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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김치 비하에 욱하신 당신, 동남아 음식엔?


입력 2015.03.01 08:58 수정 2015.03.01 09:04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피해에는 민감 가해에는 둔감' 이중잣대

영화 '버드맨' 스틸컷.ⓒ20세기폭스 코리아 영화 '버드맨' 스틸컷.ⓒ20세기폭스 코리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영화 '버드맨'이 한국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주인공의 딸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에 가서 ‘꽃에서 모두 김치처럼 역겨운 냄새가 난다’(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버드맨' 홍보 담당자는 극 중 캐릭터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대사일 뿐 특정 나라와 문화를 비하하는 의도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캐릭터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왜 굳이 김치를 걸고 넘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영화 속의 설정, 대사는 그저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심하게 기획되는 것인데 특히 헐리우드 영화처럼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철저히 다양한 소비자들의 기호를 고려해서 하나하나 배치된다.

큰 시장을 가진 국가에 대해선 좋지 않은 설정을 빼주거나 혹은 일부러 좋은 설정을 넣어주기도 한다. 해당 국가, 민족을 불쾌하게 할 경우 흥행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심기를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김치를 왜 안 좋은 것의 상징으로 등장시켰을까? 이것은 '버드맨' 제작진이 한국인의 반감에 무신경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인다. 한국인과 한국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한국을 상징하는 김치를 부정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에 대해 한국인이 불쾌하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내면 차후 다른 헐리우드 제작진이 영화를 기획할 때 조금이라도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과거 '매쉬'라는 영화에서 한국을 동남아처럼 묘사했었고, '007 어나더데이'에서도 북한을 동남아처럼 묘사했었다. '폴링다운'에선 한국인을 비루하게 그렸고, '더 인터뷰'에선 ‘개고기 안 먹는 나라로 가자’며 한국을 희화화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선 헐리우드가 한국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어벤져스2'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선 보기 드물게 한국을 촬영지로 선정하기도 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배우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엄청난 흥행이 터지다보니 한국관객에 대한 배려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버드맨' 사건이 터진 것이기 때문에 의외성이 크다. 이럴 때 한국인이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한다면 앞으로는 헐리우드 제작진들이 한국을 표현할 때 더욱 조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헐리우드 제작진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헐리우드 제작진이 한국에 무신경한 것 그 이상으로 우리도 동남아 시청자들에게 무심한 면모를 보인다.

예능에서 외모가 출중하지 않은 출연자를 향해 동남아 현지인 같다고 하거나, 스타일이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향해 중국사람 같다고 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라디오스타'에선 슈퍼주니어의 코믹 캐릭터인 신동을 향해 ‘왕서방’ 같다고 한 적도 있었다. 헐리우드의 무신경 못지 않게 우리의 무신경도 심각하다.

우리 TV에서 나타나는 인종주의적 문제에 대해 지적하면 우리 네티즌은 종종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달려든다’면서 맹렬히 비난한다. 우리가 이런 식이면 헐리우드 제작진들의 인종주의를 비난하기 힘들다. 헐리우드엔 민감 우리 자신엔 둔감, 이런 식은 곤란하다.

이번 '버드맨' 논란은 어떻게 보면 극중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하는 가운데에 잠시 스쳐 지나간 별것 아닌 장면일 수 있다. 우리 네티즌은 그런 것에도 한국비하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우리의 영상물도 같은 잣대로 봐야 한다. 가볍게 지나가는, 우리 입장에선 별것 아닌 장면에도 동남아 사람들은 불쾌할 수 있다. 남들이 하는 한국비하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는 외국비하에도 민감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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