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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법 만들면 뭐해, 또 다른 '세림'인 짓밟혔는데...


입력 2015.03.12 10:32 수정 2015.03.12 10:47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통학버스 사고 만병통치약인 듯 호들갑만…실효성 없어

10일 경기도 광주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 어린이가 자신이 타고 온 통학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통학버스. ⓒ연합뉴스 10일 경기도 광주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 어린이가 자신이 타고 온 통학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통학버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28일과 11월 19일, 12월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된 도로교통법(제51~53조), 이른바 세림이법이 시행된 2개월여 만에 또 다시 어린이가 통학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3년 세 살이었던 고 김세림 양이 통학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를 계기로 입법화한 세림이법은 어린이 통학버스의 특별보호(제51조), 통학버스 운영자와 운전자의 자격요건 강화(제52조), 통학버스 운전자 및 운영자, 동승 보조자의 의무 규정(제53조)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2년 동안 변한 것은 없었다. 지난 10일 숨진 이모 군은 통학버스에서 내린 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나 인솔교사는 이를 몰랐고, 버스기사는 그대로 출발하다가 이 군을 치었다. 이에 대해 김 양의 아버지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림이법의 실효성 없는 형량이 또 다른 세림이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세림이법이 통과될 때까지만 해도 정치권과 시민단체, 언론 등은 이 법으로 모든 어린이 통학버스 사고가 예방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이때까지 세림이법이 없어서 사고가 발생했던 것처럼.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동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법안에 피해 아동의 이름을 붙여 대대적으로 여론전을 펼친다. 그 법이 통과돼야만 사고를 막을 수 있노라, 이 법에 반대하면 특정 이익집단의 압력에 굴한 것이고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원치 않는 것이라.

이런 식으로 발의된 대표적인 법안으로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태완이법)과 어린이집 CCTV법으로 불리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있다. 고 김태환 군의 이름을 딴 태완이법은 대구 황산테러 사건을 계기로, CCTV법은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각각 발의됐다.

CCTV법의 경우, 지난 3일 본회의에서 부결돼 오는 4월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이 법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될 때까지만 해도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지만, 법사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보육교사에 대한 과도한 인권침해와 실효성 논란이 일었었다.

여야는 현재 4월 임시국회에서 CCTV법 입법을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민 여론을 감안하면 4월 임시회에서는 이 법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CCTV법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CCTV법은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수정됐을 만큼, 내용 자체에도 많은 허점이 존재했다.

법안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를 하고, 이를 통해 발생 가능한 부작용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아동 등 민감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여론을 의식해 법안을 발의하는 행위는 졸속 입법을 초래한다. 특히 아무리 완벽한 법이라고 해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반드시 법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도 함께 논의되고 마련돼야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다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기를 위해 법안을 만병통치약으로 포장하고 선동하는 행위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기이다.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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