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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고마워!’ 마지막 불꽃, 후회 없이 태우고 떠났다


입력 2015.01.31 23:48 수정 2015.01.31 23:53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아시안컵 아쉬운 준우승, 국가대표 은퇴경기 새드엔딩

미련 남지만 후회 없는 대회..박수 받으며 작별인사

개최국 호주에 1-2로 패해 아쉽게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의 차두리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연합뉴스 개최국 호주에 1-2로 패해 아쉽게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의 차두리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연합뉴스

‘탱크’ 차두리(35·FC서울)가 국가대표팀에서 공식 은퇴했다.

비록 우승 달성은 실패했지만, 차두리는 정점에서 그라운드를 떠났다. 팬들은 ‘차두리 고마워’를 실시간 키워드로 올려 감사 인사를 남기고 있다.

올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31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호주와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1-2로 패했다. 55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 한국은 또 4년 후를 기약하게 됐다.

그러나 축구팬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른 태극전사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특히 ‘노장투혼’ 차두리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차두리는 호주전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장해 그라운드를 누볐다. 호주의 피지컬에 두려움 없이 정면충돌했다. 이런 탱크 같은 기질에 많은 팬들이 감명을 받았다. 차두리는 항상 그래왔다. 친선경기, 월드컵 가리지 않고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웠다.

종착역에 도착한 폭주기관차 차두리, 그가 달려온 길을 되짚어 본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지난 2001년 한국과 고려대의 연습경기에서 당시 고려대 소속으로 뛴 차두리를 눈여겨보고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깜짝 발탁에 많은 축구팬이 의아해 했지만 ‘매의 눈’ 히딩크 안목은 정확했다. 차두리는 2002 월드컵서 특급 조커로 활약하며 한국의 4강 신화에 기여했다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와 닮은 차두리는 무한한 잠재력과 다크호스 이미지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오버헤드킥이 대표적이다. 2004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선 필립 람(31·뮌헨)을 완벽히 파괴했다.

차두리의 축구 인생엔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현역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중계석에서 월드컵 해설을 한 이력이 가장 특이하다.

차두리에게 시련이 엄습한 시기는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이다. 한국은 월드컵 개막을 1년 앞두고 조 본프레레(68)에서 딕 아드보카트(67)로 사령탑을 교체했다. 본프레레는 한국을 6회 연속 본선으로 이끌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 예선 2연패가 뼈아팠다.

본프레레 후임 아드보카트 감독은 차두리를 독일에 데려가지 않았다.

차두리는 태극마크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아버지 차범근과 함께 해설을 맡아 대표팀을 응원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해설과 솔직한 입담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한국-스위스전 오프사이드 실점에 대해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 사기입니다”라고 발언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차두리는 2006년 5월 축구 선수로서 중대 기로에 섰다. FSV 마인츠 시절 주전 확보를 위해 공격수에서 윙백으로 변경한 것.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됐다. 윙백은 폭주기관차에 잘 어울리는 포지션이다. 차두리는 터치라인 끝에서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주력을 갖췄다. 윙백은 마음껏 달리고픈 그의 ‘본능’을 충족시켜줬다.

포지션 변경 후 차두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허정무 전 감독(60)은 2010 월드컵 지휘봉을 잡은 뒤 차두리를 호출했다. 차두리는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 맏형 역할을 하며 사상 최초 원정 16강을 달성했다.

이후 차두리 주가는 치솟았다.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으로 이적해 기성용과 코리안 듀오를 형성했다. 차두리의 인기는 CF로 이어졌다. “간 때문이야”는 전국구 유행어가 됐다.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던 차두리의 대표팀 생활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또 시련을 맞았다. 당시 대표팀은 차두리를 외면했다.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반납한 상황에서 차두리는 ‘2002 히딩크 세대’의 마지막 유산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차두리는 또다시 아버지와 함께 해설을 맡아 그라운드 밖에서 대표팀을 응원했다. 당시 차두리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후배들을 지켜보며 “선배들이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눈물을 보인 바 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차두리는 2015년,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슈틸리케호 최고참으로서 반세기만의 우승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아쉽게 호주의 승리로 끝났지만, 누구도 대표팀을 원망하지 않는다. 태극전사는 목숨 걸고 싸웠고 최전선 중심에 차두리 장군이 있었다.

‘히딩크의 마지막 유산’ 차두리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본 축구팬들은 그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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