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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친이계'에서 '억울한 의인'으로 말바꾸는 야당


입력 2015.04.14 12:32 수정 2015.04.14 14:07        이슬기 기자

<기자수첩>별건 수사에 대한 진실은 규명하되

‘정치자금 수수’까지 정당화하는 것 경계해야

13일 열린 국회 본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와 관련해 거명된 8명중 6명이 박근혜 대통령 캠프 출신이라는 도표를 들어보이며 질문하는 가운데 본회의장 스크린에 도표가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13일 열린 국회 본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와 관련해 거명된 8명중 6명이 박근혜 대통령 캠프 출신이라는 도표를 들어보이며 질문하는 가운데 본회의장 스크린에 도표가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사망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정치권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재보궐선거 당시 현 국무총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언론 통화내역과 함께 구체적인 비망록도 공개되면서, ‘제2의 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다.

여야는 즉각 선 긋기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 두차례 특별사면을 받았다며 “이번 사건은 참여정부 때 싹튼 부정부패”라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박근혜 정권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규정하고 이완구 총리를 비롯한 여권 인사들로 수사 대상을 한정 짓고 있다. 아울러 전날 문재인 대표는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돈 받은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정권과 검찰의 표적 수사’라는 데 방점을 찍은 모습이다.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성완종 전 회장이 검찰의 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으로써 세상에 알린 사건”이라며 성 전 회장을 추켜세우는 식의 발언도 나왔다. 당 대변인은 “망자가 죽음으로 밝히기 원했던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 고인에 대한 도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성 전 회장의 유족들도 “고인은 해외자원개발 비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검찰이 자원외교와 전혀 무관한 분식회계 등만 들춰내 잡범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고,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지역 인사들은 “정치자금 수수 관련 리스트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27조원의 혈세를 퍼붓고도 34조원의 추가비용을 더 투자해야하는 해외자원개발 비리와 관련해 현 정권 실세에 들이대지 못한 칼을 기업 총수에게 겨눈 검찰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날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대정부질문에서 “정치적 고려나 차별 없이 수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간 검찰이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전혀 주지 못한 것은 검찰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아울러 여야 정치권이 연일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처럼, 리스트에 게재된 인사 외에 성 전 회장에게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인물에 대해서는 정치적 직급과 상관없이 조사를 벌여야 하는 것 역시 맞다.

다만, ‘정치권과 결탁’이라는 성 전 회장의 명백한 혐의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동양 정서상 고인이 된 이의 공과를 따지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만큼, 사망한 경우에는 생전의 과오까지 미화되기도 한다. 실제 야당에서는 대여 공세를 위해 성 전 회장을 ‘억울한 의인’으로 추켜세우려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정작 새정치연합은 앞서 지난달 20일 경남기업의 정부지원금 횡령과 관련, 성 전 회장을 ‘MB맨’으로 지칭하며 날을 세운 바 있다. 당시 김성수 대변인은 “대표적인 ‘MB맨’ 성완종 회장의 경남기업이 자원외교를 하겠다며 받아간 정부지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며 “성완종 회장은 이번 사건이 이명박 정부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빼돌린 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해외자원개발에 정부지원금을 쓸 수 있도록 한 ‘성공불융자’ 제도와 관련해서도 성 회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같은 당 부좌현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받은 ‘기업별 성공불융자감면액’(2011~2014) 자료를 통해 경남기업이 석유공사와 350억원 이상의 성공불융자를 받아 러시아 캄차카 석유광구 탐사, 카자흐스탄 남카르포브스키 석유광구 탐사 등 여러 사업을 함께 했지만 대부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나서기도 했다.

실제 성 전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일찍이 정계의 숨겨진 스폰서이자 로비스트로 이름이 알려진 바 있다. 전·현직 여권 실세들은 물론 충청권 유명 인사, 국민의 정부·참여 정부 인사들과도 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정치권 내 전언이 이어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가 드러나자마자 여야를 막론하고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전날 대정부질문에서도 재차 언급됐듯,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은 기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수차례 정치권과의 결탁을 통해 상황을 해결해왔다. 설사 유족과 야당의 주장대로 해외자원개발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명이 난다고 해도, 그간 고액의 불법정치자금을 주고 받으며 모종의 거래를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인이 목숨까지 끊으며 외친 억울함은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 다만, 성 전 회장에게 ‘누가’ 돈을 받았는지, 그리고 ‘별건 수사’라는 의혹에 매몰돼, 정치권과 결탁한 고인의 과오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것 또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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