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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연명하던 탈북자의 '촉촉한' 사회 환원


입력 2014.11.28 09:34 수정 2014.11.28 10:04        목용재 기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아파트 통장·사회봉사 단체 수장된 탈북자 김 씨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자 김모씨가 27일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이 개최한 ‘통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이라는 제하의 국제세미나에서 참석해 그동안 정착과정에서의 소회를 밝혔다.ⓒ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제공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자 김모씨가 27일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이 개최한 ‘통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이라는 제하의 국제세미나에서 참석해 그동안 정착과정에서의 소회를 밝혔다.ⓒ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제공

"아이 양육 문제로 직장을 그만둔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국민세금 축낸다는 생각 때문에 자책감이 들었는데 지역 통장, 봉사단 단장을 맡아 봉사하니 자존감도 높아졌고 그러다보니 나보다 좋지 않은 처지의 이웃들을 돌보게 됐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한국 입국 3년차가 된 탈북자 김모 씨(여성)는 27일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이 개최한 ‘통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이라는 제하의 국제세미나에서 참석해 그동안 정착과정에서의 소회를 밝혔다. 특히 직장을 잃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자책감을 지역사회 봉사를 통해 극복한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날 김 씨는 “통장을 동네 심부름꾼으로 많이 생각하는데 통장은 우리지역 사회의 작은 울타리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한다”면서 “통장 선출 당시 4명이 입후보 했는데 탈북자인 내가 선출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통장이 되기 전에는 산업재해로 직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이 때문에 국민세금으로 생활한다는 자책감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통장이 된 후 지역사회에 봉사를 하고 누군가를 도우니 제 마음이 저절로 치유됐다. 제가 조직한 봉사단도 매달 2번씩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 씨는 한국 정착 초기 한 제조업체 회사에 취직해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근무 시간 조절이 자유로운 보험회사로 이직을 하지만 팔을 다치는 산재를 입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당시 김 씨는 한국 사정이 밝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와 연관된 병원에서 비용 청구를 위한 진단서도 제대로 발급받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자 소송을 진행, 소송에서 승리했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데일리안에 “김 씨는 소송 과정에서 한국에서 많이 배우지 못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 소외계층은 많은 어려움과 불합리한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 때문에 거주 중인 임대아파트 단지의 소외계층을 위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아파트 통장선거에 출마, 당선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김 씨는 탈북자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모든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통장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면서 “주민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복지와 행정에 대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늦깎이 복지학과 대학생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이 한국 정착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다른 소외계층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임대아파트 통장,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단체인 ‘파랑새 봉사단’ 단장을 맡았다. 특히 그가 이끌고 있는 파랑새 봉사단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우수봉사단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김 씨는 후배 탈북자들의 원활한 한국 정착을 위해 탈북자들에 대한 정착 지원금을 직업 활동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씨는 “북한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일하면 보수는 확실히 받는다. 북한에서 경험해보지 못하는 삶이 있다”면서 “때문에 정부가 작은 수익이라도 직업, 일과 연계시켜 탈북자들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하면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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