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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극장에서 '언브로큰'을 봐야하는 이유


입력 2015.01.17 11:35 수정 2015.01.20 16:02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나치만 증오해온 유대계 할리웃

'국제시장'만 볼게 아니라 졸리의 고군분투에 동참해야

굳이 히틀러의 예를 들지 않아도, 영화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선전 도구임은 요즘 한국이 열심히 증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가니' '변호인'을 보려고 정치인들이 줄을 서더니, 이번에는 '국제시장'으로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달려갔다. 그리고는 양 진영이 서로 자기네편 영화라고 우긴다. 앞으로는 개봉되는 영화마다 제 색깔 입히기 경쟁을 할 것 같다. 더불어 “이꼴저꼴 보기 싫어 난 국산영화 보지 않는다!”는 시민들도 나올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믹영화 '인터뷰'의 제작사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관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소니 해킹의 배후로 지목된 북한에 대해 강력한 금융제재 조치를 포함한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재무장관에게 북한과 관련된 개인·단체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우디 앨런, 스탠리 큐브릭, 마이클 베이, 브라이언 싱어 등등 노벨상 수상자만큼이나 세계적인 영화감독에는 유대인들이 많다. 아예 할리우드 자체를 유대인들이 다 움직인다고 할 만큼 영화산업에서의 유대인들의 힘은 막강하다.

유대인들이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유?

냉전시대 스크린에서의 적(악당)은 언제나 독일군이나 나치 비밀경찰이었다. 직접적인 적국이었던 소련군이나 KGB는 오히려 그보다 적었다. 워낙 철저히 철의 장막에 갇혀 있어 영화적 상상력이 끼어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련은 전쟁 당시에는 연합군 측이었고, 중국은 피해국이었으니 비록 적성국가라 해도 선악 대결 구도에서 적국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허나 패전한 독일은 영화의 소재를 무한정으로 제공했다.

당연히 국적 불명의 악당도 언제나 독일인이나 독일군 이어야 했다. '007' '인디아나존스'와 같은 오락물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타워즈'에서처럼 외계의 악당조차 이왕이면 독일인 내지는 독일군 냄새를 풍기는 의상을 입혔으니 전쟁의 원죄를 짊어진 독일인들에겐 더없이 가혹한 형벌이었다.

1970년 12월 7일 서독 총리로는 전후 처음으로 폴란드를 찾은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에서 헌화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장면을 연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비가 내려 축축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명복을 빌며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감동한 폴란드 시민들은 서독을 인정해주었으며 이듬해 그에게는 노벨평화상이 주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화해·사죄·평화의 정책으로 결국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으며 그는 1992년에 눈을 감았다.

이 역사적인 사건 이후 유대인들의 피맺힌 한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영화를 통해 잘 나타내보였다.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1993)는 그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독일인 중에는 쉰들러같이 착한 사람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일본은 왜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

'콰이강의 다리'(1957)는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기보다는 영국군의 투철한 군인 정신과 진실한 인간성의 갈등에 주제로 만든 영화다. 해서 오히려 일본군들이 실제보다 덜 야만적이었음을 은근히 비춰줬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몇몇 편의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만들어졌지만 하나같이 영미 영화사들이 만드는 바람에 전쟁 자체만을 소재로 삼았지 일본군들이 현지인들이나 현지국 포로들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발하지 못했다.

이처럼 할리우드는 독일에는 가혹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관대하기조차 했다. 왜 그랬을까? 독일 나치 못지않은 잔혹한 악행이지만 그게 유대인들과는 아무 상관없었기 때문이라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오히려 일본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한동안 세계 영화시장을 선도함으로써 선한 이미지를 덧씌워나갔다.

아무튼 그 같은 어물쩍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주변 피해국에게 사과는커녕 자신들을 도리어 전쟁의 피해자로 둔갑시켜버렸다. 그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 '도라, 도라, 도라'(1970)다. 진주만 공습을 주제로 한 미일 합작영화로 일본군 비열함은 간 데 없고 오히려 미국과 대등한 전쟁 상대국으로 미화시켰다. 당시 한국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했었다. 이후 일본은 전쟁의 원죄를 벗어던지고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행세하기 시작했다.

안젤리나 졸리가 일본의 비난을 무릎쓰고 만든 영화 '언브로큰' 스틸 컷.ⓒUPI코리아 안젤리나 졸리가 일본의 비난을 무릎쓰고 만든 영화 '언브로큰' 스틸 컷.ⓒUPI코리아

'붉은 수수밭'(紅高粱)과 중국의 굴기(崛起)

아무튼 '쉰들러 리스트' 이후 나치를 악의 제국으로 삼아 영화를 만드는 것이 시시해져버리자 월남전, 소련군, KGB와의 스파이 등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보았지만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하다못해 나중에는 북한을 소재로 삼아보려 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하다가 이번에 '인터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별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해킹 사건으로 반짝 주목을 받은 정도다.

어느 나라보다 줄기차게 일본을 성토해온 한국이지만 기실 일본군 만행을 고발한 작품은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중국이 앞섰다. 1988년 중국은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紅高粱)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결국 원작자인 모옌(莫言)에게는 2012년에 노벨문학상이 주어졌으며, 다시 드라마로 제작되어 오는 27일부터 방영된다고 한다.

그동안 굴욕을 참으며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이뤄낸 중국이 드디어 역사의 빚을 청산하고자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제일의 과제로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로 정하고 지난 달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에서 대대적인 첫 추모행사를 개최하였다. 이어서 731부대 등등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해나가는 한편, 영화나 다큐 등 예술 작품을 전폭 지원하고 있어 세계인들에게 일본인들의 추악한 모습을 들춰 보이는 공정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다. 지난날 유대인들이 영화를 통해 독일인들의 진심어린 사죄를 받아냈듯이.

오드리 헵번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세기적인 은막의 스타 오드리 헵번의 이 말은 세계적인 기부문화 붐을 불러 일으켰다. 1988년 유니세프 친선 대사가 된 후 굶주린 어린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간 오드리 헵번은 배우로 살았던 때보다 더 많은 정열을 짧은 시간 동안 구호 운동에 쏟아 붓고는 1993년 63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할리우드의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여배우,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순위 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던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2001년 전쟁으로 짓밟힌 캄보디아에서 '툼 레이더'를 촬영하면서 인도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충격을 받은 그는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난민들을 만나고 국제 유니세프 긴급구호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다. 이 액수는 개인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유니세프 기부금이다.

2001년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이후 10년 넘게 전 세계 여러 곳의 난민과 30개 이상 국가의 실향민들을 돕는 활동을 해오고 있는 졸리는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알리고 싶다. 그들을 낮춰보지 말고, 살아남으려는 것에 대해 칭찬해야 된다"고 말했다.

'언브로큰'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관심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한 영화 '언브로큰'이 한국에서 상영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그렸다 해서 화제가 된 영화다. 2010년 발간된 후 180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미국작가 로라 힐렌브랜드의 '언브로큰'을 영화화한 것이다.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였지만 태평양전쟁에 참전, 850일의 전쟁 포로라는 역경을 모두 이겨낸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그린 작품으로 일제의 잔혹한 전쟁포로 생체실험 등이 담겨 있다. 영화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위안부, 난징대학살 등 일본군들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을 대부분 다루지 않아 원작에 비해 훨씬 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우익들이 발끈하고 나선 덕분에 포로수용소의 악랄한 감시관 역으로 출연한 일본의 록스타 미야비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한데 막상 역사, 독도,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에선 '언브로큰'에 대한 관심이 예상외로 별로다. 일본 우익들의 반의 반 만큼도 안 되는 것 같다. 평화를 사랑하는 선비 나라 백성답게 입으로만 싸우려하지 막상 몸은 뒷걸음치는 버릇이 이런 데서도 나타난다.

생색낼 기회라면 결코 놓치는 법이 없는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눈 밖이다. 전략적 사고가 풍부한 대통령이라면 안젤리나 졸리 감독을 초청, 청와대에서 시사회를 열어줄 만도 한 훌륭한 작품이다. 그 자리에 주한 외교관들과 특파원들, 상공인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면?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간접적인 압박은 물론‘찌라시’로 구겨진 품격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그저 단순한 인기 배우가 아니다. 오드리 헵번을 이은 그의 인류애와 봉사활동으로 영화계는 물론 세계 지성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과 파급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배우로서는 드물게 지성과 매너를 겸비한 그녀는 이미 세계 최상류 사교계에서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빈자리를 매우며 품격을 높여나가고 있다. 장담컨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최초의 여배우가 될 것이다.

영화만한 무기는 없다

가뜩이나 귀가 얇아 부화뇌동 잘하고 선동에 잘 놀아나는 민족이다. 5천만 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요즘은 뻑하면 천만 관객을 돌파해낸다. 그런다고 한국신기록에 세계인 누가 관심을 가질까? 군데군데 빈자리를 두고 '언브로큰'을 보고 나오는데 왠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만 남는다. 전회 매진, 왁자지껄한 '국제시장' 쪽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리며 빠져나왔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렇다 해도 '언브로큰'은 물 건너 왔다. '국제시장'도 과연 해운대를 넘어갈 수 있을까? 우물 안 세계관으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며 무작정 몰려갈 것이 아니라 우물 밖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왕이면 시야와 담론의 장을 넓혀 아시아로, 세계로, 우주로 나아갔으면, 부족한 창조적 역량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라도 메꿀 수 있었으면! 표밖에 못 보는 정치인들, 아직 늦지 않았으니 꼭 '언브로큰'도 찾아주기를 부탁한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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