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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의 크로캅, 존경의 크로캅 되다


입력 2015.04.19 06:28 수정 2015.04.20 10:14        데일리안 스포츠 = 김종수 기자

출전 경기 자체가 늘 격투계 화두..동경의 대상

복귀전 불굴 의지로 예상 밖 승..노욕 아닌 내 것에 대한 의지

젊은 시절의 크로캅은 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긴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감동과 용기를 주는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 게티이미지 젊은 시절의 크로캅은 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긴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감동과 용기를 주는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 게티이미지

'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41·크로아티아)은 MMA계에서 가장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선수 중 하나다.

‘얼음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처럼 한 시대를 완전히 평정한 최강자도 모든 면에서 고른 기량을 과시하는 교과서적인 파이터의 롤모델도 아니다.

K-1, 프라이드, UFC에서 모두 뛰어봤다고는 하지만 단 한 번도 해당 무대를 완전히 접수한 적은 없다. K-1 시절 정상권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지만 ‘천적’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완패하는 등 정상의 문턱에서 맴돌기만 했고, 프라이드 시절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아쉽게 무너지며 분루를 삼켰다.

늦은 나이에 뛰어든 UFC에서는 수많은 패배를 당하며 체면만 구겨졌다. 온갖 혹사와 그에 따른 수술 여파로 과거의 매력적인 얼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일부 안티팬들은 “독수리에서 부엉이가 됐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출전 자체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은다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 같았다면 이미 은퇴했을 나이지만 인기 하나만큼은 한창 치솟고 있는 정상급 파이터들 못지않다.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선 사나이

MMA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던 그 시절부터 크로캅의 경기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적은 없다. 이슈라는 면만 놓고 따졌을 때 크로캅은 ‘영원한 황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열성팬들이 여전히 끓고 있고, 동료 파이터들조차 골수팬을 자청한다. UFC 무대에서도 실망만 안겼지만 다나 화이트 대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크로캅 열성팬임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크로캅의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표도르와 함께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 수준이다. 표도르 같은 경우 ‘60억분의 1’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잦은 국내방문으로 꾸준히 인지도를 높였다. 반면 크로캅은 그런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틀 안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이라 팬들과 특별한 소통도 없다.

그럼에도 크로캅은 국내 팬들 사이에서 웬만한 토종 파이터 못지않은 친근한 존재다. 크로캅 일거수일투족에 열성팬들은 물론 안티 팬들조차 촉각을 곤두세우는 수준이고 한창 연패에 빠져 있을 때도 아쉬움의 목소리는 컸지만 관심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가브리엘 ‘나파오’ 곤자가(36·브라질)와의 1차전에서 자신의 특기인 하이킥을 맞고 처참한 패배를 당했던 당시 큰 충격에 빠져 한동안 격투기를 보지 않았다고 밝히는 팬들도 부지기수다. 이쯤 되면, 단순한 인기 파이터를 떠나 ‘격투계 아이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크로캅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스탠딩과 그래플링이 모두 통용되는 종합 집합체가 MMA지만 여전히 같은 조건이면 타격이 강한 선수가 인기가 더 높은 게 현실이다. 이는 소수의 마니아 층보다는 다수의 일반 팬들 사이에서 더욱 뚜렷하다. 크로캅은 타격이 뛰어난 선수의 결정판 같은 파이팅 스타일을 구사해왔다.

헤비급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스피드로 움직이며 상대의 타격을 흘려버린 채 번개 같은 타격을 꽂아 넣었다. 그것에 팬들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특히, 상대적으로 킥을 쓰기 어려운 종합무대에서 가장 고난도 기술 중 하나인 하이킥을 필살기로 삼았다는 점은 다수의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무서운 외모를 바탕으로 광폭한 타격을 자랑했던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이고르 보브찬친, 반더레이 실바 등을 맞아 하이킥으로 끝내는 광경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린 시절 크로아티아 내전 속 친구를 잃고 강해져야한다는 열망 하나로 도전정신을 키워왔다는 스토리도 팬들에게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동경의 대상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이제는 모든 팬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크로캅은 완전체 타격가가 아니다. 단순히 그래플링이 약하다는 것을 떠나 타격가로서도 약점이 많다. 전형적인 사우스포 스타일이라 대부분이 공격이 레프트 스트레이트, 왼발 미들-하이킥 등 왼쪽 위주다. 패턴이 다양한 것도 아니다.

굳이 분석도 필요 없다. 그의 경기를 어느 정도 봤던 팬들이라면 크로캅이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 대부분 알고 있다. 다만,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 워낙 뛰어나 대부분의 상대들은 패턴을 알면서도 나가떨어졌다.

프라이드 시절까지의 크로캅이 타격 초인 이미지였다면 UFC에서는 암흑기 그 자체다. 급격히 노쇠화가 시작되면서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링에 특화된 선수라 옥타곤의 생소한 환경도 불리하면 불리했지 유리한 요소는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패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크고 힘도 좋은 데다 그래플링 옵션까지 갖추고 있는 경쟁자들에게 굴욕적으로 짓밟히기 일쑤였다. 패배가 잦아지다보니 그를 끝없는 믿고 응원했던 팬들조차 “이제는 쉴 때가 됐다”며 은퇴를 종용했을 정도다.

그러나 크로캅은 멈추지 않았다. UFC를 잠시 떠나있던 시절에도 다른 무대에서 뛰면서 끊임없이 경기를 가졌고 몸이 망가져 수술을 받은 와중에도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전장으로 돌아왔다.

팬들은 그러한 크로캅의 행보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대가 형성됐다. 크로캅이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은 미련도 집착도 노욕도 아닌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격투기이기에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처럼 날렵하게 움직일 수도 없지만 불안 불안하고 느리게 스텝을 밟으면서도 끊임없이 경기를 뛰고 그 과정을 준비했다. ‘도전의 인생’이라는 요소하나만큼은 처음 격투기를 시작했던 어린 시절과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로캅이 최근 곤자가와의 2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하자 팬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열성 팬들 조차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승부에서 불혹을 훌쩍 넘긴 크로캅은 기어코 역전 넉아웃 승을 만들어냈다. 강한 집념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젊은 시절의 크로캅은 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감동과 용기를 주는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기나긴 격투인생은 항상 이렇게 팬들과 공감의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많은 팬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어쩌면 크로캅의 진정한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김종수 기자 (asd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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