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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대사, 퇴원 날 초록색 넥타이 맨 이유 알고보니...


입력 2015.03.15 07:30 수정 2015.03.15 12:44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자신을 바친 성 패트릭을 암시

넥타이 매는 것도 의미를 담아내는 글로벌 매너 읽어야

흉기 피습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퇴원하기 앞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리퍼트 대사는 한국어로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며,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흉기 피습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퇴원하기 앞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리퍼트 대사는 한국어로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며,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2013년 3월 19일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식당에서 열린 성 패트릭 데이 오찬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부터), 미 하원 의장 John Boehner(오하이오주 민주당의원), 아일랜드 총리 Enda Kenny, 3인 모두 초록색 계열 넥타이를 맸다. 백악관 홈페이지 화면 캡처. 2013년 3월 19일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식당에서 열린 성 패트릭 데이 오찬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부터), 미 하원 의장 John Boehner(오하이오주 민주당의원), 아일랜드 총리 Enda Kenny, 3인 모두 초록색 계열 넥타이를 맸다. 백악관 홈페이지 화면 캡처.

3월이면 세계는 축제로 들썩거린다. 축제에 다 함께 참여해 묵은 때, 묵은 갈등을 털어 버리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자! 봄맞이를 통해 공동체 정신을 기르고자 함이다. 한데 이 나라 광장엔 축제는 없고 시위, 농성, 데모만 있다. 축제가 없는 민족이 단합될 리 없을 터. 그러니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입으로는 ‘화합’을 외칠 수밖에.

양방향 소통 매너를 모르면 집안에서는 금가고 깨진 쪽박, 신세 한탄 단체적 푸념이 떠나지 않고 집 밖에서도 글로벌 왕따. ‘세계화’ ‘세계 경영’ ‘세계 지배’는 말로 되는 것 아니다. 게다가 축제만 봐도 그 공동체의 창의성이 다 드러난다. 변변한 축제 하나 없는 나라가 외치는 ‘창조경제’ ‘통일대박’이 허망하게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축제란 공동체의 화합 매너

피습으로 입원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5일 퇴원 기자회견에서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나와 한국어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며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한데 한국에선 그 누구도 그가 왜 초록색 넥타이를 매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그날 초록색이 마음에 들어서 그걸 매고 나왔을까?

한국적 상식을 동원해서 굳이 그 초록색 넥타이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봄을 맞아 새롭게 돋아나는, 비 온 뒤에 솟아나는 새싹처럼 자신의 상한 몸도 회복되었음을 명시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연상해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무사히 퇴원하는 그를 보고 시민들은 ‘그만하기에 천만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초록색 넥타이는 너무 튀는 색이어서 신사들도 잘 매지 않는 색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짙은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그것도 엄청난 충격적인 피습을 받아 상처를 입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가 퇴원하면서 전 세계인이 지켜보게 될 기자회견에 굳이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는 건 아무래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보통인도 아닌 외교관이다.

공인에게 사적 취향이란 없다

서양에선 미국 PGA 마스터스대회 우승자를 위한 그린 재킷 외 아무 데나 초록색 넥타이를 매거나 초록색 옷을 걸치고 나갔다가는 자칫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한데 이 초록색 넥타이 혹은 초록색 리본 등 초록색 의상과 액세서리가 대대적으로 허용되는 시기가 일 년에 딱 한 차례 있다. 바로 ‘성 패트릭 데이’ 축일(3월 17일) 전후한 기간이다. 한국인들에겐 생소하지만 ‘성 패트릭 데이’는 아일랜드 최대의 축제일이다. 하여 영연방 국가들은 함께 이날을 축하하며 즐긴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뉴욕 최대의 퍼레이드를 펼치는가 하면 다른 대도시에서도 각종 축하 이벤트가 열린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세인트 패트릭(St. Patrick)은 385년경 잉글랜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잉글랜드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로마 정부의 관료로 일한 부친 덕분에 패트릭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16세에 켈트족 해적에게 납치돼 아일랜드로 끌려갔다. 당시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에 거주하던 켈트족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다.

패트릭은 그곳에서 양치기 노예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네 양들이 준비됐다”는 목소리를 들은 패트릭은 배를 타고 탈출해 서유럽을 돌며 공부를 하여 사제가 된다. 432년 그는 다시 신의 계시를 받고 켈트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당시 로마 교황청에서는 켈트족에 대한 선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패트릭은 아일랜드 원주민에 대한 편견에 굴하지 않고 이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 노예로 지내면서 배운 켈트족의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현지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30년 동안 기독교를 전파하고 461년 3월 17일 숨을 거두었는데, 이후 아일랜드 가톨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성 패트릭 데이’ 축제의 특징은 녹색 옷과 녹색 모자, 그리고 녹색 리본이다. 녹색은 패트릭 성인이 아일랜드 이교도들에게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토끼풀을 사용했다는 일화가 널리 퍼지면서 패트릭 성인을 상징하는 색깔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아일랜드 국기에 녹색이 들어 있다. 따라서 매년 3월 17일에 아일랜드의 거리는 온통 녹색 물결을 이룬다. 도시에서는 강물에 녹색 물감을 풀고, 건물에 녹색 조명을 비춘다. 녹색으로 치장한 주민과 관광객들은 음식과 술, 음료도 녹색으로 만들어 먹는다.

‘소통 매너’ 기반이 없는 한국식 인문학은 허학(虛學)

이제야 마크 리퍼트 대사가 퇴원 기자회견에서 초록색 넥타이를 맨 이유가 분명해진다. 자신을 성 패트릭에 비유한 것이다. 성 패트릭이 자신을 납치해 끌고 가 노예로 부리며 박해하던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시 건너간 것처럼, 피습 당한 한국에 평화를 심기 위해 몸을 던져 바치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넥타이 하나에 담은 것이다. 입원 기간 중 그가 읽었다는 책 '두 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 A Contemporary History)가 또 다른 방증이다. 오바마 대선주자의 최측근 참모 이력답게, 분쟁지역에 파견된 외교관답게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초록 넥타이를 맨 자신의 사진이 전 세계에 알려질 것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3월 17일이 ‘성 패트릭 데이’이니 백악관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영연방 국가 등 세계인들은 그날을 축하하기 위해 벌써부터 초록색 치장을 준비한다고 여념이 없을 터이니 외신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신의 사진 한 장만 보고도 자신의 메시지를 읽어낼 것임을 계산한 것이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넥타이 한 장으로 글로벌 선진문명권 세계인들과 소통해낸 것이다. 이런 게 바로 글로벌 소통 매너다.

그러니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건 다름 아닌 “피가 뿌려진 땅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진다”로 해석하면 되겠다. 무지한 건지, 순진한 건지 한국의 위정자들 누구도 이 상투적인 교신법 하나조차 알아채기는커녕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제멋에 겨운 넥타이를 매고 서로 멱살잡이하느라 날을 지새우고 있다. 글로벌 매너적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아직 미개국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종종 짙은 초록색 상의를 입는데 과연 초록의 사회학적 의미를 알고 입는지 궁금하다.

초록 넥타이의 의미를 모르는 건 지도자의 자격 미달

요즘 한국에선 인문학 강좌가 붐을 이루고 있다. 반갑기도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상아탑 안에서의 인문학, 인문학만을 위한 인문학, 그저 지적 희열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기실 현실에서 얼마나 소용이 될까 싶다. 비즈니스 현장에 바로 적용가능하지 못한 인문학적 지식은 죽은 지식, 즉 화석화된 지혜일 뿐. 매너는 그걸 살아 있는 생체(生體) 지혜로 환원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비즈니스 생태계(生態系)의 상업적 니즈에 긴밀히 맞추어 세속화된, 보다 통속적인 인문학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초부터 시위, 농성, 그리고 테러다. 해서 봄을 맞는 한국인들은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우울한 날들을 참고 견디지만’ 기쁨의 날을 좀처럼 맞지 못하고 있다. 아무렴 그래도 봄이다! 또다시 ‘잔인한 사월’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라도 17일엔 초록 스카프를 둘러 ‘성 패트릭 데이’를 축하해 주어 세계인들과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왕 시민들도 우중충한 겨울옷 벗어던지고 초록색 치장으로 봄을 맞이했으면 싶다. 영연방 국가에, 미국에, 미국령 사이판섬에라도 친구나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으면 초록색 카드나 선물을 보내길 바란다. 크게 환대받을 것이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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