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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도 남서도 '버려진' 9살 꼬마가 살아남은 사연


입력 2015.07.06 09:06 수정 2015.07.06 09:12        문대현 기자

<탈북했다고 끝나지 않는 악몽, 탈북아동의 현주소④>

일반학교 고집하며 고교 졸업후 생산 업체 취직 박모씨

탈북청소년의 남한 내 존재는 이들의 출생 혹은 입국 시의 상황, 또는 남한 정착 후 가정의 해체여부 등으로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19세 이하의 탈북청소년은 4461명이다. 법적으로 24세까지가 탈북청소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이들은 무연고·실질적 무연고 탈북청소년, 제3국에서 태어난 비보호탈북청소년 등으로 나뉘어 각각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에 '데일리안'은 이들의 남한정착 실태와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 등을 재조명해 '통일의 미래'인 탈북청소년들의 바람직한 남한 정착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2002년의 어느 날, 북한 사리원의 한 고아원에서 지내던 당시 9살(추정) 박모 씨가 탈북자인 한 여성의 사주를 받은 브로커의 도움으로 탈북했다. 그러나 박 씨가 남한에 오자 해당 여성은 내 아이가 아니라며 돌아섰고 그는 갑자기 '고아' 신세가 됐다.

박 씨의 남한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그는 탈북민들이 모여 지내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대신 일반 학교 진학을 결정했는데 그로 인해 생기는 또래 아이들과의 마찰과 학업 성취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피하는 대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일반 학교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탈북자라고 놀리는 또래 아이들의 놀림도 꿋꿋이 견뎌냈다. 그가 생활하는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그룹홈) 교사들의 다독임도 큰 도움이 됐다.

그 결과 박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현재 경기도 소재의 한 생산 업체에 들어가 일반적인 남한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생활을 지내고 있다.

마석훈 그룹홈 ‘우리집’ 대표는 “박 군의 경우는 일부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 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거나 비행 생활을 하는 것에 비해 아주 성공적으로 잘 정착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남한서 가족이 부른줄 알고 따라 나섰다가 "내 아이 아냐" '봉변' 박군

‘우리집’에서 ‘데일리안’과 만난 마 대표는 박 군의 남한 정착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흐뭇해했다. 마 대표는 탈북 직후 하나원(북한 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박 군을 직접 그룹홈으로 데려 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지내며 자라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인물이다.

마 대표는 박 군의 탈북 과정을 설명하며 “탈북 브로커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에게 '내 아이를 데리고 와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브로커가 박 군을 한국에 데리고 왔는데 탈북자가 박군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자기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라며 “그래서 그 탈북자는 박 군을 외면했고 그 아이를 하나원에서 맡다가 그룹홈으로 오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게 혼자가 된 박 군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탈북자들만 모여 있는 대안학교 생활 대신 일반 학교를 선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급우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한 박 씨를 따돌렸고 ‘왜 북한은 우리 군인을 죽이냐’며 욕하고 놀리기도 했다.

마 대표는 “박 씨가 남한에 와서 학교에 다닐 당시, 키가 작고 어눌한 데다가 공부도 못 해 학교 친구들이 많이 욕하고 놀렸다”라며 “특히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같은 안보 사건이 터질 때는 또래 아이들은 탈북 아이를 향해 욕을 하며 북한에 대한 분노감을 풀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한 정상적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함으로 생기는 애정결핍 현상도 남한 정착을 힘들게 하는 요소였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남북하나재단 주최로 열린 '2014 탈북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에서 김정림씨가 자신의 정착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연합뉴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남북하나재단 주최로 열린 '2014 탈북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에서 김정림씨가 자신의 정착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연합뉴스

마 대표는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자라다 보니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겠나. 그로 인해 생기는 애정결핍으로 학교적응이 힘들었다”며 “정이 그립다보니 학교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또래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고, 따돌림을 받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또래 아이들과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지자 결국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관두고 1년 정도 휴식기를 가졌다. 이 기간에 여행을 많이 다니며 또 다른 남한을 체험하며 머리를 식혔고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는 등 마음을 추스렸다.

휴식기를 가지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간 박 군의 그 후 생활도 큰 변화는 없었다. 또래 아이들과의 마찰은 끊이지 않았고 마음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남한 사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자기 행동에 절제가 안 돼 휴대전화 인터넷을 끊임 없이 사용하는 바람에 데이터 요금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내기도 했다.

바람 잘 날 없던 생활하던 박 씨, 마음을 다잡다

그러던 그가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18살 무렵, 자신이 또래 아이와 큰 싸움을 벌이고 난 이후다. 마 대표는 “당시 박군이 친구와 싸워 개인 합의금을 만든다고 2000만 원이나 사채를 썼다”며 “그 후 넉넉지 않은 형편에 빚쟁이가 찾아오고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마 대표는 “나와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모습 보니까 미안한 마음에 그제서야 아이가 변했다. ‘나 때문에 힘들구나. 이러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방황을 멈췄다”라며 “우리가 돈이 들어오는 구조가 없어 그 돈을 갚는다고 2~3년 정도 고생할 때 힘들어 하는 표정을 보고 아이가 마음을 잡더라”라고 말했다.

그 후 박 군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고교 졸업 이후 탈북민들에게 제공되는 특례 입학을 마다하고 경기도 내 한 공장 생산직으로 안착했다. 그러나 탈북민을 포함한 대부분 청소년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생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의외였다.

마 대표는 “박 군도 특례 입학을 하면 명문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내 수준이 어느 수준이라고 깨우친 것 같다”라며 “탈북 아이들이 모여 있는 대안학교 출신 아이들은 얼마나 대학 생활이 화려하게 보이겠나. 그렇게 대학에 가더라도 열에 아홉은 그만둔다”라고 설명했다.

본보와의 통화에 응한 박 군도 자신의 대학 포기 결정에 대해 “남들은 다 대학 진학을 권유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며 “어차피 대학 졸업해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회사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박 군은 현재 성실하고 사교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하고 있고, 자신을 키워주고 바로 잡아준 마 대표에게는 큰 마음 먹고 '명품 지갑'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마 대표는 “아주 희귀하고 건강한 사례다.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체 1%도 안 되는 경우”라며 “탈북민 중 명문대학 특례입학을 두고 누가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는 길을 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마 대표는 “대학을 공짜로 다닐 수 있고 명문대 대학생이라는 것이 멋있어 보이지 않나”라면서 “하지만 대학에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멋 모르고 그 길을 택하는 대신 차분히 돈을 버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 매우 드물다”라고 밝혔다.

“하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전 우주가 움직여야 한다”

마 대표는 앞으로 박 씨와 같은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남한 정착 사례가 더욱 많이 생기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지원과 관심,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 한 명을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식을 키운다는 생각을 사랑이 필요하고 그래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며 “경제적인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마음적으로 아이가 의지하고 존중받을 곳이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대부분 탈북 청소년의 교육방법은 대안학교에 집단으로 한꺼번에 모아놓고 비용을 적게 들여 싸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런 방식은 아이들이 적응을 못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300명을 수용하는 학교 1개보다는 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 30개가 더 낫다. 이것이 아이들이 더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있다가 낯선 곳에 온 무연고 탈북자면 상처가 많다”며 “지금은 탈북 아동을 남한에서 받아 놓고 어떻게 키워야 할 지 합의가 없는데 관련 정책의 세분화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박 군은 “처음에 남한에 오면 말투랑 하는 행동이 남한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니까 적응이 잘 안 된다”라며 “나는 적응을 위해 학교에 들어가기 전 스스로 공부하며 말투를 고치는 노력을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탈북민들의 남한 적응법에 대해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순간순간 상황에 맞게 행동을 알아서 잘 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면서 “탈북자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어차피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말고 단지 순간의 상황에 잘 대처하면 된다”라고 전했다.

또 대안학교 생활 대신 일반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착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을 강조하며 “일단 대안학교로 가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들어 졌을 때 적응을 하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탈북민들이 일반학교를 다니면 처음에만 힘들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다음부터는 편하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많이 힘든 것을 잘 감수하고 이겨낼 수 있다면 일반 학교를 다니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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