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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을 길막아 확장? 풍수지리 짓밟는 망국의 서막


입력 2015.03.28 10:21 수정 2015.03.28 10: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헐어내서 기혈을 소통시켜야

세계 유일의 상설 시위 난장 시위대 천막부터 걷어라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빨간 불 신호등이 켜져있다. 사진 오른쪽 뒤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빨간 불 신호등이 켜져있다. 사진 오른쪽 뒤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광화문광장엔 정초부터 축제 대신 내내 시위, 농성이다. 한 가운데 떡하니 금칠한 세종대왕상이 도교의 신상처럼 버티고 앉아서 '어린 백성'들의 상소를 다 들어주고 있다. 365일 거의 빠짐없이 온갖 잡동사니 행사가 벌어지는 곳. 늘어선 천막들은 도심 속 난민촌 같다. 말이 광장(廣場)이지 실은 난장(亂場)판이다.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광화문 앞을 지날 때는 짜증이 난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광복70년 기념사업 제안 공모'에 세종문화회관 앞 5차선 도로를 없애고 광장으로 확장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시민이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광화문광장을 보행 친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며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 전에 마무리하고, 남대문로와 새문안로에는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전체 사업에 64억 원을 예상하는 이 안은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아침에 신문을 펼치다가 이 기사와 조감도를 보자 필자는 심장이 콱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말 그대로 “세상에 이런 일이!”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나라가 망하려고 이런 일이 생기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아니, 시민들을 위해 광장을 확장해주겠다는데 웬 재수 없는 소리냐며 언짢아하는 이들도 있겠다.

대로(大路)를 막아 광장(廣場)을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나라

광화문 앞은 600년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하여 파리의 콩코르드광장, 런던의 트라팔가르광장, 북경 천안문광장처럼 서울의 중심에도 그같이 커다란 광장 하나쯤 있는 것을 굳이 마다할 시민은 없겠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설계되지도 않은 광장을 만들려니 문제다.

굳이 풍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이든 강이든 힘차게 뻗어 내리고 흘러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수긍하는 이치. 길 또한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동양에선 다리를 놔주는 것을 제일의 공덕으로 여겼을 만큼 길을 이어주는 것을 중시하였다. 한데 새 길을 터고 넓히지는 못할망정 멀쩡한 길을 막아 광장을 만들겠다니! 그런 발상을 해내는 사람들의 뇌구조가 도무지 의심스럽다.

대로(大路)가 도시의 심장 혹은 관상동맥이라면 광장은 허파와 같은 곳이다. 정히 광장이 필요하다면 대로(大路)를 좁히거나 막아서 만들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 옆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세종문화회관, 여타 빌딩들을 헐어내어 광장을 조성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게다가 시민들을 위한 보행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 역시 억지스러운 발상이다. 그러려면 ‘광화문광장’이 아니라 ‘광화문공원’이어야 맞다. ‘여의도광장’을 ‘여의도공원’으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망국의 길로 들어선 불길한 조짐

멀쩡한 길을 좁혀 광화문 광장을 만든 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대대적 확장공사를 하겠단다. 돈이 썩어나는지 서울시는 길바닥에 돈 처바르는데 거의 병적인 집착증을 보인다. 한 뼘의 빈 공간도 도무지 그냥 두고 못 본다. 시장 바뀔 때마다 대대적 손질을 해댈 테니 광화문광장의 모습은 10년 앞을 짐작키 어렵게 생겼다.

광화문광장 확장은 대한민국이 협심증 내지는 심장마비에 걸릴 것 같은 기분 나쁜 징조다. 콘테이너 ‘명박산성’ 대신 시위대와 천막으로 청와대를 압박해보겠다는 저의가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무렴 대통령이나 외국수반들도 청와대를 샛길로 돌아 들락거리게 생겼으니 그 꼴 역시 볼썽사납겠다.

이 나라는 요즘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누적된 전시행정 빚더미로 속은 곪을 대로 곪았다. 지난 정권은 반도의 대동맥인 4대강을 토막토막 잘라 장어구이 해먹더니 이번에는 대로(大路)를 막아 난장(亂場)을 만들겠단다. 심장 관상동맥을 기름덩어리로 틀어막는 꼴이다. 머잖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재앙적 위기가 닥칠 것 같은 불길함이 밀려온다.

광화문광장을 확장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헐어내어 기혈을 원활하게 소통시켜야 한다. 세종대왕상은 물론 중앙분리대조차 없애어 옛 여의도광장처럼 완전한 통광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평소에는 소통에 걸림이 없도록 차로로 사용하다가 국가적인 행사나 범시민적인 축제 때에만 잠시 전체를 광장으로 사용하면 된다. 집회나 시위는 기존의 다른 광장이나 한강 둔치에 나가 해도 된다.

허파가 그렇듯 광장(廣場)이란 비워야 제격이다. 지금처럼 허구한 날 집회·시위대들 차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광장의 사회적 의미도 모르고 그저 크게 만들면 된다는 안이한 발상, 도심의 허파가 아닌 배설구 같은 광장, 짝퉁 근성이 만들어낸 짝퉁 광장인 것이다. 지금 서울 시민에게 필요한 건 더 큰 광장이 아니라 올바른 광장 문화다.

아무렴 길은 뚫는 것이지 막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 털어 길을 막거나 끊어서 잘 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로(大路)가 아닌가? 좀스럽게 지금처럼 토막토막 잘게 잘라 따로 광화문로, 태평로, 남대문로라 부르지 말고 하나로 이었으면 싶다. 태평로(太平路)! 태평대로(太平大路)! 얼마나 넉넉하고 시원한 이름인가!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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