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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메모 한장으로 '휘청' 문제는 기고만장


입력 2015.04.12 10:13 수정 2015.04.14 08:39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인내 강하지만 절제가 없어

빚잔치 경제위기 닥쳐오는데 멱살잡이할 시간 없어

88올림픽 이후 대한민국은 대중소비시대를 열었고, 내친 김에 96년에는 OECD회원국에까지 가입했다. 한 마디로 기고만장의 시대였다. 당시 서구사회에선 한국이 지나치게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며 걱정 반 충고해줬지만, 못 살던 나라가 갑자기 잘 살게 되니 배가 아파서 하는 소리이겠거니 하며 들은 척도 안했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 문턱에 한발을 올려놓았으니 웬만한 선진국들을 뒤로 밀어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자신했었다.

그러다가 고작 1년 만에 외환위기. 허나 그마저도 선진국들의 시기와 텃세 때문이라 치부하며 금모으기 등 특유의 순발력으로 극복해냈다. 더욱 기고만장해진 한국인들은 본격적으로 레드 와인을 부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젠 우리도 선진국민이다, 아무렴 우리도 이제 선진 시민답게 우아하게 즐겨보자며 웰빙 시대, 명품 시대를 활짝 열었다.

품(品)과 격(格)을 잃은 한국 사회

지난 해 초중고 교사 희망퇴직에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려 진통을 겪었었다. 평생 교육에 몸 바치겠다고 하던 후배도 지난 해 초등학교 교감을 그만두었다. 또 얼마 전 잘 아는 교수가 정년을 3년이나 남겨두고 사표를 냈다. 주변에서 가정이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왜 그만 두냐며 말렸지만 “학생들이 너무 보기 싫어서!”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시골로 내려갔다. 교감은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보기 싫다!”고 했다.

민주, 평등, 인권 대신 환대, 정의, 배려라는 단어가 범람을 하지만 상호 불신과 혐오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성추행, 학대, 살인이 이제는 부모 자식 간에도 흔한 일이 되었다. 딱히 외부적인 장애나 위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돈’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사회 스스로 타락하고 붕괴해 가고 있다.

세계 10위 무역대국이면서 왜 소득은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왜 행복하지 못한지? 왜 희망의 지표가 안 보이는지? 왜 가진 자들이 더 타락하는지? 기술 일등을 하고서도 왜 인류가 못되는지? 하여 이쯤에서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난날 선진국 사람들이 왜 우리더러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재물이든 벼슬이든 그것을 지닐만한 그릇이 되는 사람에겐 당연한 복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겐 재앙이다.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었거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일확천금의 수익을 잡은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오히려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기실 미처 그걸 감당할 능력을 지니지 못한 때문이다. 아무렴 개인 국민소득 2만 5천 불은 우리가 흘린 땀에 비해 보잘 것 없지만 기실 상당수 많은 한국인들에겐 분에 넘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해서 지금 급격하게 우리 사회가 타락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인이 된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기 하루전인 8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검찰조사와 관련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고인이 된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기 하루전인 8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검찰조사와 관련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기고만장의 시대가 가고

원시 수렵 채집의 시대 인간은 끊임없이 먹거리를 찾아 이동했었다. 그러다가 농사짓는 법을 터득하고 나서야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문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잉여 생산된 농산물 때문에 인간은 저축을 하게 되고, 저축은 다시 빌리고 꾸는 약속의 시대, 화폐와 금융의 시대를 여는 것은 물론 약탈의 시대까지 열었다. 결국 인간이 쌓은 재화는 전쟁을 일상화시키고, 전쟁은 과학발달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교류를 촉발시켜 문명을 더욱 발전시켜왔다.

베트남 전쟁 이후 전쟁다운 전쟁이 없었다. 전쟁 없는 인간사회란 지력이 다한 논밭과 같다. 농토도 가끔은 대규모 범람으로 토질을 바꿔야 생산성이 유지될 수 있다. 하여 밭을 갈아엎거나 객토도 해보고 비료를 개발했지만 그도 한계가 있어 늘어나는 인구만큼 초목이 뽑혀져 나갔다. 결국 인간이 지구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아가 현대인은 고도로 발달된 금융이라는 축재의 수단, 실은 일을 안 하고도 먹고 사는 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는 영여의 재화만으로 거래를 하는 것이 맞지만 꾀 많은 인간들은 미래의 잉여분까지 미리 당겨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하여 현대에는 실제 인간이 당장 생산할 수 있는, 비축된 재화만이 아니라 수십 년 후의 생산량까지 채권이라는 종이 몇 장으로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오늘날 발달된 문명의 이기와 시스템의 발달 때문에 실제 인간이 한 해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십 배, 수백 배로 부풀린 이 가상의 재화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불어난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가 없다. 만 원짜리 한 장이 지구를 몇 바퀴 돌고나면 어느새 두 장이 되고 심지어는 뒤에 0이 하나 더 붙기도 한다. 결국은 이 엄청나게 불어난 가공의 재화, 금융의 거품을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풍선이 계속 불어나게 두면 결국 터지게 마련, 미리 바람을 좀 빼자는 것이 바로 빚잔치, 이른 바 금융위기다.

과거 인간은 전쟁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 바람을 뺐었다. 전쟁이 나면 진 쪽의 채권은 모두 휴지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 같았으면 국가 간에 빚을 못 갚으면 땅이라도 뺐어야 했다. 하지만 현대는 전쟁 대신 빚 탕감. 그러니까 금융위기는 전쟁의 대용품인 셈이다. 그리고 인류가 현재와 같은 공존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범세계적으로 돌아가면서 바람을 빼는 수밖에 없다.

도약이냐 추락이냐?

묘하게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는 동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10년도 못가서 미국으로, 다시 유럽으로 넘어갔다. 그때마다 빚을 탕감하고 허리띠를 졸라맺지만 어차피 임시방편. 결국 빚으로 빚을 해결하자니 돈을 더 찍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바람빼기의 주기는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

부채가 많다는 건 누군가가 그만큼을 빌려주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대기업들도 대략 10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쌓아두고 있다. 문제는 이 돈이 회사 금고에 가만히 잠자고 있지 못한다는 거다. 그 대부분이 은행을 통해 서민의 주택대출로, 다시 생계자금으로 넘어갔다. 더 큰 문제는 과거처럼 서민들이 일을 해서 언젠가는 그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빚을 갚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 이자도 못 낼 것이다.

이 상태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결국 빚잔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97년 금융위기는 일시적인 현장이었지만, 다음에 올 위기는 차마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재앙적 수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유럽의 금융위기가 다시 아시아로 넘어오는 것은 필연. 인도, 중국, 한국, 일본 중 어느 한 나라가 주도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겠다.

여기저기서 한국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건만 오뉴월 그믐밤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쓰나미처럼 이미 저 수평선을 넘어 선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각자 언덕을 향해 뛰어야 할까? 차라리 함께 배를 저어 먼 바다로 나가야 할까? 어떤 선택이든 지도자에 대한 신뢰 없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품격 없인 신뢰 없다. 당연히 단합도 없다.

금융위기는 분명코 다시 온다

세월호 침몰 이후 방향감각을 상실한 박근혜 정부가 성완종의 유서 한 장으로 다시 잔인한 4월을 맞았다. 사람들은 현 정치지도자들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끼다 못해 이제는 아예 그들의 존재양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부정부패, 무사안일, 복지부동은 차라리 애교, 이제는 그들의 인간성마저 심히 의심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분명 새로운 문명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당연히 우리의 지도자들이 급격하게 변해야만 하고 정리해고, 수명의 연장, 경기침체, 부와 일자리 분배, 가치관의 변화 등등 온갖 변화들에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나라 지도자들은 다른 나라들의 지도자들보다 덜 지혜롭고, 덜 정직하고, 용기를 덜 가진 것처럼 국민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한국인들은 인내는 강하지만 절제가 부족하다. 인내와 절제는 다른 성질. 절제는 매너를 통해 길러지고 품격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현재 수준의 에티켓, 매너에서 3만 불을 넘어선다면 한국인들은 더욱 타락할 것이라는 게 선진국 사람들의 경험적 충고다. 그 무엇보다 선진사회로 들어갈 체질개선작업, 즉 품격운동이 절박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멱살잡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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