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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26개월 걸려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는 했지만...


입력 2015.02.10 08:46 수정 2015.02.10 08:56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가해자가 반성" 편가르고, 거부한 최고위원도 설득했어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신임 지도부들이 9일 오전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신임 지도부들이 9일 오전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2012년 대통령 후보 신분으로 유보했던 결단을 다시 내리는 데 약 2년 2개월이 걸렸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옳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묘역의 참배 여부를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또 “진정한 국민 통합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지난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에게 진솔한 사과를 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해 피해자도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해와 통합이 이뤄진다”면서 “나는 박근혜정부가 그런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물론, 문 대표의 이날 행보를 놓고 전날 신임 지도부 내에서 우려가 흘러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주로 상대 진영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또 역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승만·박정희 참배에 앞서 첫 일정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 참배가 더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톨레랑스(관용)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최고위원 당선자도 전당대회 직후 국회 출입기자들과 만찬 자리에서 이 같은 당내 목소리를 전하며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문 대표의 결정을 놓고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독재정권의 피해자, 민주화 세력의 시각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절차의 정당성이 결여된 불법 집권세력이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에 무게를 두거나, 또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이다.

문제는 상대에 대한 인정이다. 서로의 생각과 판단, 이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은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을 전제로 상대방의 생각을 틀렸다고 단정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정 최고위원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가해자로 규정했지만, 정권 관계자 중에도 피해자는 존재한다.

개인의 경험을 기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다툼에 부모를 잃은 피해자이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어떤 권력도 행사하지 않았지만 진보진영에선 가해자로 분류된다. 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들의 추종세력은 모두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도 피해자가 된다.

화합은 이해와 용서에서 시작된다. 박 대통령은 출신·지역적으로 편중된 인사, 반대 의견에 대한 배척으로 ‘반쪽짜리’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같은 맥락에서 문 대표가 당론과 반대되는 목소리, 반대되는 국민을 외면한다면 박 대통령처럼 반쪽짜리 당대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는 통합은 언제나 부작용을 낳는다. 반대로 이해와 용서는 보수세력과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책임자들을 김구 선생의 묘소로,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로 이끌 수 있다.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방의 경험과 생각을 먼저 인정해주는 것 또한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문 대표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단 혼자가 아니라 거부한 최고위원도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더욱 평가됐을 것이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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