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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무명' 이정협, 흘러간 이름값 보다 활활


입력 2015.01.27 00:20 수정 2015.01.27 09:25        김태훈 기자

준결승 선제골 터뜨리고 쐐기골 도움

철저한 무명의 신예..감독 기대 완벽 부응

[한국-이라크]이정협 골은 27년 동안 열리지 않던 결승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 연합뉴스 [한국-이라크]이정협 골은 27년 동안 열리지 않던 결승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의 ‘2015 아시안컵’ 최대수확은 철저한 무명이었던 이정협(23·상주상무)의 발굴과 성장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6일(한국시각) 오후 6시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서 킥오프한 이라크와의 '2015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이정협의 선제 결승골과 김영권의 추가골을 묶어 2-0 완승했다.

이로써 한국은 1988 아시안컵 이후 27년 만에 대회 결승에 올랐다. 한국은 호주-UAE전 4강 승자와 오는 31일 아시안컵을 놓고 맞붙는다.

한국은 15차례 아시안컵에서 5차례 결승에 올라 두 번의 우승컵(1956·1960년)을 들어올렸다. 나머지 세 차례는 준우승(1972·1980·1988년)에 그쳤다. 2000년대 이후 한국축구는 유독 아시안컵에서는 결승 무대도 밟지 못했다. 이번 결승 진출은 이동국·박지성·이영표가 뛸 때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차두리-손흥민-기성용-김진수-김진현 등 위업을 이끈 대표팀 멤버들 가운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이다. 55년 만의 우승컵 탈환을 열망했던 한국축구는 2000년대 들어 이동국-박지성 등을 앞세우고도 결승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FIFA 월드컵 16강의 길도 뚫었지만 한국축구 앞에 AFC 아시안컵은 ‘아시아 맹주’의 자존심만 구기는 풀지 못하는 숙제였다.

27년 동안 열리지 않던 결승의 문은 이정협이 활짝 열어 젖혔다. 이정협은 준결승 이라크전 에서 전반 20분, 김진수가 감아 올린 프리킥을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을 딛고 헤딩으로 연결해 골네트를 흔들었다. 제공권과 위치 선정에 허점을 드러냈던 이라크를 맞이해 슈틸리케 감독이 기대했던 포스트플레이를 완벽하게 해낸 순간이다. 한국-이라크전 하이라이트였다.

수중전 속에 불안한 리드를 이어가던 후반 5분에는 남태희의 크로스를 가슴으로 떨어뜨려 김영권에 연결해 쐐기골을 도왔다. 결승 티켓이 걸린 준결승에서 해결사와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준결승에서만 일어난 우연이 아니다. 이정협은 이미 아시안컵 개막 전부터 꿈틀거렸다. 구자철, 이청용의 부상으로 2선이 무너진 가운데 이정협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개막 전 자신의 A매치 데뷔전인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이정협은 호주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통해 아시안컵 첫 선발 출전한 이정협은 결승골로 화답하며 한국이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덕분에 한국은 상대보다 하루 더 쉬며 준비를 할 수 있는 유리한 일정을 걸었다. 그리고 이번엔 결승 진출 티켓이 걸린 준결승에서 인상적인 한 방으로 승리를 불렀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과 이날 4강전 모두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이정협은 어느덧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조별리그에서 조영철과 이근호, 그리고 이정협을 돌아가며 선발 원톱으로 실험하던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이정협의 아시안컵 승선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깜짝 발탁에 모두가 의구심을 품은 것은 당연했다. 박주영, 김신욱, 이동국 등 주축 공격수들의 부상 여파를 감안하더라도 A매치 경험은 물론 K리그 팬들 가운데도 그를 모르는 팬들이 더 많았을 정도로 이정협은 무명 선수였다.

이정협은 이전까지 각급 대표팀에서 활약한 경험이 전무했고 슈틸리케호에도 첫 발탁이었다. A매치 경험이 전무한 공격수를 중요한 메이저대회에서 첫 발탁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이정협이 발탁되면서 아시안컵에 낙마한 공격수는 박주영이었다. 비록 박주영이 여전히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기대 이하였다고는 하지만 풍부한 경험과 특유의 한 방 때문에 그의 발탁 가능성은 높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지나간 이름값이 아닌 대표팀이 반드시 보완해야 할 가려운 부분을 186cm의 ‘무명 장신’ 이정협 카드로 채웠다. 그리고 그의 젊음과 열정은 한국축구가 그토록 오랫동안 열지 못했던 정상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과거를 떠올리게만 했던 이름값이 아닌 활활 타오르고 있는 열정과 살아 꿈틀거리는 실력으로 말이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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