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자의 눈]저축은행 중금리 대출 저신용자엔 '빛좋은 개살구'


입력 2015.03.03 10:40 수정 2015.03.05 15:34        김해원 기자

<기자의 눈>"저축은행 10%대 대출상품 '몸사리는 영업'으로 대출 실적 미미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은 '그 날' 유난히 장사가 잘 됐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평소 몸이 안 좋았던 아내는 죽어있었다. 주인공은 아내를 붙들고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며 통곡한다. 주인공의 인생이 풀린다 싶었지만 결국 불행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이 소설의 주내용이다.

최근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들이 10%대 금리 대출 상품을 출시한 것을 두고 '착한 대출'이라며 칭찬이 이어졌다. 저축은행들의 30%대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중-저금리 상품을 통해 묵묵히 흑자를 올리고 있다는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 그러나 이를 두고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10%대 대출상품인데 왜 가입을 못해..."라는 탄식이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초부터 판매됐던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들의 10%대 대출상품이 주목받고 있지만 과연 저신용자들을 위한 상품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저축은행을 찾는 대부분의 저신용자들에게 10%대 대출상품의 까다로운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0%대 금리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최근 한 금융지주사 저축은행을 찾아간 지인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했다. 그는 "언론 보도를 보고 저축은행에서도 낮은 금리의 대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갔는데 시중은행 만큼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해원 경제부 기자 김해원 경제부 기자
실제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의 10%대 대출 상품은 화려한 칭찬이 무색하게 실적은 초라했다. 금융지주 계열의 한 저축은행은 상품을 출시한 2012년 초부터 지난달까지 판매 건수 5311건, 대출액 485억원을 기록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는 다이렉트 대출상품을 출시하는 타 저축은행의 한 달 평균 대출액인 400~500억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즉, ‘몸을 사리는 영업’을 통해 대출 볼륨을 줄여 리스크 관리를 해온 덕에 저금리 책정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저신용자들을 골라 받을 수록 개인회생이나 연체 등 부실률은 떨어질수 밖에 없고, 그 만큼 수익성은 개선되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저축은행은 제1금융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저신용자들이 주로 찾는다. 하지만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처럼 고객들을 골라 받는다면 수익성은 좋아질지 몰라도 신용도가 낮은 이들은 금리가 높은 대부업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출 문턱은 낮지만 이자율은 높은 일반 저축은행에선 "10%대 상품이 저축은행의 주고객인 저신용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색내기용'일 뿐"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30%대의 '이자율 폭탄'을 가져오는 것이 '악덕 저축은행'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높은 이자율은 악덕 저축은행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먹튀고객이 만든다"며 "대출금을 떼먹는 고객이 늘다보면 부실률이 높아지고, 저축은행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들이 마치 저신용자들을 위한 것처럼 10%대 상품을 내놓고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은 누가 봐도 저의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라서 금융당국도 무조건 이자율을 낮추라고 압박할 것이 아니라 개인회생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대출금을 떼먹는 비양심적 차주들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실률이 높기 때문에 대출이자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저축은행 업계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서민 금융기관으로서 저축은행의 존재 가치와 도덕적 역할도 저버릴수 없는 중요한 의무다.

어찌보면 저축은행 업계가 생존을 위해 대출 이자와 상품 서비스를 둘러싼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거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꼼수 상품'을 내놓는 것은 돈 한푼에 목말라하는 저신용자들을 두번 울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저축은행들이 진정한 서민금융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거리로 내몰리는 저신용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김해원 기자 (lemir0505@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김해원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