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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협 신데렐라 스토리 ‘트라우마’ 날렸다


입력 2015.01.27 09:17 수정 2015.01.27 09:25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이라크전서 1골 1도움 ‘원맨쇼’ 결승진출 견인

실력·절박함으로 ‘이름값’ 극복..당당한 주전

이정협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국축구의 건강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 연합뉴스 이정협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국축구의 건강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협(24·상주 상무)이 또 한 번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6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2015 아시안컵' 4강전에서 2-0 완승하며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태극마크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으로 무장한 신출내기 무명용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9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한 이정협은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한국의 결승행에 최대 수훈갑이 됐다.

이정협은 전반 20분 김진수의 프리킥을 그림 같은 헤딩골로 연결하며 이날의 결승골을 터뜨렸다. 후반 5분에는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가슴 트래핑으로 김영권(광저우 헝다)의 추가골을 이끌어내며 도우미 역할가지 소화했다. 수중전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과 이라크의 거친 플레이 속에서도 적극적인 몸싸움과 수비 가담을 통해 공수 양면에 활발하게 기여했다.

이정협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한국축구가 배출한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다. 국가대표는커녕 연령별 대표팀에도 들지 못했던 이정협은 슈틸리케호에서 생애 첫 대표팀에 승선했다. 아시안컵 개막을 앞두고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첫 신고식을 치른 따끈따끈한 태극마크 새내기였다.

하지만 이정협은 A매치 6경기에서 벌써 3골 1도움을 기록, 단숨에 슈틸리케호의 최다득점자로 올라섰다. 무려 경기당 0.5골. A매치 데뷔전이던 사우디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한 이래 아시안컵에서는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고, 이번 이라크전까지 득점에 성공했다. 아시안컵만 놓고 보면 2골로 손흥민과 공동 최다득점.

사실 이정협의 이번 아시안컵 승선은 그야말로 행운에 가까웠다. 이동국-김신욱 등 타깃맨 자원들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아야 했다. 이정협은 제주 서귀포 전지훈련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적인 플레이와 투지를 선보이며 슈틸리케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많은 이들은 아시안컵 최종엔트리 발표 직전까지, 박주영의 발탁을 예상하기도 했다. 박주영은 월드컵 이후 아스날에서 방출돼 장기간의 무적 신분을 이어간 끝에 중동에 진출했다. 비록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경험이 풍부한 공격수라는 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국내파 감독이었다면 비중이 큰 아시안컵에 이정협 같은 무명 선수를 데려가기 위해 박주영을 제외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지도자인 슈틸리케 감독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았다. 박주영은 이름값에서 훨씬 앞서지만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장기간 골을 넣지 못하고 있던 데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보여준 정신 자세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절박함이 있는 선수"를 중용하겠다고 공언했고, 무명이었지만 그라운드에서 성실하고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이정협은 슈틸리케 감독이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했던 선수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한국축구는 '박주영 트라우마'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홍명보 전 감독은 "한국에서 박주영을 대체할만한 공격수를 찾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정한 원칙마저 뒤집고 박주영을 최종엔트리에 발탁했다. 그러나 '황제훈련', '의리축구' 등 숱한 구설에 오르며 밀어붙인 박주영 카드는 결과적으로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가 없다'는 구차한 핑계 따위는 대지 않았다. 이정협의 기용이 만일 실패한다면 적지 않은 부담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과감히 새로운 대안을 찾는 길을 선택했다. 박주영 선발이라는 쉽고 안전한 길을 포기한 대신, 이정협이라는 숨은 보석을 발굴하며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만들었다.

조커 자원 정도로 예상됐던 이정협은 불과 A매치 6경기 만에 이제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당당히 올라섰다. 아시안컵 전까지 일부에서 제기되던 '그래도 박주영을 뽑았어야했다'는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실력과 경쟁을 통해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꿰찬 이정협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국축구의 건강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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