김씨, 김해김씨들이 흥업 쪽으로 넘어와 살기 시작했고 그래서 흥업(興業)이라는 이름, '대업'(大業)이 일어날(興) 곳이 생겨난다. 불교와 서당, 춤과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양안치'는 미륵산과 백운산 사이의 땅 이름만이 아니라 귀래-흥업과 흥업 동족의 배부른 산 너머 지금의 원주 황골을 구별짓는 골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여러 가지 학교가 들어서고 길 이름이 '사제로' 되고 '청학서당' 자리가 '무릉 박물관'이 되는 것도 그 까닭이라 하겠다.

2. '양안치'에서 전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박달재와 함께 거란침략 당시의 전쟁의 전설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 왜군과 명나라-조선 연합군의 세 번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한말(韓末)에 제천 쪽의 의암(유인석)의병과 횡성, 갑천, 소초 쪽의 의병이 함께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렀다.

또 있다.

6. 25때는 여섯 번에 걸친 전쟁이 있었다. 그 흔적이 모두 귀래면에 남아있다.

3. 전쟁이 일어나 산수(山水)의 풍수가 간단할 리가 없다. 백운산 십자봉 중심으로 '십무극'(十無極)>의 열 봉우리, 이어 백련사 뒤의 '오황극'(五皇極)의 다섯 봉우리, 토지 문화관 뒤의 '일태극'(一太極)의 완만한 한 봉우리가 '정역풍수'(正易風水)의 이른바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개벽산수'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도깨비 길'이 있는 것이다.

미륵산의 불교 풍수학과 치악산의 정규 풍수학은 생략한다.

4. '양안치'가 가진 경제학적 문제의식에서 비켜서면 안된다. 흥업면의 옛 둔전(屯田)의 기억을 살펴야 한다. 둔전은 쉬운 말로 '토지양도제도'다. '양도'란 말로 어물쩍할 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회빈(回頻), 빈회치(頻回値)란 용어로 표현되는, '그 토지의 생산물이 서로 무한 교환할 수 있는 ·토지작물 무한 교환 가능성·양보제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도르레'다.

'도르레'는 이미 고구려 당시 치악산 너머 '황둔'(黃屯)에서도 정착돼 있었고 '부론' 건너 법천사(法天寺) 앞 '중장터' 관련 '손곡 장뜰'과 신돈에서도 시도되었던 제도다.

이것은 '노림' 출신의 조선조 선조당시 영의정이었던 한백겸(韓百謙)이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토지제도 '기전제'(箕田制)와 직결된 당대의 큰 개혁이었던 빈부평등의 대동법(大同法)에서 시도한 '일가일획'(一家一劃)>의 '섞음'에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의 참 기원이 전설에 의하면 흥원창(興原倉)앞의 바위 '월봉'(月峰)의 고대경제학적 상징성인 '산 위의 물'(山上之有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월봉은 다섯 봉우리인데 두 번째 큰 봉우리 위에 샘이 있는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그 앞 부론 길은 옛부터 이름이 '앙암로'(仰岩路)다. '바위를 우러러 존경하는 길'의 뜻이다. '월봉'을 말하는 것이다. 강 건너 '앙성'(仰城)의 '우러름'(仰)도 바로 이 '월봉'을 존경한다는 뜻이고 앙성에서 부론에 이르는 강다리의 이름도 '앙암로'이다.

왜?

이 길은 왕건, 궁예, 견훤, 경순왕, 온달, 고구려의 뭇 장수들, 덕주공주, 마의태자가 거닐던 길이고, 법천사, 거돈사의 스님들, 부론의 선비들, 뭇 지식이들이 걸었던 길, 장삿꾼들이 걸었던 길이다.

우연인가?

월봉 한기악 선생은 어떠한가?

'산 위의 물'은 옛부터의 동양경제학의 비밀이다. '주역'의 '산과 못은 기를 통한다. 산택통기(山澤通氣)'는 무엇인가? '정역'의 역시 '산과 못은 손을 잡는다. 간태합덕(艮兌合德)'은 무엇인가?

다 이것이다.

동학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시에 있는 '산 위에 물이 있다. 산상지유수(山上之有水)'가 무엇인가? 모두 다 고대 '호혜시장' 즉 '신시'(神市)의 표현이다. '유목민의 교환(山)과 농경민의 호혜(水)'의 '결합'이요, 우리민족의 시작 마고(麻姑)할머니의 '팔여사율'(八呂四律)의 파미르 고원 신시이니 다름 아닌 '도르레'다.

이것이 '화엄세계의 시작'인 것이다.

바로 이 '도르레', 이 빈회치, 래빈을 일러 옛 고려때 혁명가 신돈은 분명하게 '양안치'라고 이름하였다.(이후 그의 뜻을 이은 조선 때의 '당취불교'(黨聚佛敎)의 명언) 당취불교는 동학당이었던 우리 할아버지, 증조부의 본디 사상이다.

민족통일은 아주 가깝다.

그런데 북한 여성들은 김정일 화폐개혁 실패 직후 '장마당'이라는 소비시장을 탄압 속에서도 만발시켰다. 그 장마당은 바로 옛 호혜시장 신시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 장마당에서 도르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미국 뉴욕의 금융사태 직후 우리나라에 '오일장'과 김포 이천 여주 문막 원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이 나타났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 셋, 장마당, 오일장, 프리미엄 아울렛은 도르레를 통해 '통일'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프랑스 안젤리카 조안나의 작은 시장 '신의 우물'의 바람과 합하여 제레미 리프킨의 '공유사회'와 짐 데이터의 '드림 소사이어티'와 합하여 세계의 새 경제를 만들 것이다.

'도르레'가 무엇인가?

'양안치'다. '양안치'에 무엇이 있는가? 토지문화관이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 '시장과 전장'에, 그리고 토지에 바로 이 도르레가 나타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우연인가?

원주사람, 이 근처의 '원만'의 땅 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엇을 이른바 '향토문화'의 비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대답해야 할 것이다.


글/김지하 시인

사단법인 원주향토문화연구원 창립기념 김지하 시인 특별초청 강연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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