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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육교사들을 악마로 만들었나 봤더니...


입력 2015.01.29 08:27 수정 2015.01.29 09:06        목용재 기자

교육보다 서류에 치이고 점심시간은 휴식 아닌 전쟁

방광염, 변비, 허리디스크 등 '직업병'도 '수두룩'

#포천 소재 한 민간어린이집에 근무하고 있는 A씨(28, 5년차 교사). 그는 오전 7시 40분에 어린이집으로 출근해 오후 7시 반까지 12시간 동안 온 신경을 아이들 23명에게 집중한다. 용변 본 아이들 옷 갈아입혀주랴, 아이들 식사 챙기랴, 틈틈이 보육일지 및 교육준비 하랴 마음 편히 벽에 기대 쉴 여유조차 없다. 같은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동료교사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사치다.

#수원 소재 국공립어린이집의 보육교사 B씨(38, 7년차 교사)는 어린이집 평가인증 ‘시즌’만 되면 ‘혼’이 빠져나간다. 15명의 만3세 아이들을 돌보기도 시간이 벅찬데, 한국보육진흥원 ‘현장 관찰자’의 감사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수십 가지다. 평가인증을 받는 주변 어린이집들의 평균점수가 점차 높아지고 있어 어린이집 원장은 “이번엔 100점이 목표”라며 은근한 압력까지 가한다. 평가인증 준비 기간 동안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28일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어린이집연합회가 보육 교직원 700여 명을 대상으로 마련한 아동학대 예방교육 행사장에서 연합회 관계자들이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어린이집연합회가 보육 교직원 700여 명을 대상으로 마련한 아동학대 예방교육 행사장에서 연합회 관계자들이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인천 소재 어린이집의 아동폭행 사건이후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서 아동폭행 사례가 연이어 보도되면서 보육교사들에 대한 여론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보육교사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보육시설에서 벌어진 아동폭력 보도가 이어진 이후, 아이들만 보고 열악한 근무 환경을 버텨왔던 교사들도 하나둘씩 퇴직을 결심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실제 보육교사들이 10~12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매달리며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은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 아빠, 송일국 씨를 능가한다. 20명에 이르는 아이들의 식사, 양치, 용변, 교육 등을 혼자 처리해야 하고 틈틈이 보육일지, 관찰일지도 정리해야 한다.

보육교사 간 어린이집 내부에서 맡은 고유 행정업무도 처리해야 하고 학부모 상담, 평가인증을 위한 서류 작성까지 도맡아야 한다. 아동폭행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부에서 보육교사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내놨지만 얼마나 보육교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이들 보려고 보육교사 됐는데 왜 서류 꾸미느라 정신없는 거죠?"

상당수의 보육교사들은 ‘보육’보다는 ‘잡다한’ 서류를 작성하고 정리하는데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28일 한국보육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0인 이상 규모의 어린이집이 평가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원아명단 △실내외배치도 △하루일과표 혹은 일일보육 계획안 △우수사례 있는 경우에 대한 증빙 서류 △보육교직원 자격증 사본 △임면사항 관련 서류 △보육교직원 경력 관련 서류 △평가인증지표 관련문서 등이다.

특히 40인 이상 어린이집용 평가인증지표는 보육환경, 운영관리, 보육과정, 상호작용과 교수법, 건강과 영양, 안전 등 6개의 영역으로 나뉘며 또다시 70개의 세부항목으로 구분된다.

세부항목 중 하나인 '보육과정 평가 및 영유아 활동관찰'에서는 교사들이 돌보고 있는 아이들의 수만큼 관찰일지 등을 정리해야 한다. 교사들이 보육과 동시에 평가인증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기간, 업무 강도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수원의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 B 씨는 28일 ‘데일리안’에 “기본적으로 보육일지라는 것은 써야 하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제대로 된 보육일지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더욱이 교사마다 보육과는 별도로 원내에서 행정적 업무분담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서류준비, 체크리스트 체크 등의 잡무도 병행한다”고 말했다.

B 씨는 “평가인증을 받으려면 또 관찰일지라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아이 1명에 대해 일곱개 영역을 꼼꼼하게 작성해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서류 작성을 15~20명 수준으로 준비한다고 하면 굉장히 많은 양”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보육교사들에 따르면 평가인증 준비에 돌입한 어린이집의 교사들은 3~6개월 간 서류준비까지 병행한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평가인증을 받기위해, 타 어린이집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교사들을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평가인증 포기하면 어린이집의 대외 이미지도 나빠지고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에 상당수 어린이집들은 평가인증 자체를 포기하고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곳도 있다.

포천의 민간어린이집에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우리 원장님 같은 경우 평가인증을 하면 교사들이 서류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평가인증을 포기했다”면서 “평가인증을 포기했지만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잡다한 서류들은 많은 편”이라고 호소했다.

수원의 한 가정어린이집에 근무하고 있는 C(29, 전직 유치원 교사)씨는 “아이들이 좋아서 이일을 시작했는데 아이들 보는 것은 뒷전이고 보여주기식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관련기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이 너무 많아 힘들다. 원장들의 입장에서는 평가인증을 받으면 국가에서 환경수당을 받을 수 있어서 평가인증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태로 어린이집 내 CCTV 설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CCTV 아래에서 학습활동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태로 어린이집 내 CCTV 설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CCTV 아래에서 학습활동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동료 교사랑 마주앉아 수다라도 떨면 스트레스 풀릴텐데..."

아울러 보육교사들의 근무 환경은 ‘여유’를 즐길 수 없는 구조다. 휴식을 취해도 아이들이 보이는 곳에서 그들을 주시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점심시간에는 식사지도를 하며 함께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의 입은 쉴틈이 없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선생님 더 주세요”, “선생님 흘렸어요”라는 아이들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심지어 교실 구석에서는 구토를 하거나 용변을 보는 아이들도 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가장 좋은 휴식시간이 점심시간이라면 보육교사들에게는 점심시간은 ‘전쟁’인 셈이다.

식사 후 ‘티타임’은 바라지도 않는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우리에게 커피는 ‘여유’가 아니라 ‘당 보충용’”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미지근한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교실로 복귀하는 교사들도 상당수다.

B 씨는 “남들처럼 커피 마시며 수다를 못 떠는 점이 아쉽다”면서 “근무하면서 화장실을 두 번가는데, 화장실을 가다가 우연히 동료 교사를 만나면 막간을 이용해 ‘폭풍수다’를 떠는 것이 낙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보육교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일반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라면서 “그들처럼 커피 마시고, 산책하는 문화가 보육교사들에게는 꿈이다. 동료 교사들과 마주앉아 수다라도 떨면 스트레스가 풀릴텐데, 동료 교사라고 해도 출근할 때 한번, 퇴근할 때 한번 보는게 고작”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C 씨는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이라는 특성상 휴식시간에 대해 연연하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서류를 준비하는 등 보여주기식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방광염, 허리디스크, 성대결절…'직업병' 달고 사는 보육교사들

처리해야 하는 막대한 서류의 양,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근무환경 등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보육교사들에게는 다양한 직업병도 존재한다.

용변을 제때 보지 못해 생기는 ‘방광염’과 ‘변비’는 일상이고,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히다보면 허리디스크도 생긴다. 원내에 남자 직원이 없다보니 힘쓰는 일도 교사들의 몫. 그러다보면 손의 인대도 늘어나고 관절도 나빠진다. 항상 목을 사용하니 성대결절도 보기 드문 증상은 아니다.

A 씨는 “옆반의 동료 교사는 퇴근 전에 화장실을 한 번 간다. 이런 것이 습관이 되면 화장실을 가고싶다는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면서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많은 곳이라 시끄러워서 목소리도 크게 낸다. 항상 제 목소리는 갈라져 있다”고 말했다.

B 씨도 “손에 물을 달고 사니 주부습진이 기본이다.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니까 항상 손을 씻다보면 손이 갈라진다”면서 “남자 대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경우도 많아서 손목 인대가 늘어나거나 깁스를 하는 교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본보에 “교사들이 아이들에 대한 보육시간 외에 하는 업무가 많다는 하소연을 듣고 있다”면서 “평가인증 부분에 대해서도 이를 보육교사들의 상황에 맞게 현실화시키는 등의 방안을 계획 중이다”라고 말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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