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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카레라스가 무대에서 쓰러졌어야 할까


입력 2014.11.27 09:08 수정 2014.11.27 16:56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투혼 발휘하라고? 관객의 이기심일뿐

호세 카레라스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세 카레라스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세 카레라스의 공연 취소에 대해 설왕설래다. 관객들이 예정시간이 30분이 지난 시점까지 기다리고 있었고, 뒤늦게 공연 기획사는 호세 카레라스의 건강상 이유를 들어 공연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성악가의 건강을 살피지 않고 무리한 스케줄 이었다는 비난도 있었고 호세 카레라스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언론 보도 가운데는 "피곤하다고 공연 직전 취소한 호세 카레라스!"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그의 태도에 대한 이런 비판적 지적에는 건강상의 이유가 있더라도 관객과의 약속은 지켰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또한 이런 주장을 보고 있으면, 그가 자신의 명성에 기대어 자기 몸만 챙기는 오만한 성악가로 비친다. 

비록 호세 카레라스가 몸이 아프더라도 예정대로 공연을 했어야 옳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관객을 대변하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관객을 위하는 주장인지는 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사실 애써 따져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미 관객들 중에는 건강상의 이유에 수긍을 하였다. 바이러스로 안한 후두염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안나온다는 데 어쩔 수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물론 후두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대에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의 출연 취소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매체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현장에 없는 이들일수록 황당, 대실망, 어이없음의 단어를 썼다. 건강에 크게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 지 염려하는 팬들도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어쨌든 공연 시작 30분 후에 통보한 것은 너무 뒤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호세 카레라스는 68세의 고령인데다가 1987년 백혈병을 앓았던 경력이 있었다.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공연을 마치는 장면이 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지고는 한다. 이는 문화콘텐츠 장르만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과로로 쓰러지거나 링겔을 맞고 공연에 나서는가하면 부상을 당했음에도 공연에 나서는 일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때 등장하는 찬사의 말이 투혼이다. 투혼을 발휘해 공연을 마치면 높은 평가가 내려진다. 하지만 그 공연이 얼마나 좋은 공연이었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못된다. 

좋은 공연과 뮤지션의 건강은 결국 관객들을 위해 필요충분조건이다. 좋지 않은 몸 상태에서는 아무리 천재적인 뮤지션이라도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지 못한다. 좋은 공연을 보일 수 없다면, 관객에게 신뢰를 지키지 못한 것과 같다. 고령자 아티스트인 경우 공연중에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항상 염려해야 한다. 관객에게 약속한 공연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칫 현장관객의 이기심이 영원히 뮤지션의 공연을 볼 수 없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호세 카레라스가 연예 소속사 가수였다면 어떨까. 아마 일반 가수였다면 몸이 힘든 가운데에도 공연을 진행했을 것이다. 호세 카레라스이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 상태를 들어 공연을 취소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많은 뮤지션들은 이렇게 자신의 의사표현을 관철 시킬수 있는 상태를 염원하며 투혼을 발휘한다. 물론 대부분은 그런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만다. 

중요한 것은 관객과 뮤지션 사이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이다. 만약 그 뮤지션을 믿고 사랑한다면 공연 취소행위보다는 그의 건강을 더 염려할 것이다. 만약 관객이 관객 자신을 사랑한다면, 공연을 보지 못한 일에 속상해하고 원망과 성토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호세 카레라스는 관객을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이란 대인적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존재감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친숙한 관계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사랑이 위선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성원하는 것에 대한 존재론인 감사의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연 취소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고 반드시 다음 번 공연을 위해 한국을 다시 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공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한국의 관객들에게 비판의 소지를 제공한 점이 있었다. 사실상 많은 뮤지션들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관객과 뮤지션은 결국 좋은 공연을 매개로 성립되는 신뢰와 약속의 관계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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