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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통해본 MB와 YS 닮은점과 다른점


입력 2015.02.01 10:04 수정 2015.02.01 10:09        문대현 기자

퇴임후 2년이내 출간…치적 중심 서술

남북정상회담 무산 소회 언급 '닮은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데일리안DB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데일리안DB

다음달 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회고록에는 민감한 정치 현안들이 다수 포함돼 정치권에서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일부 비슷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지난 28일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언론을 통해 일부 공개됐다. 이와 관련, 퇴임한 지 23개월만이라는 이른 출간 시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책에 담겨 있는 ‘남북관계’, ‘세종시 수정안 추진’, ‘한미 FTA’ 등 재임 시절 행적에 대한 평가가 엇갈려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회고록을 낸 것은 윤보선·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여섯번째이다. 이 중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후에 출간됐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은 발간될 때마다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MB의 회고록 역시 최근 국회에서 다뤄지고 있는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한 입장을 내놓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중에서는 YS의 저서가 발간 당시 외환위기였다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화제가 됐다.

출간과 동시에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YS와 MB의 회고록은 발간시기와 내용 등에서 몇 가지 비슷한 부분들이 있다.

YS와 MB, 벼락과 같은 회고록 출간 시기에 대해 논란 일어

YS는 1998년 2월 퇴임 직후인 이듬해 말 ‘김영삼 회고록’을 발간했다. 당시 국민 여론은 IMF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YS를 지목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려 했지만 퇴임 2년도 안 돼서 나온 발간 시기와 함께 책 내용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번에 나온 MB의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YS와 마찬가지로 퇴임 직후 자기방어를 위해 책을 냈다는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다. MB는 지난해 5월부터 삼성동에 사무실을 내고 회고록 집필에 열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주 한 번씩 전직 청와대 수석들과 회의를 하며 준비했고, 오탈자를 직접 고치는 열의를 보이면서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는 후문이다.

여론은 YS와 MB에 대해 공통적으로 자기방어와 합리화를 위해 이른 기간에 회고록을 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MB는 이에 대해 시간이 더 지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생생하게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설명했지만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들이 많은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른 기간에 회고록을 내려고 한 것은 결국 자신의 업적을 드높이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들의 회고록에는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가감 없이 표현돼 있다.

회고록서 전임자들에 독설 퍼붓고 내 잘못은 없다고 발뺌

실제로 YS는 회고록의 대부분을 자신의 재임기간 있었던 치적을 소개하며 홍보하는 데 할애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실제, 공직자 재산공개, 안전가옥 철거,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의 일들을 두고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한 일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책을 통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직전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보 정치를 통해 나를 견제하는 데만 골몰했다”고 밝혔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정희에게 탐욕스러운 권력욕만 배웠다”고 날을 세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부정부패의 원조”라고 몰아붙인 그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킨 인물”로 묘사했다. 회고록이 나올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역시 “자신의 역사적 소명에 대한 판단 착오를 일으켰다”라고 견제했다.

MB 역시 회고록을 통해 현재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한 오해풀기에 주력했다. 그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수많은 하천 관련 전문가들이 공을 들여 기획한 것”이라며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재 국회 특위까지 구성된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걸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라며 “퇴임한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MB는 전직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진 않았지만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발단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기술하며 책임을 돌렸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와 관련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수정안에 반대했다고 밝혀 청와대의 반발을 사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뤄내지 못한 아쉬움 드러낸 YS·MB

YS와 MB의 회고록에는 공통적으로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는 점도 이목을 끈다.

YS는 회고록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먼저 자신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다. 고 김일성 전 주석이 갑작스레 사망하지 않았다면 본인이 분단 이후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었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졌을 것이라는 뉘앙스이다.

그는 정상회담 장소와 관련, “(내가) 평양도 좋다고 양보를 했다”며 “답방 문제는 확정짓지 말고 평양을 갔을 때 정상회담에서 결정을 하기로 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핵이 제일 문제가 됐을 것이고 아마 군비축소를 하자고 제안 했을 것이다. 고 김 전 주석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몰랐다”고 구체적으로 전했다.

이와 관련, MB의 회고록에도 지난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비밀 회담을 가지는 등 정상회담 성사가 거의 9부 능선을 넘는 단계까지 갔다고 기술돼 있다. 그는 책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북한은 정상회담 조건으로 내놓은 옥수수 10만t, 쌀 40만t, 비료 30만t,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1억 달러), 국가개발은행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제공 등을 주장했다. MB는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놓치기 어려운 카드라서 잠시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 외에도 그의 회고록을 통해 북한이 MB정권 시절 우리 측에 중국 등의 간접경로를 통해서도 다섯 번이 넘는 정상회담 제의를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공개됐다. 그러나 이후 2011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MB정부에서의 더 이상의 남북정상회담 논의는 진행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YS와 MB의 회고록은 흡사한 부분이 상당하다. YS의 회고록이 ‘너는 못했고 나는 잘했다’식의 논리를 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가운데 MB의 회고록은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역대 대통령 회고록…대선 자금 밝힌 노태우, 사후에 발간된 DJ, 노무현

한편, 역대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자신들이 재임기간 겪었던 솔직한 심경과 함께 그동안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공개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은 1991년 출간됐다. ‘내 청와대 생활은 거짓 없이 바늘방석에 앉은 격이었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회고록은 5·16 군사정변으로 실각되는 과정에서의 윤 전 대통령의 심적 고통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2011년에야 나왔다. 이 책은 YS의 정치자금 문제를 다뤄 파장이 매우 컸다.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 측에 김영삼의 요청으로 3000억원 대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혀 엄청난 이슈가 됐다.

그러나 그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들은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한 것”이라고 책임을 돌려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그의 사후인 2010년 7월 출간됐다. 700p 정도의 긴 분량에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박한 평가와 함께 대중들이 모르던 사실들이 많이 공개돼 호평을 얻기도 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가 본처가 아니었고 자신은 서자였음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4년 자신을 찾아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놓고 사과를 한 것에 대해서는 ‘박정희가 살아 돌아와서 화해를 한 것 같더라’고 표현해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은 집필 도중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2009년 9월 출간됐다. 당시 그의 추모 열풍이 불었던 국민적 정서와 결합돼 16만부 이상 팔리며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책에는 ‘난 실패한 대통령’,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 이뤘다. 무리한 욕심이 실패와 오료의 원인이다’라는 솔직한 심정이 담겨 대중의 호응을 얻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정수장학재단은 장물이다. 그 주인이 정권을 잡겠다고 한다’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내지 않았는데 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그동안 회고록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져 향후 출간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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