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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함과 다수결로는 죽어가는 경제 못살린다


입력 2015.04.19 10:02 수정 2015.04.20 18:38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위기의식 없이 "이랬으면 좋겠다'고만 하는 정부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스코틀랜드 태생인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을 지지한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 사진출처 www.vrijspreker.nl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스코틀랜드 태생인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을 지지한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 사진출처 www.vrijspreker.nl
우리 경제 문제의 본질은 ‘성장판이 너무 빨리 닫혔다’는 것이다. 최근 10년간(2004~2013) 실질 경제성장률은 3.85%로 김영삼 정부(7.82%) 대비 반(半)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3년간(2011~2013) 성장률은 3.0%로 급전직하했다. 한국은행의 2014년 성장률 전망치는 3.3%이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KDI 등 6개 기관의 2015년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하방위험 있는 3.5%이다.

이를 연결해 보면 우리 경제는 ‘2011년부터 성장 날개가 꺾여 3%대의 저성장’을 실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대 성장은 일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에나 어울리는 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은 현재 기술 수준 하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실현 가능한 최대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교과서적 해석이다.

하지만 잠재성장률은 ‘귀납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최근의’ 경제성장률 평균치가 잠재성장률인 것이다. 이는 저성장이 지속되면 국민경제의 실력(성장가능성)과 관계없이 잠재성장률이 실제 낮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운동이 부족하면 몸이 굳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진짜 위기의식 없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정부

정부는 최근의 ‘저성장 구조화’ 조짐에 대해 별반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것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라는 것은 아니다. 대신 적확(的確)하게 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15년을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골든타임(golden time)으로 규정하고 ‘노동 금융 공공 교육’ 등 핵심 분야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정책적 포부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어서는 안 된다. ‘구조개혁을 통한 체질개선’은 ‘구두선(口頭禪)’에 가깝다. 경제체질을 개선하려면 2011년 이후 왜 ‘저성장의 구조화’가 고착되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이 같은 성찰 없이 체질 개선은 불가능하다.

성장 날개가 꺾인 2011년은 어떤 해였던가. ‘경제민주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기 시작한 원년이었다. 경제민주화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제도 환경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민주화는 ‘시장 위에 국가’를 위치시킴으로써 설계주의에 기초한 ‘국가 개입주의’를 견지했다. 국가는 부지불식간에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무제한의 국고(國庫)와 무오류의 조언’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국가는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지원하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 예컨대 특정계층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다른 계층의 조세부담이 늘거나 아니면 귀속되는 보조금이 줄어야 한다. 이 같은 정치적 의사결정은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투표함이 우리 국부(國富)를 증가시킬 수 없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던 것을 뺏어다가 다른 누군가에 주는 것이다.”

바스티아(Bastiat, 1801~1850)가 '법'에서 한 말이다. 우리 정치인과 유권자의 의식구조는 달랐다. 투표를 통해 ‘수(數)에서 앞서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원이 분배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보호, 육성, 장려 등의 명분으로 “누군가의 것을 덜어내 자신에게 돌리는” 입법경쟁이 봇물을 이루었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을 ‘법’으로 여겼다. 19대 국회의 2년 반 만의 입법 발의건수는 11,935건으로 18대 국회 발의건수 12,220건에 육박하고 있다. 발의안 수이지만 ‘정치상품으로서의 법’은 이렇게 양산되었다. 그러다 보니, 국고(國庫)는 약탈의 대상이 되었고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착취하는 거대한 허구”로 전락했다.

인간은 가능하면 고통스러운 노동을 피하고 타인의 노동의 결과를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바스티아는 일찍이 법이나 정치의 도움으로 타인의 재산과 소득 등을 취하는 것을 ‘합법적 약탈’로 명명했다. 합법적 약탈은 불법적 약탈과 달리 거리낄 것 없이, 다양한 형태로 자행된다. 산업보호 장려금, 보조금, 누진소득세, 무상복지 이윤에 대한 권리, 임금권, 노동권, 생존권, 무이자 대출 등이 그 수단이다. 의무휴업, 영업시간 단축 등의 조치도 취해졌다.

의무 휴업과 영업시간 단축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단축은 의심의 여지없는 재산권 침해이다. 재산권은 ‘자연권’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한국적 현실에서 재산권은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만 처분할 수 있는 제한적 권한에 불과하다. 루소(Rousseau, 1712~1778)의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재산권은 사회적 제도의 산물이며 입법자의 발명품이고 법의 창조물이다. 재산과 노동의 관계에 인위적 수정을 가해 균형을 맞추고 균등하게 하는 것을 입법자의 책임으로 여겼다. 법이 재산권의 내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에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은 무한대의 상상력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정서법, 떼법, 특수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각종 처분법 등이 횡행하면서 경제행위의 유인 구조와 동기가 크게 훼손되었다. 따라서 이 같은 왜곡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구조개혁이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선진국 중 미국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서 빠져 나와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했는가. 미국의 경제부활에서 구조개혁이란 거창한 말은 없다. 실제 미국이 어떤 구체적인 구조개혁을 이루었다는 보도도 없다. 미국 경제가 부활한 것은 ‘제 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것’이 전부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나 홀로 부활’이 주는 시사점

정책의 시의성을 놓치지 않고 통화당국과 행정부가 정책 공조를 편 것이 전부일 수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양적 완화 조치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해외로 이전한 제조업체의 미국으로의 U턴을 설득하고 상응한 조치를 취한 정치적 리더십이 미국 부활을 가져온 것이다. 또한 시장경제의 울타리를 확실히 쳐, 혁신을 통해 시장 스스로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주효했다. 미국의 ‘셰일혁명’이 그 사례이다. 셰일오일은 유럽과 중국에서도 채취가 가능하다. 유럽은 개발이익의 공유화 논란으로 개발이 실패한 반면 미국은 민간업체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셰일 붐이 일어났다. ‘재산권 보장’이 민간의 창의적 혁신을 가능케 한 것이다.

우리 경제를 들여다보자. 2011년 이후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제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개혁 이외엔 답이 없다’는 처방은 무엇인 가를 놓친 것이다. 이는 개혁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구조개혁이 구두선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행위의 유인 구조와 동기를 왜곡시킨 요인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개입주의와 입법만능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조개혁의 선결과제인 것이다.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것 저것에 손대 전선(戰線)을 확대하지 말고 몇 개의 핵심지표만 집중 관리하는 것이 복잡계인 시장에 대한 올바른 정책접근이다. “투자와 규제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 핵심변수만을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선의(善意)의 실패’에 대한 관용문화 정착이 중요하다. 기업가들이 지나친 낙관주의(over-optimism)에 근거해 계획을 세우면 손실을 입게 돼 그 사실이 사후적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기업가들이 지나친 비관주의(over-pessimism)에 근거해 이윤기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활용하려고 시도하지 않게 되면, 사후적으로도 비관적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후자(後者)의 오류를 제거하기 어렵다. 실패에 대한 관용이 필요한 이유다. 시장에서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면서 우리경제의 ‘소프트 파워’가 길러진다.

할 일은 명료하다. 무소불위의 합법적 약탈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추락하는 경제를 반전시킬 수 없다. 또 그렇게 해야 시장이 작동하게 된다. 제2, 제3의 네이버, 다음카카오, 골프존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다지면 된다. ‘산업 간 융합’을 통해 창조적 독점을 이뤄내야 한다. 부자 감세, 재벌의 경제력집중 같은 구태의연한 사고가 자리를 잡는 한, 창의성에 기초한 소프트 파워는 우리 땅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

글/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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