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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마지막 유산’ 차두리 시계는 거꾸로 간다


입력 2015.01.29 09:05 수정 2015.01.30 15:40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우여곡절 많았던 축구인생, 국가대표 은퇴 임박

아시안컵서 절정의 활약..떠나는 뒷모습 못내 아쉬워

차두리가 국가대표 은퇴까지 이제 단 1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 연합뉴스 차두리가 국가대표 은퇴까지 이제 단 1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 연합뉴스

‘폭주기관차’ 차두리(35·FC서울)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두리는 오는 31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 호주전이 끝나면 태극마크를 반납할 예정이다.

차두리의 축구 인생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국가대표 출신의 현역 선수로서 두 차례나 중계석에서 월드컵 해설을 한 이력이 유독 특이하다.

또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와 닮은 차두리는 무한한 잠재력과 다크호스 이미지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이탈리아와의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 오버헤드킥이 대표적이다. 2004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선 필립 람(31·뮌헨)을 완벽히 파괴했다.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은 차두리의 가능성이 일찌감치 발견했다. 2001년 대표팀과 고려대의 연습경기에서 당시 고려대 소속으로 뛴 차두리를 눈여겨본 히딩크 감독은 곧바로 대표팀에 불러 들였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 차범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차두리의 깜짝 발탁에 많은 축구인들이 의아해 했지만 ‘매의 눈’ 히딩크의 안목은 정확했다. 차두리는 2002 월드컵서 특급 조커로 활약하며 한국의 4강 신화에 기여했다. 이후 차두리는 2004 아시안컵까지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승승장구하던 차두리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2004년 9월 독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베트남전에서 (상대 선수의 심리에 말려) 팔꿈치 공격으로 퇴장 당한 것. 당시 한국은 이동국, 이천수의 연속골로 베트남에 2-1 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축구팬들은 차두리를 질타하고 나섰다. 차두리는 베트남전 퇴장으로 4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차두리에게 또 한 번 시련이 엄습한 시기는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이다. 한국은 월드컵 개막을 1년 앞두고 조 본프레레(68)에서 딕 아드보카트(67)로 사령탑을 교체했다. 본프레레는 한국을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 예선에서 2연패를 한 게 뼈아팠다.

본프레레 후임 아드보카트 감독은 차두리를 대표팀에서 제외했다. 차두리는 태극마크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아버지 차범근과 함께 축구해설을 맡아 대표팀을 응원했다. 차두리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해설과 솔직한 입담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월드컵 한국-스위스전 오프사이드 실점에 대해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 사기입니다”라고 발언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차두리는 2006년 5월 축구 선수로서 중대 기로에 섰다. FSV 마인츠 시절 주전 확보를 위해 공격수에서 윙백으로 변경한 것.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 윙백은 폭주기관차에 잘 어울리는 포지션이다. 차두리는 터치라인 끝에서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주력을 갖췄다. 윙백은 마음껏 달리고픈 차두리의 ‘본능’을 충족시켜줬다.

이는 차두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허정무 전 감독(60)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지휘봉을 잡은 뒤 차두리를 호출했다. 차두리는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 맏형 역할을 하며 사상 최초 원정 월드컵 16강을 달성했다.

이후 차두리 주가는 치솟았다.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으로 이적, 기성용과 코리안 듀오를 형성했다. 차두리의 인기는 CF로 이어졌다. “간 때문이야”는 전국구 유행어가 됐다.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던 차두리의 대표팀 생활은 홍명보호 출범과 함께 시련을 맞았다. 홍명보 감독은 노장 차두리를 외면했다.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반납한 상황에서 차두리는 ‘2002 히딩크 세대’의 마지막 유산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차두리는 또 아버지 차범근과 함께 해설로 그라운드 밖에서 후배들을 응원했다. 당시 차두리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선배들이 부족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인 바 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차두리는 2015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슈틸리케호 최고참으로서 반세기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5경기 무실점 행진 중심엔 차두리의 육탄방어가 있었다.

차두리는 “몸의 회복속도가 예전 같지 않다”며 태극마크 반납 의사를 밝혔다. 많은 시련을 감내했던 차두리이기에 정점에서 그를 보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특히 아버지 차범근 그늘에 가려 막중한 부담을 안고 뛴 차두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차범근이 현역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들 차두리 시계도 반환점을 돌아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잠재력을 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차두리는 미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훌륭하게 성장한 대표팀 후배들이 차두리 곁에 있기에 지나친 부담은 내려놔도 좋다. 축구 팬들은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차두리의 능력을 보며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누비는 ‘정신적 지주’ 차두리를 그리고 있다.

히딩크의 마지막 유산 차두리의 최종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선택이 됐든 축구팬들의 찬사와 아쉬움이 교차할 게 분명하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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